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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Jan 20. 2021

더부살이 야옹 선생

내게 살아감의 가치를 알려준 그대에게.



옛날, 어느 한 마을에 대리석으로 지어진 어느 집에는 솜씨가 뛰어난 조각가가 살고 있었어요. 그는 예술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뛰어난 조각 실력으로 상을 많이 받았고, 예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헀어요.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전시를 통해 세상에 자신의 작품과 이름을 알렸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능력과 실력에 감탄했어요.


하지만 조각가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는 몇 달에 걸쳐 제대로 자지도, 식사를 하지도 않고 작업에 몰두했어요. 졸리지도 않고 배고픔을 느끼지도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성황리에 전시회가 막을 내리고 나면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우울해했어요. 하루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자신이 공들인 작품을 망가트리기도 하고, 자신의 침대에 누워서 울기만 했어요. 점차 조각가는 쇠약해졌어요. 작업을 하는 날보다 작업을 하지 않는 날이 늘어났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주체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날이 이어졌어요.


똑똑.

"계신가요?"


조각가는 조용한 집에 혼자 있었어요. 그래서 현관문 앞에서 들리는 낯선 목소리가 너무나도 잘 들렸어요. 하지만 대답하지는 않았어요. 그는 너무나도 무기력했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답할 힘도 없었어요.


끼익.

"실례합니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렸어요. 조각가는 아무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현관을 잠그지 않았던 것인데,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누군가 찾아왔어요. 조각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이 있는 거실로 걸어왔어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다가간 조각가의 눈 앞에는 현관문을 등지고 서 있는 검은 고양이가 보였어요. 검은 고양이는 한 손에는 네모난 가방을, 한 손에는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시계를 들고 있었어요.


"당신, 뭐야."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야옹선생이라고 합니다. 여기가 그... 유명한 조각가 선생님의 집이 맞나요?"


조각가는 자신을 찾는다는 검은 고양이의 말에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어요. 그는 현관문을 열고 고양이에게 나가라고 하려 했지만, 자신을 야옹선생이라고 소개한 검은 고양이는 불쑥 허락도 없이 집 안으로 발을 들였어요. 그리고 거실을 훑어보며 감탄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어요.


"우와, 정말 대단하네요. 역시 소문과 명성에 걸맞는 분이시라는게 느껴져요. 저는 미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영혼이 느껴져요."

"당신은 뭔데 남의 집에 들어와서 이러는겁니까."

"그런데요, 이 조각상은 어딘가 많이 슬퍼보여요. 그리고 저 조각상은... 뭐랄까. 화가 느껴지는 손길이군요."


검은 고양이의 말에 조각가는 마음 속에서 울컥 하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느꼈어요. 하지만 조각가는 최대한 신사적으로 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열고 입을 열었어요.


"미술에 문외한이라는 당신에게 평가를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돌아가세요."

"저요?"


검은 고양이는 자신을 가리키며 조각가와 눈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무언가 잠시 고민하는듯 하다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대뜸 짐을 풀기 시작했어요.


"나가라니까 짐을 푸는 이유는 뭡니까?"

"선생님의 가족들이 선생님을 걱정하고 계셔요. 그래서 저한테 선불로 치료비를 모두 지불하시고 선생님을 제가 고칠 때까지 이 집에서 머물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허락이라기보다는 가족 분들의 요청이었지요."


조각가는 불같이 화를 버럭 냈어요.


"나가!"


하지만 야옹 선생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거실에서 머물면서 매일 하루에 두 번 조각가의 방에 찾아갔어요. 조각가는 매일 자신을 찾아오는 야옹 선생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야옹 선생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음을 연 조각가는 야옹 선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했어요.


조각가가 어렸을 때, 그의 부모님은 조각가가 또래 친구들을 사귀는 것을 싫어했어요. 부모님은 그가 오로지 조각만을 하길 원했어요. 그래서 조각가의 어린 시절에는 친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각가는 시골에 있는 가족들을 떠나 도시에 있는 예술학교를 다니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조각가가 집을 떠나 먼 곳에서 예술학교를 다닐 때, 그는 그 곳에서 매우 엄격한 선생님을 만났어요. 어린 조각가는 모두에게 인정받았지만 선생님만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고, 완벽함을 추구할 것을 강요했어요.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참다 못한 조각가는 선생님과 크게 말다툼을 하고 헤어지게 되었어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은 야옹 선생은 조각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로 결심했어요.


"따라해보세요. 나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면 사람들이 나에게 칭송을 보낼 것이다."


조각가는 그 이후로 작업실에서 무언가를 조각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각가는 다시 작업하기를 힘들어했어요. 야옹 선생은 그 모습을 보며 혼자 생각했어요.

'내 치료에서 무엇이 잘못된 거지?'


그러던 어느 날, 야옹 선생이 조각가의 방에 찾아오지 않아 조각가는 방을 나와 거실로 향했어요. 그리고 살짝 열린 창문 너머로 야옹 선생이 다른 고양이와 대화하는 것을 들었어요.


"넌 언제까지 소용도 없는 그 인간에게 붙어있을거냐? 나같으면 진작 떠났겠다."

"나라고 이게 좋은 줄 아나본데 그렇지 않아. 이미 돈은 받았고... 아, 돈을 받은 것도 사실 내가 먼저 치료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받은것이지만. 아무튼 먼저 가족들에게 제안한 내가 잘못이지. 유명세 타고 싶은게 뭐라고 이러고 있는건지 모르겠어."


야옹 선생은 유명해지기 위해서 조각가를 치료하겠다고 조각가의 가족들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조각가는 야옹 선생과 말다툼을 하게 되었어요.


"당신은 왜 미술을 계속 하고 싶어하나요?"

"그러는 당신은 왜 나를 치료하고 싶어하는겁니까?"


야옹 선생도, 조각가도 서로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어요. 야옹 선생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조각가는 왜 자신이 조각을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며칠 뒤, 야옹 선생은 조각가의 방을 찾아가 유명해지고 싶었던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어요.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조각가는 다시 마음을 열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왜 자신이 조각을 시작했는지를 떠올리기 시작했어요.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던 조각가는 어렸을 때를 떠올렸어요. 어린 조각가는 자신이 작품을 만들어낼 때마다 자신을 바라봐주고 칭찬해주던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해냈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님의 칭찬과 부드러운 시선은 줄어들었어요. 그가 더, 더,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때만 잠시나마 따뜻한 마음을 부모님에게 받을 수 있었던 것도요.


조각가는 생각했어요.

나는 완벽한 조각을 해야 한다고.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완벽한 조각이 아니면 그 어떤 가치도 없다고.


야옹 선생은 가만히 이 이야기를 듣다가 말했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서툴러도 괜찮다고.

그리고 불안과 강박을 떨쳐 낸 조각가는 어린 시절 작업을 할 때의 즐거움과 행복을 다시금 기억해냈어요.


조각가는 다시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야옹 선생은 그 옆에서 조각가를 가만히 지켜보았어요. 한참을 지켜보던 야옹 선생은 치료가 끝났다고 판단해 조각가의 집을 떠났어요.


조각가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서 전시회에 작품을 공개했어요. 그리고 아픔을 이겨내고 새로이 만들어진 그 작품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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