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비스 Jul 03. 2021

너가 나한테 온 것은 너무나도 큰 행운이고 축복이었어

어쩌면 만남이라는 것은 기적일지도 몰라.


 그 곳은 잿빛이라기보다는 흑색의 도시였어요. 길에는 가로수도 없고 그 흔한 들판 하나 없는 곳이었어요. 사람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왔다갔다를 반복했고, 도로에는 차들이 넘쳐나고 마구 클락션을 울려댔어요.


 그 가운데 지나의 집은 사람들이 바쁘게 다니는 도로에서 작은 길을 따라 20분을 걷고, 또 좁은 길을 골목골목 걸어 25분을 걷고, 산길과 같은 계단을 한참 걸어가야 나오는 곳이었어요. 그 곳은 모두 비슷한 집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지나의 집도 다른 곳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어요. 다만 다른 것은 지나가 사는 곳은 잡초가 문 앞에 무성히 자라 있고, 문을 열 때마다 유난히 크게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동네 사람들은 모두 이웃집에 누가 살고 그 집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나네 집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집이었어요. 지나는 항상 새벽이나 늦은 시간에만 외출을 했고, 사람들이 다닐만한 시간에는 거의 집을 나서지 않았어요.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항상 두려워했고,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매우 자주 떠올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무섭게 쏟아지는 날이었어요. 저녁 7시가 넘으니 장마처럼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까지 내리치고 있었어요. 지나는 문을 살짝 열어서 얼마나 비가 많이 내리는지 확인을 하려 했어요. 그리고 현관문을 살짝 열자, 문 앞에 작고 젖소무늬를 가진 얼룩강아지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처음에 지나는 매정하게 현관문을 닫았어요. 그러자 문 너머로 강아지가 끼잉끼잉하며 발로 현관문을 긁는 소리까지 들렸어요. 지나는 다시 현관문을 열었고, 여전히 그 강아지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비를 맞으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어요. 굵은 장대비를 맞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에 지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현관문을 닫았어요. 강아지를 데려왔다가는 많은 일과 변화가 생길 것이고, 지나는 그것들이 두려웠어요.


 어느덧 시계바늘은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지나는 현관문 앞에서 대략 4시간을 고민하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 강아지는 포기하지 않고 현관문을 밖에서 계속 긁고 있었어요. 그리고 지나는 잠시 멈춰서서 큰 한숨을 들이내뱉었다가 마시고 현관문을 열었어요. 강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비를 너무 맞아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본 지나는 대충 현관 근처에 있던 마른 걸레로 강아지를 싸서 집 안 화장실로 데리고 왔어요.


 "야, 강아지. 이건 너가 선택한거니까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야."

 "..."

 "이름을 뭐라고 지어야하지. 그냥 평범하게 지니라고 하자."


 지나는 마른 걸레로 싸서 데려온 강아지를 대충 따뜻한 물로 씻기면서 강아지에게 말을 걸고, 지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큰 뜻은 없는 이름이었지만 지나는 나름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강아지를 씻긴 뒤 방으로 데려와 낡은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혼자만 쓰던 방석을 지니에게 주었어요. 그리고 지나는 방석 위에서 노곤하게 자는 지니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꼈어요.


 지나의 생활패턴에 지니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지나의 생활패턴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어요. 우선 지니는 늘 아침과 낮에 밖에 나가고 싶어했고, 지나는 그냥 문을 열어주기만 할까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후드티에 모자를 눌러쓰고 함께 나가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앞집에 사는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었어요.


 "학생, 그 우리집 뒤에 잡초 많은 그 집에 사는 아가씨 맞지? 나 이 동네 오고 아가씨는 처음 보는 것 같아."

 "아, 안녕하세요."

 "저 강아지는 학생 강아지야? 근데 강아지를 산책시킬땐 반드시 목걸이랑 줄을 해야 하는데... 그리고 집에 사료는 있어? 우리집도 개 키우거든. 혹시 모르니까 사료 좀 챙겨줄게. 무슨 일 생기면 괜찮으니까 찾아와."


 그렇게 사료 한 봉지를 받고 계단을 거의 내려왔다가 지나와 지니는 다시 집에 돌아왔어요. 갑작스럽게 앞집 아주머니를 만나서 놀라기도 하고 무서웠지만 그래도 아주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었어요. 이렇게 낮에 나가 사람을 만난 것은 지나에게 있어서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지나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부모님은 연락이 두절되면서 사람을 피하며 생활한 지 어느새 2년이 다 되어가니까요.


 그렇게 1년 2년 3년이 지나니 지니는 어느새 작은 강아지에서 성견이 되었고, 지나는 성인이 되었어요. 아주 조금이기는 하지만 지나는 시에서 일자리를 주는 작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돈을 벌게 되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지니를 품에 안아주기도 하고 놀아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남들만큼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나는 지니가 있기에 나름 만족스럽고, 또 견딜 수 있었어요. 여전히 밖에 나가는 것은 무섭고 사람들이 두려웠지만 자신이 지니를 돌봐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루를 견뎌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 어느 여름이 되자, 지니는 서 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많아진 노견이 되었어요. 이빨도 많이 남아있지 않고, 털도 예전처럼 윤기가 흐르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나는 그럼에도 지니를 사랑했어요. 행여나 지니가 사라지지 않을까, 지나는 일하는 시간과 출퇴근 시간 외에는 항상 지니가 눈 앞에 보여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었어요. 덩치도 예전보다 커졌지만 이제는 침대에서 같이 자야 안심이 되었고, 자고 있는 지니가 혹시나 숨을 안 쉬는 것이 아닐까 확인을 해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던 어느 토요일, 지나는 일어나서 지니가 먹을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지니가 따라나와서 지나의 발등을 핥아댔어요. 그리고는 아침을 먹고 방석 위에 올라가 한참을 자고 있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지나가 지니의 코에 손을 대보니 숨을 쉬는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지나는 지니가 지구별을 떠날 때 행여 배가 고프지 않을까, 심심하지 않을까 싶어 지니의 주변에 지니가 좋아했던 장난감과 간식들을 두었고, 지니의 사진 주변은 꽃으로 장식했어요. 지나는 작은 편지지에 "여름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에 너를 만나서 여름 화창한 날에 너를 떠나보내네..."라는 말을 적어 지니의 옆에 두었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지니의 몸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무 밑에 지니를 묻어주기로 했어요.


 그녀는 지쳐서 저녁 즈음에 집에 돌아왔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마치 지나가 지니를 처음 만났던 날처럼요. 한참을 멍하니 있던 지나는 서럽게 울며 지니를 부르다가 탁자 위에 두었던 지니의 사진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어요. 나는 너가 환생해서 나한테 다시 오던, 아니면 너가 계속 강아지별에 있던 신경쓰지 않고 그냥 너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겠다고. 그 별에 잘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요. 그리고 지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작은 편지지에 펜으로 뭔가를 적었어요. "너가 나에게 왔던 것은 너무나도 큰 행운이고 축복이었어."



작가의 이전글 더부살이 야옹 선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