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F 변이 대장암의 새로운 치료

ASCO 2020 대장암 업데이트 (2)

by OncoAzim

ASCO 대장암 업데이트 2) BRAF 변이 대장암에서의 신약 등장: BEACON 연구

요즘은 암 유전자 검사를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이 하기 때문에 아마 병원에 다니는 암환자라면 한두번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암은 여러 유전자에 고장이 나면서 무한증식하는 성질을 지니게 되는 병이기 때문에, 유전자가 어디에 고장이 났는지를 알면 치료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대부분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요. 유전자에 고장이 난 것을 '변이 (mutation)' 이라고 부르고, 이 변이된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을 타겟으로 하여 개발된 약물들이 이미 20년째 쓰여오고 있는 글리벡, 이레사, 허셉틴 같은 약들입니다.

문제는 이 변이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고, 이 중에서도 핵심적인 변이를 찾아 효과적인 약제로 공격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BRAF유전자 변이는 대장암의 8-10% 정도에서 발견되는 변이로서, 한 유전자 안에도 여러 변이가 있지만 이중 V600E라는 변이가 가장 흔합니다. BRAF V600E 변이는 악성흑색종, 대장암, 갑상선암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변이입니다. BRAF 억제제는 이미 개발되어 악성흑색종에서 이미 허가받아 우리나라에서도 급여로 사용할 수 있는 약입니다. 그러나 대장암에서는 똑같은 변이인데도 이 약이 잘 안듣는다는 것이 10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여러 연구가 있었고, 흑색종과는 달리 대장암에서는 EGFR 이라는 (사실은 BRAF 보다 더 유명한 암단백질이죠) 세포성장인자수용체가 BRAF 억제로 인해 더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기초연구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여 EGFR 억제제와 BRAF 억제제, 또는 BRAF가 전달하는 성장신호를 받는 MEK을 차단하는 MEK 억제제까지 같이 투여하는 병용요법 전략이 시도되어 왔고, 결국 그 전략이 성공을 거둔 연구가 BEACON 임상시험입니다. 이미 작년에 발표되어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도 게재된 바 있고, 올해 ASCO에서 발표된 내용은 BEACON 임상시험 참여 환자들에 대한 추적관찰 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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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CON 연구는 대장암에서 현재 허가받아 사용되고 있는 항암요법인 얼비툭스 + 이리노테칸 또는 폴피리 (대조군)와 비교하여 새로운 약제인 엔코라페닙 + 비니메티닙 + 얼비툭스 3제 요법과 엔코라페닙 + 얼비툭스 2제 요법의 효과를 검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 3상 임상시험입니다. 엔코라페닙은 BRAF 억제제, 비니메티닙은 MEK 억제제이며 얼비툭스는 EGFR 억제제이죠.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은 모두 BRAF 변이가 있으면서 전이성 대장암에 대해 1가지 이상의 치료를 받았던 병력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통상적으로 이런 환자들의 생존기간은 4-6개월 가량입니다. 이전 치료에 실패하고 다른 약을 새로 시작하는 전이성 대장암환자들의 생존기간은 대체로 (중앙값을 기준으로 한다면) 1년 정도임을 고려할 때 BRAF 변이를 지닌 환자들의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죠.

작년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실린 이 임상시험의 결과 각 군 환자들의 생존기간의 중앙값은 9.0개월 (3제요법), 8.4개월 (2제 요법), 그리고 대조군은 5.4개월이었습니다. 즉 예후가 나쁜 환자들의 질병을 조절해주어서 3-4개월의 수명 연장 효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올해 새로 업데이트된 BEACON 연구의 결과는 유사하나, 2제요법과 3제요법의 효과 차이가 크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두 치료법의 생존기간의 중앙값은 9.3개월로 유사하였습니다. 추가적인 추적관찰 결과 대조군의 생존기간 역시 5.9개월로 늘어나긴 했지만, 약 3.4개월의 생존기간의 차이는 여전히 유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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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엔코라페닙과 얼비툭스 2제요법은 미국 FDA의 허가를 이미 받은 상태입니다. 약을 2개 쓰던 3개쓰던 효과가 비슷하다면 보건당국으로는 부작용과 비용을 고려하여 2제 요법을 먼저 허가해주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아래의 이상반응 (부작용) 통계에서 보듯이 부작용의 빈도는 당연하게도 3제요법에서 가장 높습니다. 반면 2제 요법은 대조군보다도 적은 부작용을 보이고요. 가장 흔했던 이상반응 중 3도 이상의 설사 (3도 이상이면 보통 수액치료를 요하는 심한 설사를 의미합니다)의 빈도가 3제요법이 11%, 2제 요법이 3%, 대조군이 10%였습니다. (보통 이 수치가 일반적인 대장암 항암요법에서 10-20% 사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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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엔코라페닙 (상품명 BRAFTOVI)이 아직 시판되고 있지 않아 이 치료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판중인 약제로는 BRAF 억제제인 젤보라프와 일반항암제인 이리노테칸, 그리고 얼비툭스의 3제 요법 역시 이전의 연구에서 약 9개월 정도의 생존기간을 보였기 때문에 BRAF 변이가 있는 환자라면 대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급여가 되지 않아 한달 약값이 약 800만원에 달하므로 대개는 사용하기 어렵지요.

제 환자분 중에도 BEACON 임상시험에 참여하신 분들이 몇 분 있는데, 그중 엔코라페닙과 얼비툭스의 2제요법으로 약 1년 반동안 치료를 이어오고 있는 환자분이 계셔서 다음주에 병원 홍보물을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임상시험의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다소의 운이 따릅니다만, 절망 속에서도 기적이 피어나는 것을 가끔 보게 되기 때문에 왠지 희망고문같으면서도 연구를 하고 임상시험을 하게 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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