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나의 30년친구, 독서회> 무카이가즈미
시사인의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고 구입해서 읽었다. 일단 참여할만한 독서모임이 없기에 만약 내가 만든다면 (과연?) 참고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읽는 즐거움이 큰 책이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던 안하던간에 앞으로의 독서생활에 이정표가 되어줄 것 같다.
내면에 있는 우울한 생각을 언어화하고 토해낼 자리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필요했다.
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족 관계나 왕따, 죽음은 평소에 말하기 힘든 주제이기에 문학을 매개로 자기 생각을 언어화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100년 전 이야기일지라도 그 안에는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인간의 삶과 심리가 있다. 그 보편성이야말로 고전 작품을 읽는 묘미다. 작품에 자기 경험을 투영함으로써 독자는 자신이 처 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내면을 언어화한다.
단지 당시 나는 '책을 읽는 것'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 연결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렸을 적부터 독서에 푹 빠졌지만 오로지 나만의 깊은 곳을 향한 내향적 독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타인과의 연결 자체를 피했던 그 시절 나한테는, 어쩌면 독서회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는 시기상조였을지 모른다. 인생 경험을 쌓고 수많은 좌절 을 극복한 어른이 된 지금이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책을 통해 사람과 연결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고독 속으로 깊이 파고든 시간은 훗날 옆 사람과 연 결되기 위해 필요한 준비 과정이었다.
독서모임(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독서모임'이라고 부르고 책에서처럼 '독서회'라고 표기하면 왠지 일본식처럼 느껴지긴 한다)의 의미를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것에서 찾았다는 저자 무카이 가즈미.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책덕후, 독서모임이라는 말이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듯하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거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던, 왠지 이름조차도 한글로 쓰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 저자 무카이 가즈미의 삶이지만 책에 드러난 그녀의 삶은 충분히 재미있고 다채로워보인다. 그것이 독서모임과 책의 위력이겠지.
그녀의 문학 사랑은 인용되는 여러 작품에서 드러나는데 특히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 문장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하늘, 한눈에 보이는 푸른 바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고민 따위는 사소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 텔레비전에서 우주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린다. 수억 광년이라는 막막한 시공간을 상상만 해도 강렬한 허무에 휩싸여 의식이 멀어질 것 같아서다.하지만 아무리 하늘이 넓은들 지금 이 순간 내 고민은 우주 전체보다 단연코 크다.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문학이 탄생할 리가 없다.
재미있고 유쾌한 문과생의 일갈이다. 나도 1/4쯤 이과생이지만 3/4은 문과인 것 같아서 우주를 바라볼 때의 막막함에 공감한다. '내 고민이 더 크다'는 것은 허세에 가깝게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문학이 탄생했을 수 없다는 설명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테레즈 데케루>를 읽고 “테레즈는 나다”라는 소제목으로 쓴 글은 약간 슬프다. 부모로부터 위안을 얻지 못해 책에 매료되었던 저자가 남편과도 충분히 교감하지 못해 더욱 독서회가 주는 기쁨에 사로잡혔음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책덕후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회는 저자가 어쩔 수 없이 찾은 대안이라기보다 진심으로 그녀의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고 빛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도서관 사서로서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그들이 원하거나 그들이 필요한 책을 적합하고 빠르게찾아주는 것, 독서회를 조직하는 모습은 정말 프로페셔널하고 그녀가 진심과 기쁨을 다해서 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체 이 작품 어디가 '가톨릭 소설 인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도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 고 갈등하며 괴로워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이 소설에 매료된 엔도 슈사쿠도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좋든 싫든 한 번쯤 기독교 신자가 된 것에 괴로워했다. "신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실은 신 가까이에 있습니다."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맹신하는 선량한 사람들보다 갈등을 겪은 신앙이 훨씬 더 강함을 의미한다면 이 소설을 가톨릭 소설로 봐도 무방 하다.
남편을 죽인다고 하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여기겠지만 험 삼아 인터넷에 '남편 죽이기'를 검색해보니 의외로 '남편을 죽이고 싶다'는 아내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역시 그런가 안심했다. 진심으로 남편을 죽이려 한다면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 테레즈는 진심이 아니었기에 상처만 남긴 채 끝난다. 독살이 미수로 끝났을 때 세간의 이목을 의식한 남편의 위증으로 테레즈는 기소를 면하게 된 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결과는 안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왜 나를 죽이려고 했어?"라고 남편이 묻길, 미친 듯이 분노하길 바랐다. 테레즈는 그렇게 생각했을 행위가 밝혀지면 스스로 책임질 각오가 서 있었다.
