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야 하는 시기인가 변해야 하는 시기인가?

by 금이양

파업 이후의 후유증이 장기화되면서 이젠 육아휴직을 끝내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이 버팀의 시기에 무엇보다 힘든 건 경제적인 것도 아니고 일을 못하고 있는 지금도 아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일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 때문이다.

부모님의 염려스러운 질문과 조심스럽게 커리어를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소리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가 왜 지금 쉬고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 일들이다.

유퀴즈에서 서현진 배우가 무명시기를 버티면서 가장 힘든 것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멘토처럼 따라는 부부 어른 분 중 한분이 생일이어서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평소에 나를 포함한 가깝게 지내는 3명의 딸을 다른 분들에게 자랑하고 싶으셨는지

우리 한 명 한 명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지금 어떤 직급에서 활약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다가

내 차례에서 얘는 내가 하는 직업이 좋아 보였는지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을 얻었다고 하는 거다.

순간 나는 뭐지? 나로 소개되지 않고 남편의 직업으로 내가 소개된 게 조금 이상하고 화가 났다.

남편이 함께 하는 자리도 아니었고 나 나름대로 직업적 소명을 가지고 공부하고 커리어를 쌓았는데 출산을 하고 잠시 쉬고 있다고 나는 나로서 소개받지 못하고 그냥 남편의 직업으로 소개되는 게 불편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말로 여럿 상처 주었던 전적이 있는 분이라 그냥 넘겼을 텐데

지금은 내가 구직활동이 맘처럼 되지 않아 조금 위축돼 있다 보니 그것도 속상했다.


결국에는 내 자존감은 내 일과 연결돼 있었던 걸까? 일이 하나 끊겼는데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이 버팀의 시기를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아이가 크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진로를 다시 바꿔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어차피 내가 하는 분야는 야근과 긴 노동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아이를 키우면서 하기에는 부적합하기도 하니 고민이 됐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영화와 드라마는 일 년에 한편 영화관에 가서 보기도 힘들어진 지금

그 좋아하던 이유들이 점점 희미해져 가기만 하다 보니 지금이 다른 일을 찾아야 할 때인가 싶었다.


일단 지금은 내가 하던 일이랑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을 먼저 시작하긴 했다.

이제 아이가 커서 유치원에도 가고 생계가 달렸다 보니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으니

아무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서 이력서를 꾸준히 넣고는 있는데

언제까지 내가 기다릴 수 있을 가? 싶음 마음에 자꾸 조급해진다.

지금까지는 영화만 쫒아서 왔는데 다른 분야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터라

커리어를 바꾸어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이 30대 후반에 진로를 위해 고민하고 방황하던 20대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일단 지금은 일을 하고 있으니 무슨 일을 하던지 돈만 벌면 상관이 없는 건가?

나한테 직업은 돈벌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는데 말이다.

꿈에 그리던 촬영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안일하게도 내가 아메리칸 꿈을 이룬 줄 알았다.

역시 인생은 호락호학하지가 않은 거 같다.

이 시기가 다시 무엇인가를 위한 도약의 시기로 바꾸고 싶지만

무엇을 잡아야 할지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열심을 내야 할지 길을 잃은 듯하다.


한국도 영화와 드라마 산업이 많이 어려워지고 극장가도 옛날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들도 OTT 제작이 늘어남으로 인해 거대 자본이 들어오면서

한국 드라마 영화 제작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 걸 들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상황이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캘리포니아주 정부 차원에서 세금 인센티브 예산을

기존의 3억 3천만 달러에서 2배 이상 증가한 액수 7억 5천만 달러로 확대한다고 하니

어떤 변화라도 있지 않을 가 생각하는데 모두들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내가 나한테 한 다짐은 올해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도 답이 없다면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다른 길도 모색해봐야 할 거 같다.

10년을 넘게 꿈을 위해 달려오고 꿈에 그리던 곳에서 일도 하고 커리어도 쌓아서

포기하자니 억울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답답할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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