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Oct 30. 2018

당신의 부모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의 부모라면 어떻게 결정하시겠습니까?”  

환자 또는 가족들에게 종종 듣는 질문이다. 암은 젊은 사람도 많이 걸리지만, 주로 고령자의 질환이다. 암에 걸리는 이들은 대부분이 30-50대 청장년층의 부모세대인 60-80대이다. 40대의 부모를 암으로 잃는 경험은 흔치 않지만, 70대의 부모를 암으로 잃는 것은 이제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노인의 암 치료는 결정이 어렵다.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항암화학치료 모두 신체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몸은 쇠약하니, 치료의 이득에 비해 위험이 큰 상황인 것이다. 자칫 치료의 부작용으로 고생하거나 삶의 질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자도 가족도 의사도 고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특히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 년에 걸쳐 치료를 해야 하는 항암치료는 더 고민이 된다. 치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치료를 한다면 어떤 약으로 할 것인가? 젊은 환자라면 당연히 효과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겠지만, 노인 환자는 효과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부작용의 위험이 적은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도 많아서 이 역시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보호자의 돌봄 의지와 조건 (월 1-2회씩 병원에 모셔올 수 있는지, 평소 일상생활을 관찰하고 챙겨드릴 수 있는지, 문제가 발생시 즉시 응급실로 모셔올 수 있는지, 자녀와 거주지가 가까운지, 또는 함께 사는지 등등)이 치료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부모를 큰 병원까지 모셔오는 것까지가 효도가 아니다. 환자가 지속적으로 병원에 다닐 수 있도록 보살필 수 없다면, 아무리 크고 최신식의 시설을 갖춘 병원이어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규모가 작더라도 환자 본인이 다니기에 편하고 가까운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

곤란한 것은, 딱히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A라는 방법의 장단점, B라는 방법의 장단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당신의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 불쑥 들어온다는 것이다.

 

당신의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 질문은 가끔은 '당신의 부모라고 생각하고 잘 대해달라' 라는 부탁, 또는  '당신의 부모라면 그런 식으로 하겠느냐'는 비난으로 바뀌기도 한다. 의사는 질문을, 간호사들은 부탁이나 비난의 형태로 종종 '내 부모라면'의 공감을 요청받는다. 솔직히 말하면,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이런 요청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일단은 답하기 어렵다.  치료에 대한 결정은 환자의 가치관, 성격,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에 따라 모두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의사가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말해도 그것이 그 환자와 가족들에게 알맞는 해결책이라는 법이 없다.  

사실 이런 요청이 부담스러운 더 중요한 이유는 환자와 가족의 상황에 갑작스레 감정이입을 요청 받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의료인에게 있어 공감 능력은 필요하고, 질병 또는 치료로 인해 환자가 겪게 될 고통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즉 그것이 나와 가족의 일이라고 상상하는 정도의 감정이입을 매 진료 시마다 하게 된다면, 그 의사나 간호사는 감정적인 소진(burn out; 극한의 스트레스와 감정 소모 끝에 감정이 메마르게 되는 상황)을 훨씬 쉽게 겪게 될 것이다. 의료인로서의 일을 제대로 수행해 나갈 수 없다. 공감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나 가족은 헤아릴 수 없는 혼란 또는 절망 속에 '당신의 부모님이라면'으로 시작하는 질문을 던지지만, 의사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 상황에 감정이입 할 수가 없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해서이거나 그들의 고민을 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결정은 그들의 몫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것을 다 고민할 만큼 의사의 공감능력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는 객관적인 제 3자로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결정하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도울 뿐이다. 의료인이란,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구체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분리하여 지킴으로써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이다. 그래서 대개 원하는 답은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원론적인 대답만이 돌아올 뿐. “환자마다 다 생각이나 처지가 다릅니다. 이건 제가 대신 결정해드릴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나 누군가의 가족이며 사랑하는 사람일 환자들이 질병으로 고생하고 죽어가는 상황을 매일 보면서 과연 온전히 나를 분리시킬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 경험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위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40대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보다는 곧 칠순이 되시는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나는 종종 의사가 되기 전에도 엄마가 암에 걸리거나 돌아가시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한번 겪은 일이니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을 휩싸고 가끔은 꿈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싸하게 뒤덮는 고통이 느껴지고 눈물이 흘러나와 더 이상 상상하기를 그만두거나 울다가 깨기도 한다. 아마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증상 중 하나인 재경험(re-experiencing)의 일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번은 전공의 2년차 때 엄마가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하셔서 응급실에 모시고 가서 CT를 찍었는데, 간에 1cm 정도 되는 결절이 보였다. 처음엔 암 전이로 오인해서 (정식판독이 나오기 전에 나 혼자 섣부르게 판단하고서는) 파견 근무하던 병원으로 출근하는 동안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결국은 간농양으로 밝혀지고 배농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작은 크기여서 경구 항생제만 처방받아 퇴원하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래서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정식판독을 꼭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엄마는 오래전의 아빠의 죽음, 뒤이은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최근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죽음까지 차례로 겪으면서 상당히 담대한 태도를 갖게 되신 것 같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정밀검진을 해보시라고 해도 좀처럼 응하지 않으신다. (물론 기본적인 건강보험공단검진 같은 것은 하시지만) ‘삶을 조금 더 연장해보겠다고 병원과 의술에 아등바등 매달리느니 나 하고 싶은 대로 살다 가겠다’는 엄마의 평소 지론에 따르자면, 아마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아도 항암치료를 받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림프종이나 유방암같이 대체로 항암치료의 효과가 좋은 암종이거나, 일부 표적치료제나 면역치료제의 효과가 좋은 특수한 아형의 종양이라면, 즉 누가 보아도 위험에 비해 치료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큰 경우라면 어떻게든 설득해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항암치료를 권유하며 ‘내 어머니라면’이라고 말을 꺼내기란 쉽지 않다. 죽음에 대한 경험, 삶에 대한 자세는 누구도 내 어머니와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 시모, 부모님의 죽음을 모두 겪고 혼자 갖은 고생을 하며 세 아이를 키운 후 이젠 전국의 산을 누비는 엄마. 이젠 병원 신세는 죽을 때까지 지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

