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첫사랑처럼

마케터 5

by 진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아티스트는 사실상 성공한 이들이다. 아이돌의 경우를 보면 좀 더 명확하다. 수백, 수천 명이 아이돌을 지망하지만 데뷔에 성공하는 이들은 수십 명에 불가하고 데뷔를 했다고 해도 TV방송에 얼굴을 비추고 인기를 얻는 이들은 손에 꼽는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수많은 지망생들은 어떻게 됐을까?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전공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공연예술과 가까이하다 보니 화려한 조명 아래 서는 사람들보다 그들 뒤에서 뛰어다니는 이들과 더 자주 소통하게 되는데, 그중에 기억에 남는 선배가 하나 있다. 그 선배는 성악을 전공하고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온 소위 엘리트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무렵, 선배는 공허함을 이야기했다. 소개팅이라도 시켜드려야 하나 싶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공허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선배는 음악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정말 다 쏟아부었어”


그녀는 나에게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쏟아부었기에 후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홀가분하진 않는 그 감정으로 음악과의 인연을 이야기해 줬다. 어린 시절 학교에 두고 온 준비물 때문에 방과 후 다시 학교를 찾은 날이었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어른들에게도 왠지 모를 으스스한 공포감을 주는데, 아이에겐 더 큰 공포감이었을 테다. 지레 겁을 먹고 운동장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자 음악 선생님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왜 울고 있냐고 물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어린 선배를 다독이고 준비물을 찾으러 같이 교실로 들어갔다고 했다. 손을 잡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선생님의 목소리에 마음이 놓이고 언제 울었냐는 듯이 교실로 씩씩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고. 그 일을 계기로 선배는 음악 선생님을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음악도 좋아하게 됐다.


선배는 그 뒤 노래로 주목받았다고 했다. 애국가나 교가를 부를 일이 있으면 다들 이 선배를 찾았을 만큼 모두가 인정하는 동네 가수가 됐다. 방과 후 텅 빈 학교가 무서워 울었던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할 때는 그런 마음이 다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마치 음악선생님의 흥얼거림에 마음이 놓였던 것처럼. 그런 선배에게 무대 위 디바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몰랐다.


그렇게 전공을 결심하게 됐으나 대학에 가서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 보고서는 자신은 그저 ‘동네’ 가수였을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전국에서 노래 꽤나 한다는 이들이 모였으니 그중에서도 살아남으려면 특출 나야 했다. 예체능 분야에서의 평가는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줄 세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너무나 명확해서 줄 세우기가 쉬울 때도 있다. 우리의 귀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잘하는 사람은 누가 들어도 잘한다. 거기에 압도적으로 잘해버리면 아무도 그 어떤 소리도 못한다. 더 잔인한 것은 그렇게 세워진 줄은 생각보다 쉬이 뒤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많은 연습시간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그쯤에서 선배가 성악을 접었나 싶었다. 그러나 선배는 대학 졸업 후 되레 이탈리아 유학을 선택했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고,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라면 달라질 수 있지 않겠냐고, 마지막 희망을 갖고 유학을 갔다. 다른 클래식 악기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성악이 가지는 장점이라면 늦게 시작을 했어도 좋은 실력을 뽐낼 수 있다는 점과 초반에는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뒤늦게 꽃 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선배는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본고장에서 자신의 때에 맞춰 꽃 필 것을 상상하며 이탈리아로 향했다. 그녀는 돌이 박힌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연습하고, 이탈리아에서 소프라노로 태어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성악 공부였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무대에 설 수 없다면 무대 근처에라도 있어보자는 마음에서 공연기획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커다란 무대를 운영하는 프로듀서가 됐다. 이 공연에 자기 손길 안 닿은 곳이 없지만 자신이 올라갈 수 없는 무대를 볼 때마다 공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그녀의 눈동자엔 아련함이 있었다.


며칠 전, 클래식 악기를 전공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다음 달부터 취업 준비하려고”


매일 연습실에 가서 악기를 연습하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교향악단에 빈자리는 언제 날지 알 수가 없고, 방과 후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힘에 부친다고. 음악을 할 수 있는 자리도 없고, 생긴다고 해도 그 자리에 자신이 설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 말을 듣던 순간 아마 이 친구의 눈동자가 선배의 그것과 닮아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취업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서 본인이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곤 이제까지 자기는 뭐 했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남들 자격증 따고 어학 공부할 때 자기는 뭐 했냐고, 이 나이 먹도록 뭐 했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럼 나는 오히려 무미건조하게 “음악 공부했지, 놀지 않았어”라고 이야기해 줄 뿐이었다.


냉혹한 세상은 이들을 패배자라 낙인찍기도 하고, 스스로를 낙오자로 여기기도 하지만, 그저 서는 곳이 달라진 사람이다. 오랜 시간 닿기 위해 노력했던 곳에 서지 못한다고 해도 스스로가 사랑하는 일에 자신을 바쳤고, 음악을 사랑했기에 지금 그들이 있는 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다만 공허한 마음에 애달픈 표정이 나오는 건 그들의 마음속에 간절한 소망이 하나의 첫사랑 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사랑을 쉬이 잊지 못하지만 첫사랑에 집착하는 사람은 적듯이, 우리는 그렇게 마음속에 첫사랑을 묻어두고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나는 그들의 새로운 사랑에 지지와 응원을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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