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호주

by 캐서린의 뜰


푸른 잔디를 가로질러 도서관으로 가려는데 공원 한쪽 길이 막혀 있고 우회하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시계를 보니 도서관 폐관까지 한 시간 반 남긴 시간. 내일 즈음 가기로 생각했던 미술관이 마침 바로 옆이라 미술관만 가면 다리 아프다 투덜대는 작은 아이를 설득해보기로 한다. 미술관에서 한 시간 반만 잘 보내고 커다란 놀이터에 가자는 약속을 하고선 오늘의 목적지를 미술관으로 변경했다.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지만 멜버른과 시드니 이 두 도시는 호주의 수도가 되려고 경합한 도시들이었기에 비슷한 듯 다른 이 도시들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두 도시의 박물관, 도서관, 식물정원 그리고 도시의 이름을 딴 대학을 각각 방문하며 나는 어디가 더 좋은지 혼자 이상형 월드컵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미술관은 시드니의 승리였다. 통창으로 빗물이 흐르는 듯한 멜버른의 미술관 건물도 멋스러웠지만 입구의 커다란 대리석 항아리에 생화를 가득 채워 둔 시드니 미술관은 들어가자마자 수천 점의 그림을 수집한 어느 백작의 대저택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다. 색색의 벽면을 채운 19세기와 20세기 초 목가적인 유럽의 시골 풍경화, 어느 여인의 초상화, 개척 초기 원시의 땅과도 같은 호주의 풍경화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머물렀다. 이렇게 여행은 장소를 옮기는 일이면서 때로는 시간을 건너는 일이기도 했다.

미술관을 나와 약속대로 놀이터로 찾아갔다. 부두와 인접한 놀이터는 탁 트인 공간에 바닥 분수부터 그물 정글짐, 회전 그네, 짐라인 등 흥미로운 놀이기구들이 채워져 있었다. 2시간에 3만 원 정도 하는 우리나라 키즈카페(실내 놀이터)의 가격도, 조잡한 기구도, 답답한 공간도 늘 못마땅해하던 나는, 성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 여섯 시의 태양이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 내게 손짓하는 작은 아이의 정수리를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을 때 잠시 벅차기도 했다. 때마침 ‘엄마’ 하고 나를 부른 아이를 향해, 우레탄 고무바닥이 아닌 폭신한 흙과 부드러운 나무껍질로 뒤덮인 놀이터 바닥에 서서 작은 아이가 벗어던진 모자를 흔들며 그저 짧지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다음 날은 큰길을 따라 도서관을 찾아갔다. 멜버른 도서관 돔 천장이 이미 우리에게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주어서 그런지 시드니 도서관은 그 감흥을 뛰어넘지 못했다(도서관은 멜버른 완승). 지하의 어린이 도서관에서 그림책 한 권을 보고 마침 토요 시장이 열리는 하버브리지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내친김에 하버브리지를 걸어보기로 했다. 큰 배와 초대형 크루즈가 드나드는 다리다 보니 발아래 수면은 예상보다 아득했고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오페라 하우스 역시 작아 보였다. 기차를 타고 한강철교를 지나갈 때 그 아래 출렁이던 강물이 연한 하늘색이었다면 하버브리지 아래 물색은 짙은 파란색이었다. 발아래 흐르는 이 물이 강물이 아니라 바닷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육중한 차가 지나갈 때마다 미세하게 진동하는 다리 위에서 한 번씩 움찔거리게 되었다.


