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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Jul 17. 2021

보리에게.

사랑하는 너에게.


 너는 5월 어느 날 생수 박스에 담겨 나에게 왔어.

 영문도 모르고 우리 집에 와서 너는 낯선 환경에 울기도 하고 투정도 부렸지.

 하지만 너는 금방 새로운 공간에 적응했고, 마치 이 곳이 원래 너의 집이었던 것마냥 뽈뽈대며 돌아다녔어.


 나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화장실에 갈 때에도 너를 안고 갔어.

 혹여나 너가 눈 앞에서 사라진 나를 찾아헤매일까봐.

 너가 서럽게 울면 어떻게 할까 걱정되어서,

 어느 곳을 가던 너를 작은 가방에 넣고 가곤 했어.


 어느 날, 너를 혼자 두고 어디를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너의 모습이 아른거렸어.

 물가에 어린 아이를 내놓은 것처럼 내가 너무 불안하고 걱정되었어.

 너가 나를 찾으면 어떡하지? 나 없는 사이에 너가 위험한 물건을 건드리면 어떡하지?

 그래서 서둘러서 볼일을 보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갔는데

 너는 너무나도 평화롭게 너의 자리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어.

 그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면서 어딘가 허무한 감정을 느꼈어.

 이제는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신경쓰지 않아도 너는 잘 있는구나.

 하지만 나는 너를 언제나 기다리니 필요하다면 나에게 오렴.


 너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던 날.

 나는 그간 해왔듯이 너의 생일 케이크를 꺼내 너와 네 동생 그리고 나와 함께 너의 생일을 축하했지.

 시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빨리 간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나는 핸드폰의 카메라 셔터를 눌렀어.

 얼마나 이 셔터를 누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을 남기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그러고 나면 너는 나에게 작별을 말할지도 몰라.

 나는 아쉬워하겠지만 그 시간이 오면 너를 저 멀리 별로 보내야 할거야.

 너가 다시 나에게 다른 존재로 오던, 혹은 오지 않던,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를 존중하고 사랑할거야.

 너는 영원한 나의 강아지, 사랑하는 아기니까.


 너는 지금 이 글을 읽을 수 없겠지만 그거로 좋단다.

 너가 별로 가는 날에는 이 글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랄게.


 보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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