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기도

by 캐서린의 뜰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향하는 야간 기차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일정이었다. 지난번 태국 한 달 살기에서 방콕 대신 푸켓을 들르는 바람에 치앙마이-방콕 구간의 침대칸 기차를 탈 수 없게 되어 아이들은 많이 아쉬워했었다. 한 시간 반이면 비행기로 갈 수 있는 곳을 열 시간에 걸려 기차로 가는 데는 그 나름의 운치가 있고 여행자 입장에서는 하루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비록 몸은 불편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야간 침대칸 기차라서 아이들은 멜버른을 떠난다는 아쉬움보다 침대 기차를 탄다는 사실에 더 흥분돼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잠시 감상에 젖을 틈도, 약간 침울해할 틈도 주지 않고 그저 캠핑카를 탄 것 마냥 즐거워했다. 덜컹이는 차창 밖, 지붕 위로 들판 위로 채워지는 노을빛은 바깥 풍경을 점점 거뭇하게 지워갔고 결국엔 객실 형광등에 반사된 우리 모습만 창문에 흐릿하게 아른거렸다.


침대칸 기차 1층 침대에서 작은 아이를 꼭 안고 자는 일은 설렘과 동시에 고단한 몸이 밤새 옅고 옅은 잠에서 출렁거리는 시간이었다. 2층 침대에서 잠든 큰 아이도 행여 떨어질까 봐 벽에 바짝 붙어 자고 있었다. 끊임없이 덜컹거리는 차체에 내 몸도 덩달아 흔들거리고 가끔 짧게 정차하는 어떤 역의 환한 불빛에 놀라기도 하고 곡선을 그으며 지나갈 때는 비좁은 침대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몸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새벽 세시 반, 기차는 멜버른에서 한참 멀어졌고 문득 눈이 떠져 바라본 창밖에는 별이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놀라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깨웠다. ‘일어나 봐. 댄드러프*야.‘ 아이들은 잠결에 일어나 창밖을 보더니 ’와, 진짜 댄드러프네‘ 하고 씩 웃었다. 껌벅거리던 눈을 비비며 창밖을 응시하던 아이들은 다시 부스럭 이불밑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까만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 사위가 온통 어둠과 별만 채워진 곳에서 별이 끝나는 곳이 지평선이겠구나 가늠하며, 나는 한동안 그 장면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밤새 뒤척인 탓에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를 보러 걸어갔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마주한 오페라 하우스는 사진에서 본 것보다 웅장한 느낌이 덜했다. 분명 티브이에서 본 오페라 하우스는 개화가 절정인 아이보리빛 목련 같았는데 직접 보니 누런빛으로 시들어가는 목련 같았다. 하버 브리지를 본 아이들은 ‘엄마 여기 서울 같아’라고 했고, 나는 ‘맞아, 우리 지금 방화대교 밑이야. 주황색 방화대교를 검은색으로 칠해놓은 거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시드니 도착 첫날, 시드니는 조금 더 역동적인 느낌의 도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직 더 알아봐야 하지만 내 짐작대로 내 취향은 역시 차분한 느낌의 멜버른이구나 싶었다.


멜버른에서도 여행 초반 플린더스 역과 세인트 폴 성당과 같은 시내 중심의 명소를 갔던 것처럼 시드니에서도 다음날 하이드 파크와 세인트 메리 성당 일대를 다녀왔다. 날은 흐리고 바람은 몹시 불었다. 작은 아이는 세인트 메리 성당을 보면서 상파울루 성당이야라 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블루마블에서 봤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상파울루 성당도 쌍둥이 첨탑이 있는 구조고 세인트 메리 성당 역시 그러해서 아이의 눈썰미를 칭찬해 주었다. 비둘기들을 보고 곧장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잊고 있던 상파울루의 성당이 갑자기 눈앞에 그려졌다. 그날의 날씨도 마침 오늘 이곳의 날씨 같았지. 아이가 말하기 전까지 상파울루 성당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조차 가물가물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날의 바람 그리고 그날의 내 마음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여행지에서 과거의 또 다른 여행지를 떠올리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마치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듯 말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성수대에 성수가 채워 있었다. 손끝에 성수를 묻혀 오랜만에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다. 엄마 이제 하느님 안 믿잖아 하고 큰 아이가 묻는다. ‘신을 믿지 않아도 기도할 수는 있는 거야. 내 간절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으니까. 설사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마음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이번에 세인트 메리 성당에서 내가 염원하던 바 역시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 소중한 바람은 어디로 쓸려가지 않고 한동안 내 마음에 단단히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겠지.



* 댄드러프(dandruff): 비듬. 넷플릭스 어린이 만화 영화 <back to the outback>에서 시드니 동물원을 탈출한 동물들이 사막의 밤하늘에 수 놓인 무수히 많은 별을 처음 보고서 댄드러프라고 말함. 작은 아이가 이 영화를 보고 호주에 가고 싶어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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