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이름으로 우리를 혐오하고 저주하지 말길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종교계에서는 우리를 혐오의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미국의 코믹스 창작 크리스 클레어몬트가 엑스맨 코믹스 <신은 사랑하고 인간은 살해한다>를 펴내면서 이 이야기가 20년 뒤에는 얘기할 필요가 없거나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가 되길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시의성 있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는, 그 말 그대로인 셈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일부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신의 이름을 내걸고서 우리를 미워하고 혐오하며 마치 우리를 위한다는 척 온갖 엉뚱한 언행을 하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성소수자로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크다. 무엇을 위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음에도 그러는건가 싶기도 하고.
이번 경우도 그러하다. 몇몇 대형 교회들을 주축으로 가정 수호를 내세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기도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속상했다. 나도 이렇게 속상한데 다른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저걸 보고 얼마나 속상할까 하는 생각도 드는 근래였다.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우리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기도회에 대해 입장문을 업로드했고 오늘은 이 입장문을 올리고자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현실이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좋을까. 생각은 많아지는데 딱히 이렇다 할만한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 그 혐오와 저주의 예배를 걷어치워라!]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주고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버리는 것이다.”(공동번역 이사 58,6)
오는 2024년 10월 27일,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기도회조직위원회> (이하 조직위) 라는 연합단체 주도로 반동성애와 가족수호를 기치로 내건, 반동성애 혐오 집회 및 기도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에 단 하나도 동의할 수 없고, 인권감수성과 이해를 갖춘 대다수 동료 시민 또한 그들의 기도회에 귀 기울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기도회’의 광풍 속에서 상처를 받으면서도 끝내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켜나갈 성소수자 그리스도인과 그 동료,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알고 있기에, 결코 침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 집회는 ‘예배와 기도회’라는 이름을 가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철 지난 음모론에 바탕을 두고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아주 끔찍하고 추악한 죄악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기도회의 이면에는 명백한 반사회성과 부당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 기도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정당화 하고, 이를 공적인 공간에서 대중 앞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자리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힘써 온 포용과 다양성, 인권 존중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며,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의 인권을 침해하는 시도일 뿐이다.
기도회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름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더욱 크다.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될 때, 사회적 갈등은 더 깊어지며, ‘가난한 사람들’인 상대적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그러므로 성소수자들을 향한 혐오 발언과 차별적 행동은 단순히 개인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해악을 끼치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이런 이유로 이 ‘기도회’는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한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며, 공동체의 통합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행위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는 반사회적이고, 비민주적이고, 반여성적이고, 반인권적인 수준 낮은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조직위는 기억하길 바란다. 특히 그 조직위에 참여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은 교회의 고령화 문제가 단순히 저출생 때문이 아니며, 그 문제가 왜 발생하고 심화되는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성찰하길 바란다.
이번 ‘기도회’는 단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차별을 조장하는 문화적 흐름에 동조하고 있다. 혐오 발언은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빙자하여 표현되지만, 이는 강력히 규제되어야 할 반사회적인 혐오 발언이다. 이러한 발언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한 사회라는 목표를 파괴하는 행위다.
성소수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엄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 성소수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으로 지으신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멸시하는 언행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사랑과 정의에 있다. 우리는 이 땅의 교회가 이를 실천하기 위해, 혐오가 아닌 사랑으로 일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깊은 고통과 고립감에 공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 공동체에서조차 정체성으로 인해 부당하게 배제되고, 비난받으며, 신앙의 이름으로 상처 받고 있다. 이 기도회는 그들에게 또 다른 고통의 원천이 될 것이며, 그들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할 뿐이다. 우리는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며,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는 아주 슬픈 마음으로, 아직까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잃지 않고 더욱 반짝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음을 우리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부당하게 배제하는 교회는 평등한 식탁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그런 교회는 우리 하나님께 에클레시아(Ecclesia)라는 이름을 박탈당할 수 있다. 그 때의 교회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추억만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발, 제발 하나님 앞에 동등하고 독특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당하고 부정한 기준으로 구분하고 재단하며 배제하는 끔찍한 짓을, 이제라도 중단하기를 무지개빛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권고한다.
