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사장

다양한 인간군상

by 금이양

평소와 같은 어느 나른한 오후

커피 수혈이 간절히 필요할 때쯤

같이 일하던 Home Health 업체에서 커피를 배달해 주셨다.

순희는 이 맛에 여기서 일하지 생각했다.

어떤 한 분이 들어왔는데 어르신들 보험을 담당하는 에이전트한테서 소개받고 오신 분이었다.

간단한 혈압 체크만 해달라고 하고 지난 약국에서 먹던 약을 정리하던 과정 중에

"나는 비아그라를 먹지 않는데 왜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어.

보다시피 내가 먹을 필요는 없어 보이잖아?"

'이게 뭔 성희롱 같은 발언이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궁금하지도 않은데'

순희는 기분이 몹시 나빴지만 그냥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걸로 응대했다.

"내가 이번 주에는 저기 나파밸리에 초대받아서 출장을 가.

그전에 혈압이 올라가면 안 되니까. 미리미리 체크하려고.

내가 화장품 수입 사업을 크게 하거든."

순희는 속으로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사모님은 장단을 맞춰 주느라

"오 그래요? 되게 크게 하시는 가봐요"

"몇십억씩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오~ 대단하셔요."

의미 없는 리액션만 왔다 갔다 하는 현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이는 지긋이 60대 인 것 같지만 피부만은 매끌매끌 빛이 났다.

알고 보니 화장품을 수입하는 사장이라고 했다.

기분 나쁜 첫 만남이었지만 그려려니 하고 지나갔었다.


얼마쯤 지나고 나서 그분이 다시 오셔서 혈압도 재고 채혈도 하셨는데

이번에는 채혈을 하고 혈압을 재는 과정에서

간호사가 "아버님,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부른 게 화근이었다.

"사모님, 몇 살이에요?"

"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 왜 아버님이라고 불러?"

느닷없는 불편한 기색에 간호사 겸 사모님은 멋쩍은 듯 웃으며

"또 어떤 분들은 환자분이라고 부르는 거 엄청 싫어하거든요.

다 저희보다 어른이시니까 그냥 아버님, 어머님으로 불러드리는데.. 하하"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된 수혈시간이었다

그 사람은 천천히 걸어 나와 카운터에 서고는 말이 이어나갔다.

"자기 92년생이라고 했지? 내 여자친구가 비슷한 나이야!

자기보다 어린 여자친구도 있어봤고."

"아 그래요?"

"원래 여자친구 있었는데 이번에 내가 놀러 가기 전에 테스트를 했지

근데 딱 걸렸잖아. 거짓말하더라고"

"사업 크게 하시면 여자 조심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이번에 여자 친구도 딱 잘라냈지. 말도 마!

같이 일하던 직원도 나를 성희롱으로 고소해 가지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 돈 때문에... 골치 아파 죽는 줄 알았다니까"

"에구... 힘드셨겠어요..."

"내가 미국에 제일 잘 나가는 프로에 우리 화장품 팔잖아

한번 방송 타면 1시간 안에 다 팔려

몇십억이라 내가 방송국 출입을 아주 제 집처럼 한다니까"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건 내가 지난번 뉴욕에 가서 찍은 거야. 방송화면 보면 내가 잠깐 지나간다니까.

이제 다음에 오면 내가 샘플 챙겨 줄게. 써보면 아주 좋을 거야"

그렇게 한참을 혼자서 자신의 사업이 어떻게 시작했으며 어떻게 성공으로 이끌었는지 대해 말했다.

같이 듣고 있던 사모님이 맞장구치면서 말했다.

"참 신기해요. 일하면서 정말 다양한 부자들이 있다는 걸 듣게 되는 거 같아요. 정말 대단하셔요!"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많고 다양한 부자가 많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 사람이 나가고 나서 우리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앞에서는 하지 못했던 리액션이 그 사람이 나가자 바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누구나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앞에서 대놓고 야유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 나랑 비슷한 또래 여자친구가 있다고??

저 사람 우리 아버지 뻘이에요 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순희도 "저 사람 지난번에 나보고 자기는 비아그라 먹지 않아도 되지 않냐고 말했었어요."

"으!!! 너무 싫어"

저 사람은 알까?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왜 같이 일하던 여자 직원이 소송했는지

알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건 그 사람을 사업을 성공한 사람으로 돋보이게 한 게 아니라

방금 했던 성공적인 부자 스토리는 여자친구 발언과 지난번 비아그라 발언으로 인해

오히려 추한 부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순희는 참 안타깝다 생각했다.

사람의 기품은 이런 것에서 나타나는 게 아닌데

기품이 흐르는 사람은 대체로 조용하고 정중하며

글씨체에서도 그 정갈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세상에는 참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존재하는 것만은 맞는 것 같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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