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주일은 모든 게 낯설었다. 교통 카드를 어디서 사고 충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에 카드를 태그 해야 하는지 조차 남들이 하는 것을 눈여겨봐야 했다. 그다음 주는 시내의 거리가 익숙해졌다. 중심가를 벗어났어도 집으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트램을 타야 하는지 감이 잡혔고, 집 근처 몇 정거장 전부터는 익숙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을 이정표 삼아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미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좁은 골목과 작은 상점들이 눈에 들어오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초조해했다. 이제 겨우 근교여행을 다닐 심리적 여유가 생겼는데 말이다.
멜버른에 오기 전 별다른 사전 검색도 하지 않고 그저 비행기와 숙소만 예약하고 왔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곳만은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이 있었다. 바로 퍼핑 빌리 레일웨이였다. 토마스의 모델이 된 증기기관차를 탈 수 있는 기차마을. 벨그레이브까지는 시내에서 기차로 한 시간가량 걸렸다. 이미 탑승을 완료하고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 다음 기차를 타려고 줄을 선 사람들 모두 한껏 들떠있다. 챙 넓은 낡은 모자를 쓴 백발의 역무원 할아버지, 진청의 멜빵바지를 입으신 기관사 할아버지는 상기된 여행자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셨고, 뜸 들이는 압력솥처럼 추추 푸푸 거리며 달릴 채비를 마친 우리의 빌리는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의 함성을 받으며 덜컹덜컹 나아가기 시작했다. 칙칙폭폭 보다는 영어표현인 허프 앤 퍼프가 더 어울릴 것 같은 먹구름색 연기를 뿜으며 힘차게 시속 20킬로로.
창틀에 걸터앉아 창 밖으로 다리를 내밀고 탑승해도 되는 이 퍼핑 빌리 기차는 나무로 이어진 굽은 다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기도 하고, 소와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들판과 언덕 위 예쁜 집들을 지나갔다. 싱그러운 바람은 창밖으로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흩트렸고, 키가 큰 유칼립투스 나무 아래 양치식물 잎은 새어 들어오는 환한 빛을 받으며 한들거렸다. 그늘진 숲에서 잿빛 석탄 연기가 투명한 햇살을 만나는 순간, 핀 조명을 받은 무대에 드라이아이스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 몽환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살면서 벅차게 행복한 순간들이 많이 오지 않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확실한 행복을 만끽하며 우리는 여기 오길 참 잘했단 생각을 했다. 걸음을 멈추고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 흔들어주는 마을 주민들, 차의 경적을 울리며 차창을 내려 손 흔들어주는 행인들, 타인을 향한 무구한 마음들이 더해져 오래도록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멜버른을 떠나기 마지막 주말에는 부지런히 근교 여행을 다녔다. 멜버른 중심에서 30분 거리면 닿을 수 있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을 찾아갔다. 서울 시내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떨어진 경기도에 사는 우리이기에 멜버른 시내에서 30분 거리의 이곳이 왠지 친근했다. 이런 곳에서 1년만 아이들이 학교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괜히 근처 초등학교 주변도 어슬렁거려 보고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하릴없이 이곳 집세도 알아본 나. 학교 담벼락에 붙어있는 무료 책 나눔 함에서 아이들 책 한 권을 기념품으로 감사히 가져왔다. 머무를 수 없고 떠나야만 하는 안타까운 내 마음을 알 길 없는 아이들은 모처럼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즐거워한다. 대형 선박이 드나드는 짙은 바다를 보며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오직 핑크색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파는 무지개 셔벗 콘뿐이어서 두 아이 손에 각각 콘을 쥐어주었다. 이번에도 나는 아이스 롱블랙을, 참았다.
다음 날은 멜버른에서 기차로 한 시간 조금 넘는 질롱으로 향했다. 서울역보다 규모가 조금 더 크고 복잡한 멜버른 서던크로스역에서 기차를 타려는데 마침 그날 질롱으로 가는 철로가 부분 공사 중이라 직통열차는 운행하지 않는다 했다. 서너 정거장 기차를 탄 다음, 철도공사에서 제공하는 연결 버스 타고 다시 남은 구간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여정이었다. 중간에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다 오늘 아니면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이에게 곧 도착한다고, 실은 나도 언제 도착할지 알지 못한 채로 아이들을 타일렀다.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한 질롱. 허기진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쌀국수와 아이스크림을 먹이고, 아이들이 흡족해하는 틈을 타서 나는 길 건너 미술관을 둘러보자고 했다.
멜버른 국립 미술관에서도 모네의 그림이 몇 점 전시되어 있어서 모작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었는데 작은 도시 질롱 시립 미술관에도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 중 하나가 있었다. 심지어 빌려서 전시한 게 아니라 호주 정부가 구매해서 이곳에 전시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오전 내내 고생스럽게 질롱에 온 대신 이런 귀한 작품을 여기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인파에 쌓여 스치듯 봐야 했던 모네의 그림을 아무도 없는 작고 고요한 전시실에서 잠시나마 독점 관람을 하다니. 아이들은 모네의 그림 뒤 벽 하나 너머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서 각자 자기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미술관 바로 옆 공원에서는 맥주축제의 열기가 창틈으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각기 다른 행복감에 젖어 있는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멜버른을 떠나기 전 날, 마지막으로 큰 아이는 클로에와 도서관에서 만나 오후 늦게까지 클로에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떠나는 당일, 처음 갔던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나는 한번 더 나시고랭을 먹었다. 그날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처음으로 도서관을 갔듯이 마지막 점심 후, 우리에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기로 했다. 도서관 앞 잔디 언덕엔 비둘기와 사람들이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트램 소리와 버스킹 음악이 도시의 배경처럼 흐르고 있었다. 시드니행 밤기차를 타기 전, 아이들에게 이른 저녁으로 조각 피자를 사 주었고 마침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센트럴 역 앞의 그에게 내 몫의 피자 한 조각을 건넸다. 오늘이 멜버른에서의 마지막이란 나의 말에 그는 아이들과 악수대신 주먹을 맞대며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그의 안녕을 마음 깊이 빌고 헤어졌다.
과거에 잠시 머물렀던 어떤 도시를 감각해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멜버른을 언젠가 떠올린다면 나는 저 멀리 성당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가 아닌 딸랑거리는 구세군 종소리에 더 가까운 트램의 경적소리를 기억해 낼 것이다. 창문을 닫아도 트램의 육중한 덜컹거림이 진동처럼 느껴지는 이 도시의 소음과, 신경질적이고 위협적인 자동차 경적이 아닌 산타할아버지 썰매에 단 밝고 가벼운 방울 소리를 함께 떠올릴 테다.
어떤 장면도, 냄새도, 맛도 아닌 소리로 기억될 멜버른.
다시 오고 싶을 것 같다. 아니 이곳에서 사계절을 다 보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