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미술관 린다 매카트니 :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
2014년 한 해가 저물자, 2015년 청양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새해가 대지를 밝힌다.
보통 이쯤 되면, 대지의 기운을 받아, 장삼이사 새해의 장엄함을 품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게 마련이다. 나 또한 유별나지 않아, 허세스러운 글과 더불어 새해 계획을 주욱 나열해 보곤 하는데, 청양의 해를 맞이한 서글픈 35세 올해 만큼은 나이 먹은 것이 억울해서 무심코 지나치고자 했다. 하지만 파란 양을 품은 청양의 해를 마냥 지나칠 수 없어서 기름기 쭉 뺀 한 문장으로 올해를 정의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Let It Be, 모든 근심 걱정 두려움 내버려 두고, 뭐라도 합시다”
허블의 빅뱅이론이 유효하다면, 광활한 우주의 시작은 티끌 만한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나 또한 빅뱅이론을 신뢰하기에, 올해는 티끌 만한 일부터 행동으로 먼저 실행코자 한다. 자주 찾지는 않지만, 유명 전시회가 있으면 꼭 가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작품을 수백, 수천 달러의 비행기 삯을 지불하지 않고 근거리에서 수십 달러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굳이 놓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의 평범한 관람 습관 중의 하나는 전시회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암기한 채, 감상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요즘같이 한 손 안에서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최첨단 시대일지라도, 전시관에서 지체되는 줄을 버티고 서서 인터넷을 끄적거리기 보다는 내 머릿속에서 정보를 꺼내고 되새기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세련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평범한 습관 중의 하나는 내가 암기하고 이해한 지식을 재잘거릴 수 있는 누군가가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것이 이성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어필되기도 하기에, 평소 유머를 동반한 정보 습득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2015 뭐라도 해야만 하는 청양의 시대’에 나의 티끌프로젝트는 이 모든 습관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일상의 변화된 자극이 소소하게 모여 나만의 고유 감상 패턴을 가져보기로 했다. 무지에서 시작하여 나 혼자만 감상하고자 하는 색다른 패턴으로 전시관을 훔쳐보자! 이 담대한 청승을 감당하려면 평소보다 말쑥하게 옷을 입고 머리도 하고 아무튼 이래저래 기분을 좋게 할 필요가 있었다.
장황하게 나열했던 나의 티끌 프로젝트 1탄은 경복궁을 둘러싸는 돌담길과 매의 눈으로 청와대를 둘러싸는 사복 경찰 그리고 인파로 둘러싸인 서촌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조그만 대림미술관에서 무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영국의 전설적인 4인조 록그룹 멤버인 폴 매카트니의 아내 <린다메카트니의 사진전>
첫 번째 나의 무지는 린다 매카트니 그녀 자체였다. 현재 개콘 패러디 송으로 직장인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는 ‘Let It Be’ 원곡의 주인공 폴 매카트니의 아내라는 것 외에는 딱히 알 만한 것이 없었기에, 그녀의 유명지수는 높지 않을 것이라 업신여기고. 여느 조그만 미술관처럼 한산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나의 무지와 정확히 반비례하여 아주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토요일 오전이었지만, 정말 많은 인파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입장을 위해 줄을 섰고, 나 또한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한 채, 변변치 못한 몰골로 그들의 줄에 동참했다. 그리고 드디어 입장, 곧바로 이렇게 많은 인파의 마음을 사로잡은 린다의 작품에 몰입했다. 그러나, 그녀의 사진에 몰입하기까지는 생각 보다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린다는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비틀즈 멤버 중에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폴 매카트니의 아내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더불어 그녀의 프로필이 나의 마음을 훔쳤다. 단지, 남편의 인기에 기대어 자신의 취미를 즐기는 강남 사모님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지 금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여성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롤링 스톤의 커버를 장식한 최초의 여성작가이며, 채식주의 동물 보호 운동에 적극 앞장선 시대를 앞서간 사회 활동가! 이런 왕성한 활동과 진취적인 의식이 그녀가 꾸린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자, 그것이 사진으로 투영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이라는 주제의 전시는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유명인으로 살아 가야만 하는 그들의 숙명을 잠시 벗어둔 채, 일상의 한 인간으로 돌아가 그녀와 그의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자연과 벗 삼아 그녀만의 재치로 찰나를 기록한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자연과 동물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그녀의 가족이 함께하는 찰나의 순간 속에는 사랑이라는 색감과 재치라는 채도가 사진 속에 투영되어 있었다.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던 무지한 나에게도, 그녀가 발견한 단순하지만 평화로운 찰나의 순간은 마치 고운 선율에 리듬을 타고 내게 아무런 저항 없이 전달되는 아름다운 뉴에이지 음악과 다를 바 없는 사진으로 내 마음을 훔쳤다.
린다는 1998년 유방암으로 세상을 마감했다. 린다를 굉장히 사랑했던 폴은 린다를 위해서 장례식장에서 자신의 힐링 곡이었던 ‘Let It Be’를 틀어 놓았다고 한다. 세기를 통틀어 가장 유명했던 음악가의 동반자이자 그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사회활동가이자 사진작가로서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던 린다에게도 수없이 많은 역경과 고난이 함께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Let It Be! 결국 린다가 렌즈를 통해 바라본 찰나의 세계만큼은 행복과 사랑으로 점철되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그것이 바로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이었을 테니까.
“린다의 사진에서 묻어나는 진심, 그리고 꾸밈없는 시선은 언제나 새롭게 다가온다."
- 폴 매카트니 -
나를 포함한 청양의 해를 품은 우리 또한 역경과 고난에 마주할 때, 애써 바둥대기 보다, Let It Be, 그저 찰나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만 있다면, 2015년 청양의 하루하루는 금세 아름드리 모여 우리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으로 채색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