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으면 끝은 다를까?
순희는 이제 병원 생활에서 적응하는 가 싶다가도 또 가끔은 무료하고
또 가끔은 내가 지금 여기서 잘하고 있는 걸까 자신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나름 무료커피와 빵과 협찬 음식들에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썼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을 충실하게 사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진짜 아픈 상황인데 안일하게 두셨다가 병을 키워서 오신 분도 있고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하루가 멀다 하게 무작정 병원 출근하시는 분도 있다.
그리고 동네에 크고 작은 내과가 많다 보니 새로 개업한 이 병원에서는
최대한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잘 도와주려고 하는 편이다.
그리고 순희네 병원 원장님이 마흔이 안된 젊은 닥터라 그런지 증상이 심하지 않은 이상
약도 주사도 잘 안 놔주는 분이라 가끔 환자가 원하는 주사를 맞지 못하고 갈 때면
모두들 어김없이 의사 와이프를 붙잡고 넋두리를 한참을 하고서야 병원을 떠났다.
순희는 병원장 와이프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참 극한직업이구나 생각했다.
한분은 원장 사모님이 잘 아는 교회 집사님이신데 교회에 매일 새벽기도 나가신다고 했다.
근데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분도 자신한테 주사를 놔주지 않았다고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너무 실망했다면서 사모님에게 면박을 줬다.
사모님이 푸념하듯이 이야기하면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면 뭐 하나요.
표정관리 하나가 안 돼서 사람을 쩔쩔매게 만드는데."
"아이고 그러게 말이에요. 우린 참 모두 죄인이에요. 허허" 순희도 맞장구 쳐줬다.
순희도 크리스천이라 요즘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하면 크리스천과 교회가 덜 욕먹을까를 고민했다.
아무리 크리스천이라도 억지 부리는 환자들 앞에서는 톤이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어쩔 수가 없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그래 내가 더 잘해야지 생각했다.
적어도 어느 개그우먼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저 사람 때문에 교회를 안 나간다고."
고백하면 안 되지 않나 생각했다.
"띠리링!" 자주 전화가 오는 환자의 간병인이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들은 이야기로는 이 환자분 할머니는 지금은 이렇게 나이가 들었지만
젊었을 때에는 이쁘시고 공주처럼 사셔서 부자랑 재혼을 한 모양이었다.
연세가 들고 남편이 먼저 돌아가시고 나서는 둘 사이에 자녀가 없지만 돈은 남았으니
개인 간병인분을 고용하셔서 집에 계신데
이 간병인분이 좀 오버가 심한 분이라 늘 병원에 개인 주치의한테 하듯 전화를 하시는 분이었다.
순희는 이쯤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목소리로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지경에 이르렀다.
통화 내용인 즉 환자분이 통 기운도 없으시고 통 드시지 못하시고
운동도 안 하고 누워만 있으려고 한다고 했다.
간호사가 집으로 오셔서 링거를 놔줄 수 있냐고 물어보길래
순희가 당연하듯 홈 헬스케어 서비스 신청을 해두었다.
며칠 뒤, 홈 헬스 간호사가 가려고 환자분한테 전화를 했는데
이 환자분이 난 괜찮다고 완강하게 링거를 거부하시는 거다.
우리로써는 환자분이 거절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보니
그냥 취소하려고 하는데 간병인이 다시 전화가 왔다.
"아니 그럼 나보고 이 언니가 죽어가는 걸 지켜만 보란 말이요?
도통 먹지도 않고 말라만 가는데... 운동도 안 하고 아이고 좀 설득해 주슈.
앞집에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그 뒤로 더 이러는 거 같단 말이요.
그냥 그 간호사 오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그냥 오라고 하면 안 되는 거유?"
"어머니, 저희는 보내고 싶은데 환자가 동의를 하셔야 저희도 간호사님을 보내실 수가 있으세요.
환자가 이렇게 완강하게 나오시면 저희로써는 방법이 없거든요..."
"잠깐만 일단 취소하지 말고 내가 설득해 볼라니께 좀만 기다리세요."
순희는 이분이 참 지극정성이라는 생각 했다.
다른 간병인들 같으면 그냥 시간 때우기 식으로 일하고 무관심한데
이분은 같이 살면서 정이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남들보다
월급을 더 받으셔서 더 신경 쓰는 것 일가? 알 수는 없었다.
왜냐면 정부에서 나오는 간병인도 돈을 받고 일하지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진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놈의 세상, 돈이 있어야 늙어서도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일까?
돈도 없고,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는 과부 같은 사람은
얼마나 삶이 더 황폐할 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희는 병원에서 일하고 나서부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늙어서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사고 나서 죽지 않는다면 나이 들어서 천천히 노화되고 힘이 빠질 텐데
어떻게 죽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또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삶일 가도 생각해 봤다.
"스토너"라는 소설에서 늙어서 죽어가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
"당신은 무엇을 기대했는가?"라는 질문을 순희는 다시 한번 곱씹어봤다.
그리고 영화 "보이후드"에서 아이를 다 키우고 엄마가 아이를 대학으로 떠나보내는 날
울면서 "나는 뭐가 더 있을 줄 알았어"라고 하는 말을 곱씹어본다.
나는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부귀를 누렸던 누리지 못했던 명예가 있었던 없었던
마지막 죽음의 그 순간은 모든 것이 허무하고 외롭고 초라할 뿐이다.
백만장자도 똑같은 마지막을 마주해야 할 것이고
초라한 노숙자도 삶의 마지막 순간은 똑같이 외로움과 두려움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럼 우릴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할까?
모두가 죽으면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이지만
사는 동안 무엇으로 채워야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 생각했다.
순희는 이들을 보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아직은 너무 어렵기만 한 질문이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질문만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이 분들을 보면서 조금은 더 삶의 지혜를 얻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