2024. 10. 26
무지개예수
연명단위:
단체 단위 참여(53개)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 감리교 농목, 공간엘리사벳, 공익변호사 함께하는 동행, 광주성소수자성경읽기모임, 길섶교회, 끄트머리상담센터, 대전한울교회 , 도심 속 수도원 ‘신비와 저항’, 동도교회, 들꽃향린교회, 로뎀나무그늘교회, 멸종반란 가톨릭, 모두의교회 P.U.B., 무등교회(기장), 무지개센터 , 무지개신학교, 믿는 페미, 부천무지개유니온, 부천바른기독교인연대, 서울제일교회(기장), 섬돌향린교회, 성공회 봉천동나눔의집, 성공회 수원나눔의집, 성공회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 성공회 인천나눔의집,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성공회 춘천나눔의집, 성공회 포천나눔의집, 성소수자부모모임,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숨탄것들의교회, 씨앗스토리(씨앗교회), 혼인평등법 제정연대, 여름교회, 여울교회, 영광제일교회, 예수님과 여성을 공부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 예수함께공동체, 옥합교회, 인천성소수자인권모임, 재속프란치스코회, 전국퀴어모여라, 제주피정의집 빌레하우스, 천주교 더나은세상, 천주교인권위원회, 초록상낭, 하늘빛교회, 한국교회를향한퀴어한질문 큐앤에이, 한국예수교회연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성정의위원회, 향린교회
개인 단위 참여(214명)
강길용, 강민휘, 강사은, 강선화, 강지선, 강혜란, 고수진 , 고윤희, 곽규일, 곽규호, 권경희, 김경희, 김규환, 김기원 , 김동환, 김민지, 김상훈, 김석원, 김성근, 김세교, 김세은, 김소휘, 김승우, 김시현, 김신아, 김안나, 김영선, 김예원, 김예진, 김온유, 김용준, 김우진, 김원배, 김자은, 김정원, 김주아, 김진이, 김창대, 김창숙, 김태영, 김하나, 김한승, 김현, 김혜지, 나루, 나무 대철, 나희덕, 남상백, 노푸른, 노훈기, 디딤돌, 루카, 만돌이, 바람소리, 박경, 박경아, 박리나, 박민주, 박새롬, 박성덕, 박순혁, 박영만, 박영인, 박우섭, 박은정, 박은호, 박재규, 박재현, 박진균, 박창열, 박현주, 배경진, 백찬양, 비튜, 상현, 새말, 새벽, 서민규, 서유진, 서정숙, 성경원, 손정민, 손지은, 송예람, 스텔라, 승아, 신연식, 신지민, 신현정, 쌔미, 안광획, 안즈, 양미연, 양우주, 엄기봉, 엔틸드, 오규섭, 오상운, 오세찬, 오은지, 오현선, 우희종, 원천일 프란치스코, 위길복, 유건, 유동현, 유연, 유준현, 유해리, 유형, 유형선, 윤송일, 윤지수, 윤창순, 윤태현, 윤혜성, 윤혜임, 은호, 이경아, 이계춘, 이규원, 이다희, 이미영, 이민하, 이병일, 이보나, 이상미, 이상한 나라의 폴, 이성순, 이소희, 이승미, 이시은, 이영란, 이예주, 이은수, 이의진, 이재광, 이재우, 이정, 이정화, 이지아, 이지음, 이창아, 이필완, 이현숙, 이형규, 이형미, 이혜복, 이훈 힐데가르트, 임나경, 임서희, 임성영, 임영환, 임유경, 임찬희, 임혜주, 자캐오, 장미경, 장선영, 장예정, 장희도, 전숙경, 정근재, 정다은, 정동렬, 정명진, 정선애, 정수진, 정순일, 정원진, 정은애, 정인도, 정일용, 정현, 조서울, 조용환, 조정희, 조혜진, 지만재, 지명화, 지성희, 차세연, 차영선, 차준석, 차현재, 채호수, 청하, 최명섭, 최성모, 최이형순, 최정규, 최지은, 최지해, 최형미, 파니, 하지숙, 한예선, 한은비, 한은정, 허복순, 허선희, 허유석, 허종석, 현순호, 홍다은, 홍영초, 홍정선, 홍주리, 황선애, 황한솔, 황해원, 힐데, F1, Isa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