나에게도 결혼은 도피였을지 모른다. 어쨌든 친정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남편은 문학에는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었다. 책 읽는 모습을 결혼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책 뿐만이 아니라 음악에도 미술에도 여행에도 아무것에도 관심 이 없었다. 물론 아내한테도 관심이 없었다. 부부 대화 따위는 거의 없었다. 결국 나는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일본 각지 로컬선(지역 철도)을 타고 차창 너머로 바다를 바라보며 혼자서 온천 여관에 묵었다. 나홀로 여행을 시작해보면 이것 만큼 쾌적한 게 없다. 왜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부부라면 함께 여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부라면 둘이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끔은 밖에서 식사를 하고 때로는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는 줄 알았다. 인생의 기쁨도 고통도 함께 맛보리라고 기대했다. 그것이 나의 이상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상대에게 기대하는 일을 일체 그만두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흥미롭다. 다들 너무 읽고싶어진다. 책 영업을 잘하는 분이신 듯.
<제인오스틴 북클럽> - 우리나라에서 번역본은 절판되었다. 도서관에서 볼 수 있을 듯.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제인 오스틴을 갖고 있다는 첫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나이도 처지도 다른 여섯 명이 제인 오스틴의 주요 소설 여섯 권을 한 달에 한 권씩 읽는 독서회에 참가한다. 각자 여섯 권 책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 는 책을 골라 그 책을 다루는 모임 진행 역할을 맡는다. 이 독서회를 제안한 사람은 50대 초반의 독신 여성이다. 그녀가 독서회에 어울리는 멤버를 정한다. 저마다 개성 강한 인물들로 모두 책을 좋아하고 한 명을 제외하고는 확교한 오스틴 애호가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진행을 맡은 사람 집 에 모인다. 진행자가 준비한 차와 다과를 즐기며 그날 과제 도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방에 놓인 가구나 제공된 음료, 식사 등에서 진행자의 됨됨이가 엿보인다.
<프리즌 북클럽>도 너무 재밌을 듯! 번역이 되었을까? - 번역가인 저자가 일어로 번역한 책인데 우리나라엔 번역이 안 된 것 같다. 나중에 킨들에서 다운받아서 읽어야지... (어느 세월에...^^) https://www.amazon.com/Prison-Book-Club-Ann-Walmsley/dp/0670069485
교도소에 들어가니 팔과 목에 빼곡히 문신을 새긴 무서운 남자들이 손에 책을 들고 둥글게 앉아 있다. 그들의 발언을 듣는 동안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이 보였다. 그러자 그들이 왜 수감되었는지 경위에도 관심이 생기면서 조금씩 마음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교도소에서 가끔 돌발적인 칼부림 사건이나 폭동이 일어나지만 수감자들은 어려운 책이나 장편소설을 끝까지 완독한다. 그리고 자기 인생을 짊어지고 발언한다. 진지한 발언이라서 때로는 멤버끼리 일촉즉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간 제자와 둘만의 북클럽을 만든 저자의 책 <패트릭과 함께 읽기>에 대한 평은 마음이 아프다. 이것은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ebook으로 구입해서 쟁여놓았다.
저자는 패트릭의 창작 노트를 보며 생각한다. “패트릭은 이렇게나 성장했다. 하지만 그때 내 마음을 울리고 이후 몇 년 동안 내 마음에 강하게 남은 생각은 내가 패트릭한테 해준 게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겸손한 척하는 게 아니다. 패트릭의 지적 성장에 필요한 것이 너무 적었다는 사실에 놀랐음을 말하고 싶은 거다. 조용한 방과 많은 책, 어른의 지도가 조금만 있어도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다.그런데 그런 것들이 주어질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한 인간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 책은 가르쳐준다.
