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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경 May 15. 2020

부부의 세계, 캐붕(캐릭터 붕괴)의 세계?

'안 본 눈 삽니다.' '하차한 사람은 이류, 아예 안 본 사람이 일류, 끝까지 보는 내가 삼류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두고 여러 유행어가 넘쳐난다. 그도 그럴 것이, 극 초반의 흡인력 넘치는 전개는 어디 가고 안타까운 캐릭터 붕괴만 남았다. 이제 시청자들은 언젠가 나올 '사이다'만을 기다리며 의리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과연 결말에 모든 게 휘몰아칠까? 그렇다 하더라도 중후반의 어마어마한 캐릭터 붕괴는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화신 지선우,

메데이아는 어디에?


드라마의 원작인 <닥터 포스터>는 그리스 신화 '메데이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메데이아는 남편의 배신에 치를 떨며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죽이는 복수의 화신이다. 이는 복수 서사의 원형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를 얻는다. 도대체 <부부의 세계>에서 이 메데이아는 어디 갔을까? 메데이아는 사라지고, 한국형 모성애만 남았다.


아내의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과거 인기를 끈 SBS <아내의 유혹>과 비교된다. 극 중 구은재는 눈밑에 점 하나를 찍고 민소희로 돌아온다. 전남편은 다시 유혹해 차 버리고, 내연녀의 회사를 빼앗는다. 매화 사이다가 반복되는 것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유였다. <부부의 세계>는 일일드라마가 아니니 그 정도 전개를 보여줄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처절한 '복수의 화신'이라는 지선우 캐릭터를 망가뜨리진 말았어야 했다.


프로타고니스트 vs 안타고니스트

무너진 밸런스


재밌는 이야기에서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는 아슬아슬하게 대립한다. 처음엔 프로타고니스트가 지기도 하고, 좌절도 하지만 결국에는 승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부부의 세계>에서 그 모습은 어디 갔을까? 악한 사람은 천지에 넘쳐나는데, 주인공은 힘을 못쓴다.


더군다나 복수의 대상조차 명확하지 않다. 지선우는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이태오/여다경/손제혁/박인규 등 복수할 대상은 넘쳐나지만 지선우는 어느 하나 타깃 하지 못한다. 그저 몇 마디 뼈 때리는 말만 해 주는 게 전부다.

서브 캐릭터들의 미활용

설명숙과 고예림의 등장 이유는?


감초 역할을 하는 서브 캐릭터들은 드라마 분위기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부부의 세계>에서는 고예림-손제혁 부부, 설명숙이 그런 역할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도대체 이들은 왜 나온 건지부터 명확하지 않다.


고예림은 초반에 지선우를 배신하며 새침한 악녀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다 손제혁의 바람을 겪으며 이혼을 결심한다. 드라마가 재밌으려면, 손제혁의 바람 전후로 고예림의 캐릭터가 180도 변했어야 했다. 지선우를 질투하는 대립자에서 복수를 도와주는 옹호자가 되는 것. 그러나 지금 고예림의 포지션은 영 애매하다. 와인 한 잔 하며 지선우와 속내를 털어놓았지만, 복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고예림-손제혁의 러브스토리가 매력 있지도 않으니... 애초에 이 부부가 출연할 이유가 없다.


더 황당한 건 설명숙이다. 그는 초반 얄미운 박쥐 같은 캐릭터를 보여주며 극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웬걸. 그냥 진짜 말을 옮기는 것 말고는 아무 역할이 없는 캐릭터였다. 심지어 중간에 공원장과 대립하며 한 "내가 여자라서 부원장 안 시켜주냐" 등의 말은 급격한 캐릭터 붕괴를 낳았다. 전하려는 메시지에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도대체 여기서 왜 설명숙이 그런 행동을 보인 건지 이해가지 않았다. 갑자기 '82년생 설명숙'이라도 된 냥 전사의 모습을 보였다. 감독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페미니스트 캐릭터를 더해 인기를 얻으려 했던 것일까? 시청자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부부의 세계> or <시그널> or <학교 2020>

도대체 장르가 뭔가요?


드라마는 6화씩을 기점으로 시점과 전개가 달라진다. 원작의 시즌 1, 2한 번에 묶었기 때문. 그러나 전개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장르도 달라졌다. 초반 6화 정도까지는 지선우의 복수가 휘몰아치며 진짜 <부부의 세계>를 보여줬다. 이후 민현서와 박인규가 등장하며 극의 결이 달라진다. 지선우의 복수는 어디 가고, 데이트 폭력과 박인규 사망사건이 주를 이뤘다. 2화 정도가 이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는데 쓰였다. 도대체 이게 <시그널>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심지어 살인사건의 명확한 결론도 나지 않았다.


중후반으로 가면서는 준영이의 역할이 갑자기 거대해졌다. 준영이의 학교 이야기와 심리가 주로 다뤄지며 지선우의 병적인 모성애가 부각됐다. 보는 내내 <학교 2020> 또는 <스카이캐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희애라는 독보적인 배우를 캐스팅해놓고, 그를 적재적소에 용하지 못했다. 제목을 따라 '부부'에만 집중해 두 사람의 심리선과 복수에 더 집중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드라마는 단 2회 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마지막 2화로 통쾌한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하나 걱정되는 것은, <스카이캐슬>처럼 모든 것이 미화된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선우는 지선우대로, 이태오는 이태오대로 잘 사는 모습을 제발 보여주지 '않길' 바란다. 제작진들은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지선우의 깔끔한 복수, 이태오의 파멸이라는 것을...! 이렇게 구구절절 분석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본방사수를 하는 나는 진정한 삼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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