그러나 나는 간혹 오히려 “내 부모라면…”이라며 말을 먼저 꺼내는 경우도 있다. 요청받는 공감이 아니라, 먼저 제시하는 공감은 부담이 그리 크지는 않다. 많이 생각해본 결과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는 치료의 전반부가 아니라 후반부다. 진행암[1] 투병의 길은 시작은 여러 갈래이지만 끝은 결국 한 군데로 수렴되는데, 말기암[2] 환자에서의 항암치료, 또는 연명의료와 관련한 고민으로 끝나게 된다.

이런 저런 치료를 다 하고도 내성이 생겨 진행한 암에서 또다시 다른 약제를 시도해보는 경우가 있다. 대개 환자의 삶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의사가 이기지 못하는 경우다. 차마 희망을 꺾지 못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나빠져서 장기기능마저 손상되기 시작할 때 중환자실에 가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투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가망이 없음을, 죽음이 이미 다가온 상황임을 의사가 환자에게 명확하게 이야기할 시기를 놓친 경우다. 나는 내 환자들이 이런 연명치료를 받으면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지 않으나, ‘더 이상 가망이 없다’ ‘이런 치료가 소용이 없다’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항암제를 중단하는 것, 연명치료를 받지 말자고 말하는 것은 의사가 환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안위를 위해 내리는 최선의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의사가 환자를 버리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다 (실제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연명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겠지만, 그걸 하지 않겠다고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하는 것은 마치 목숨포기각서에 서명하는 것 같아 망설이는 분들도 있다. 그러한 결정을 돕기 위해서 부모에 준한 예우와 존중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방법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우리 어머니 같으면… 그런 치료는 안하고 싶습니다. 불확실하고 확률이 매우 낮은 희망을 믿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내 부모라도 이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면 대개 통한다. 그러나 종종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 입에 오르내리는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생겨서 어느 날 엄마가 손주들을 보러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말씀드렸다. 내 말 속에서 여러 번 돌아가셨었노라고. 아직 주말이면 산 타러 돌아다니는 팔팔한 할머니인데 환자들과 대화할 때에는 임종 과정에 든 말기암 환자 역할로 자주 등장하셨다고.  

 

"뭐... 나도 너희 외할머니 돌아가실 때 담당 의사한테 몇 번 물어봤어. 선생님 어머님이면 어떻게 하시겠냐고. 기관 삽관은 안하겠다고 하더군. 그런데 투석은 그런 애기를 제대로 안하더라구. 그래서 그냥 하는게 나은 건가 보다 하고 투석은 했지. 그런데 괜히 한 것 같아. 가족들이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보면… 대답해 줘야해. 그래야 가족들이 위로를 받지"  

"위로...?"

"정말 이런 치료가 도움이 될까 싶고 과연 해야 하나 싶은데, 치료를 안하면 부모한테 죄짓는 것 같고... 그런데 치료를 해도 죄짓는 것 같잖아. 그럴 땐 의사가 ‘자신의 입장이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한마디 해주면 가족들이 위로를 많이 받지."  

"사람마다 입장이 많이 다를 순 있잖아. 뭐라도 끝까지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뭐...그럴 순 있지만 대개는 비슷하지 않겠어? 부모가 편안한 거 말고 사람들이 뭘 바라겠어. 앞으로도 엄마 많이 팔아라."

 

그렇게 나는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이용할 ‘엄마 판매권’을 획득하였고 요즘도 자주 팔고 있다.

임종에 가까운 상황에서 가족들은 환자를 대신해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환자가 먼저 결정해놓으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에. 힘든 검사와 시술을 진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값비싼 약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중환자실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나의 일이라면 단호하게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도, 부모님을 대신해서 선택할 때는 어렵다.

그럴 때,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괴로워하는 가족에게는 의사의 한마디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부모라도 그렇게 결정할 것이다.

  하셨다. 당신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


 


[1] 진행암 (advanced cancer)은 진단당시부터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전이암 또는 재발암을 일컫는다. 암종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진행암이라고 하면 대개 병기가 4기이고 5년생존률은 약 5% 전후이다. 그러나 항암화학치료로 수 개월에서 수 년까지 병을 조절하면서 생존가능하기 때문에 '말기'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이 글에서는 주로 진행암의 경우를 다룬다. 진단 당시부터 수술이 가능한 초기암은 상당수가 완치가 가능하다. 2017년 12월 발표된 가장 최근의 중앙암등록본부 통계자료(2015년 기준)에 의하면 우리나라 암환자들의 5년생존률은 70.7%였고 이는 90년대의 44%에 비해 월등히 향상되었다. 대부분 초기암의 치료 성적이 향상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2] 말기암 (terminal cancer)은 항암화학치료의 효과가 더 이상 없거나 신체 기능이 쇠약하여 항암화학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하며, 대개 6개월 이내에 암으로 인한 사망이 예측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진행암과 말기암이라는 용어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는 서울대학교 가정의학과 김상혁교수 팀 논문에 대한 보도자료를 참조.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388

작가의 이전글 어린 자녀를 두고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