호주에 와서 늘 바다 가까이 있었지만 챙겨 온 수영복을 한 번도 입지 못했다. 도로 가져갈 수 없겠다 싶어 다음날은 해수욕이 가능한 바다로 나섰다. 멜버른에서 우리가 마주한 바다가 요트가 정박해 있는 잔잔한 바다와 단정한 해변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크고 작은 만과 곶이 들쑥날쑥 이어진 시드니의 해안가는 파도의 포말이 뭉게구름처럼 밀려오는, 서퍼들을 위한 바다 같았다. 브론테 비치에 오기 전까지는 밀려오는 파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 썰물을 따라 흘러가다 보면 남극에 가 닿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거칠게 밀려오는 밀물을 거슬러 저 멀리 앞으로 나아갔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뭍으로 다시 밀려오는 서퍼들의 몸짓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불현듯 오래전에 봤던, 젊음, 파도, 자유라는 이미지로 기억되는 영화 <폭풍 속으로>의 여운이 떠올라 검색을 해 보았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호주의 한 바닷가에서 찍었다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모래밭에서 조개껍데기나 줍고 밀려오는 파도에 꺅 소리를 내지르며 호들갑을 떠는 아이들은 웅장한 오늘의 파도 앞에 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지 나보다 먼저 집으로 가자고 했다. 자연과 하나 된 이들이 누리는 해방감, 그들을 향한 나의 경외감, 다시 태어나도 내가 알아내지 못할, 무지의 세계를 향한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남겨두고, 우리는 다시 버스 종점으로 되돌아갔다.


공항 갈 날이 가까워지자 수중의 잔액을 계산하고 목표했던 생활비 안에서 어찌어찌 살아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들의 아이스크림엔 관대해지고 내가 그리도 마시고 싶던 커피에는 인색했던 시간도 이젠 끝이 보인다. 한국에선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굳이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시지 않는데 왜 한 달 살기만 하면 수시로 커피를 사 마시고 싶은지. 아마도 두 분의 브이아이피를 모시는 여행이라 누군가 타준 한잔의 커피잔 앞에서 나는 몹시도 쉬고 싶었을 테고, 또 어쩌면 낯선 환경에서 두 마리의 시끄러운 아기새를 보살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인해 각성 상태가 절실히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날은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엽서 속 풍경처럼 보이는 언덕에 앉아 차분히 일몰의 시간을 기다렸고, 그렇게 우리의 한 달이 마무리되었다.


여행은 답답한 현실을 잠시 벗어나게도, 돌아와 내 일상에서 아무런 의식 없이 누렸던 것들을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히 여기게도 한다. 전날 이 시간 나는 분명 킹스크로스 거리에서 서서 두 개의 캐리어와 두 아이를 세워놓은 채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서 남은 돈으로 공항에서 요기를 할지 아님 그냥 우버를 불러서 편히 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홀로 소원로를 걷다 근처 베트남 식당으로 들어가 나시고랭 짜조 쌀국수 세트를 만삼천 원에 먹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으려 애쓰지 않아도 들리는 옆 테이블 어느 부부의 대화 내용을 흘려들으며.

내가 두 아이와 함께하는 한 달 살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호주 여행을 한 번만 검색해도 나와는 무관한, 안 가보면 후회하는 시드니 브런치 맛집, 인스타 감성 멜버른 카페란 주제로 무수히 많은 피드들이 떴다. 때론 아이와 호주 가려는데 하얏트 호텔과 힐튼 호텔에서 고민 중이에요 류의 질문을 보면 헛웃음이 나왔다. 이번 디올 신상 토트백 화이트가 나을까요 블랙이 나을까요의 고민과 같았기에.
겨울방학 영어, 수학 특강을 신청해 놓은 아이 친구 엄마들이 서영이네는 좋겠다, 이번에 호주 가서 라는 말을 할 때면 그저 웃고 말았다. 일 년 치 학원비 모아서 간다는 말도 이젠 식상하다. 이는 그저 경제적 윤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걸 알려고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비록 궁상스럽지 않은 적이 없던 한 달이었지만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많은 것들은 남루한 내 일상의 한 귀퉁이를 이국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그곳에서 흘렸던 내 땀방울들로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아 주었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 아이들을 핑계 삼아 호시탐탐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애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돈이면 이젠 애들 학원을 좀 보낼까 싶다가도 잠시 또 현실에서 숨을 고르고 아마 나는 또 나설 것이다. 한 손에는 캐리어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준영이 손을 잡고서.
“서영아, 멀미약 챙겨 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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