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받으니까 일을 한다라는 단순한 생각
어떤 일을 오래 하려면 이런 마인드가 필요한 것 같다고
지선씨네마인드 박지선 교수님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순희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단순 업무가 주는 행복감도 분명 존재했다.
어느 날, 처음 보는 나이가 지긋한 신사 남자 환자분이 피검사하러 오셨다.
"어? 원래 일하던 간호사 선생님이 아니시네?"
"네.. 임신하셔서 일을 그만두셨거든요."
"아, 거참 아쉽네. 좋은 여자 소개해주기로 약속했는데. 아하. 아쉽게 됐구먼."
"혹시 좋은 여자라면 아드님 짝으로요?"
"허허허, 어떻게 알았지?" 머쓱하게 웃었다.
"아드님 아직 장가 안 가셨어요?"
"우리 아들이 해병대에 있어. 일본에서 군복무 하다가 지금은 집에 있고. 무슨 공부를 해보겠다나.
직업 군인으로 오래 있었어. 안 가본 데가 없고. 사진 보여줄까?"
사진 속에는 아담한 키의 청년과 환자분이 활짝 웃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얘가 그렇게 신앙심이 좋아. 얼마나 착하다고. 한 번은 식전 기도를 너무 오래 해서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래도 그걸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얼마나 착한지 몰라."
순희는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교회에는 신앙심 좋고 건실한 청년이 많은데 안타까운 외모 속에 갇혀있다고.
그 외모의 고비만 넘기면 정말 괜찮은 청년들이 많은데 교회 자매들이 눈이 제일 높다고 했다.
세상적인 반듯한 직장과 스펙 그리고 외모 (교회 오빠 같은 반듯한 이미지)에 신앙심까지 본다고
결코 만날 수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들을 생각하면서 배우자 기도를 한다고.
암튼 잠시 흐트러졌던 생각을 가다듬고 이 환자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순희는 이분이 꺼낸 이야기에 갑자기 숙연해졌다.
"선생님, 저 그 심폐소생술 거부하는 거 있죠. 그거 사인하고 싶어요."
"아버님... 왜요? 병원에 실려 가시면 간단한 연명치료 조치도 안 하실 수 있어요."
"우리 아버지 지금 요양원에 있는데 난 싫어. 오우. 싫어요."
아마도 남겨진 아들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인 것 같았다.
뭔가 환자가 다녀가고 나서 모두가 숙연해졌다.
뭔가 답답한 마음에 순희가 사모에게 말했다.
"너무 마음이 안 좋네요.. 참... 아들을 위해서 그런 거 같은데..."
"그러게요... 다양한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 이야기도 해주었다.
어떤 할아버지가 자식들이랑 시애틀에 잘 살고 있다가 이젠 연세가 드시고 케어가 필요한 시점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셔서 양로병원에도 스스로 들어가셔서
만약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자식들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하고
모든 마지막 준비를 혼자서 준비하셨다고 하셨다.
죽고 나서도 시신도 자식들에게 인도하지 않고 화장해 달라고 하셨다.
근데 이건 좀 너무 간 거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라고는 하지만
그 자식들이 알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 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분은 남은 자식들에게 그토록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또 다른 한 할머니는 이 할아버지랑 비슷한 사례이긴 하나
또 다른 케이스인데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식들에게 알리지 말고
자신의 신체를 의대에 학생들 해부학에 쓰일 수 있도록 기부하겠다고 사인하시고 가셨다.
그리고 해부가 끝나고 나도 자식들이 인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학교에서 처리해 주는 대로 화장해 달라고 요청하셨다.
자식들과는 인연을 끊고 살고 있는 듯 보였다.
자신이 간간히 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자식에게는 어떤 연락도 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다.
도대체 이분들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마지막을 선택했을까 싶어 순희는 답답해졌다.
자식들은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신의 곁을 떠나 멀리 살고
죽기 전에도 케어를 거부하고 혼자 떠나며 심지어 시신도 양도받지 못하는 것을
편하다고 생각했을 까? 아니면 증오로나 상처로 뒤덮여 무심했던 것일까?
나이가 들어서 죽는다는 건 이런 걸까?
얼마 전 성황리에 끝난 "폭삭 속았어요."에서 나오는 결말을 보면
자식에게 헌신했던 애순이와 관식이의 마지막은 참으로 달랐다.
애순이의 말년은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끝났던 것 같은데 순희가 마주하는 현실 속의 말년은 참으로 서글프고 초라했다.
관식이를 만나 변했던 학씨 아저씨의 말년처럼
어떤 것으로 채운 것이든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는 게 인생이라고 하는데
이분들은 참으로 얼마나 외로운 인생을 사셨을 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이분들이 어떤 사람으로 자녀들에게 기억됐을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선택들이 지금의 삶으로 이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참 늙는다는 건 그 자체로도 슬픈 일인데 이런 선택까지 오게 만든 인생을 생각하니 함부로 생각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