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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해 차린 한 접시의 오전

브런치 글쓰기 1년

by 캐서린의 뜰


브런치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언제나 설렘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내일 아침엔 아이들 아침으로 뭘 줘야 하나, 냉장고에 빵과 계란이 떨어졌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자정을 몇 분 안 남기고 황급히 쿠팡 앱을 열어 신속히 주문하기 버튼을 누른 연후에야 비로소 눈을 감는 내게 만일 내일 브런치 약속이 있다면이란 상상을 하면 말이다. 분주한 아침의 무게를 잠시 덜어내주는 주문 같은 단어 브런치.


여린 채소위로 방울토마토 서너 알을 흘려 놓고, 퐁신한 프렌치토스트 위에 슈가 파우더를 솔솔 뿌려놓고, 바싹 구운 베이컨 두어 줄과 윤기 나는 반숙 계란 프라이를 담은 브런치. 그 풍성한 한 접시의 오전을 가족들을 위해 차린 적은 있지만 누가 차려준 브런치를 먹어 볼 기회는 없었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오전. 그 시간에 만날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거니와 공복으로 11시에 만나 브런치를 먹는 것보다 아침 요기를 하고 12시에 만나 점심 한 끼를 든든히 먹는 게 더 나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한 남편을 따라 해외 주재원 생활을 하게 될 친구가 출국 전 만나자 했다. 어느 토요일 오전 아홉 시, 아마도 식구들에겐 계란죽에 장조림 정도를 소박하게 내밀고선, 친구와 약속한 장소로 가서 그날 처음 브런치를 맛보았던 기억이 난다. 갑작스레 찾아온 추위에 칼바람을 헤치며 들어간 카페. 문을 열자 내게 훅 하고 안겨온 실내의 안락한 공기를, 넓은 접시와 투명한 유리잔에 부딪치는 양식기의 맑은 공명을, 정갈한 무채색 니트와 편안한 슬랙스를 입고 휴일 아침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낮은 대화와 잔잔한 음향이 공기 입자 속에 둥둥 떠다니던, 그 공간이 빚어낸 편안하고 아늑한 첫인상을 나는 잊지 못한다. 금요일 저녁, 연기 자욱이 지글거리며 튀는 돼지기름과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소음으로 혼재된 돌판구이 삼겹살집과는 다른 느낌의 토요일 오전 브런치 카페. 돼지기름에 구운 김치도 맛있지만, 난 연어스크램블과 블루베리 팬케익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좀처럼 먹을 기회가 없던 브런치, 그래서 어쩜 먹는 대신 쓰면 좀 나을까 싶기도 했다.

브런치라는 단어가 주는 평화로운 오전의 안온한 공간의 느낌을 지닌 채 나와 주변의 것들을 써 내려간다면 어떨까. 일주일에 한 번 날 위해 오전 한 번 브런치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내 주제에 브런치는 무슨… 이라며 일주일 한번 글 쓰기를 멈추는 때도 있었고, 아무리 자기만족이라지만 읽히지 않는 글은 써서 뭐 하나라는 회의감에 사로잡힌 날들이 여전히 있다. 그럼에도 1년 전 글보다 지금의 글이 아주 조금 나아졌다 믿어 보고 또다시 1년을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여전히 내일 아침 뭘 차려줘야 하나 처럼 이번 주엔 브런치에 뭘 써야 하나 고민을 하지만 말이다.


읽지 않는 나 보다 읽는 내가, 쓰지 않는 나 보다 쓰는 내가 더 낫다며 사소함을 소중함으로 채우는 또 다른 1년을 보내기를. 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는 걸음으로, 걷기와 뛰기의 그 어딘가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나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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