패트릭이 겪은 불평등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먼저 생각나는 건 우리집 애들이다. 아이들에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제공했나.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하고싶다. 우리 애들은 왜 그렇게 책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번역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온 구절도 흥미롭다. 이 책도 읽어봐야지. 인생에 의미 따위는 없다니 너무 반가운 소리다. ㅎ
나는 처음에 이 소설을 '주인공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성장해가는 이야기'라고 읽었는데 전혀 달랐다. 오히려 주인공은 '인간을 속박하는 것'과 결별함으로써 정신의 자유를 얻는다. 그를 옭아매던 것 중 하나가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있 던 기독교였다. 다른 하나는 '인생은 의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실 인생에 의미 따위는 없음을 깨닫고 그는 압도적인 자유를 얻는다"
한편 <사일러스 마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저자가 시작한 문장은 충격적이었다.
아이를 낳는 일은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 의향을 확인하는 과정 없이 80년의 삶을 짊어질 인간을 세상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한 번 낳고 나면 절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이 문장을 보고 참 나는 생각없이 이 무서운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없어야 이 무서운 짓을 저지를 수 있다. 게다가 저자가 가족안에서 얻지 못한 행복을 독서회에서 찾았듯이 인간은 세상에 또 하나의 행복과 즐거움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저자는 온천 탈의실에 잠시 엄마없이 누워있던 아기를 훔치고 싶었던 충동이 들었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며 사일러스 마너의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사실은 저자도 아이를 키우며 얻는 기쁨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허클베리핀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도 약간 당혹스러웠다. 무엇보다 이것이 아동소설이 아니라니 충격이다. 헉은 담배도 피우고 총도 쏜다고. 우리 아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할 것 같다….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은 늘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법이니. 어른이 된 지금도 아직은 아이의 마음으로 어른됨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가즈미: ……대학 수업에서 그 내용을 알게 됐을 때 저는 꽤 충격을 받았고 가치관이 흔들렸습니다. 헉도 톰도 어른들한테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었어요. 마크 트웨인의 책에 는 인권이나 차별 의식조차 희박했던 시대의,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대범하고 강인한 분위기가 잘 묘사돼 있어요.
노리코: 아동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을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했어요. 『작은 아씨들』의 원제인 'Litle Women'도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쓴 말이었네요. 헉은 총을 쏘고 담배를 피우죠. 죽음을 목격하고도 아이라는 이유 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요. 흔히 현대인은 성인이 되어서도 미숙하다고 말하지만 옛날 어린이는 조숙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어린이가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아프리카문학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도 읽고싶게 되는 책이다. 식민지의 흑인들과 백인의 문명의 충돌을 단선적으로만 그리지 않고 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 섬세하게 드러내었다는 점이 끌린다. 모든 것을 적군과 아군으로 분류하는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 의미하는 바가 있을만한 책일 것 같다.
말로만 들었던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에 대한 독서회에서의 이야기. '죽음은 생의 일부인데 보지 않으려는 것' 늘 내가 겪는 상황이라 꼭 읽어야 할 책일 것 같다. 왜 이렇게 꼭 읽을 책이 많냐....
죽음과 닿아 있는 환경에서 지내면서도 죽음 따위는 없는 것처럼 멀리하는 요양원 주민들. 서로 병의 무거움을 자랑하고 견제하며 죽음의 공포를 감추려고 합니다. 매우 도착적인 이 심경을 토마스 만이 능숙하게 그려서 모두 감탄 했습니다. 죽음은 생의 일부인데 보지 않으려 하는 건 건강한 인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한테 죽음은 항상 남 일이죠. 그렇다고 해서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일상을 살아 갈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역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간직하려 한다. "말하지 않고도 말하게 한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정말 멋있는 일이다.
노인이 말했다. 인생을 즐겨야 해. 저녁이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야. 스티븐스는 자신의 인생을 정당화한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인생에 의의가 있었다고 되뇐다. 그렇게 되뇌는 동안 그것은 그에게 진실이 되어간다. 그는 마지막까지 후회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는 거기에서부터 '두 번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인생'에 왠지 모를 애절함을 느낀다. 만약 그가 후회하는 말을 했다면 이 소설은 최고면서도 평범한 작품이 되었을지도. 말하지 않고도 말하게 한다. 그 점이 작가의 기량이고 뛰어난 부분이다.
이 부분은 너무 귀여운데 공감가는 부분이라 옮겨둔다. 나도 칭찬을 소중히 간직해야지. 번역 스승이자 그를 독서회로 이끈 스승인 아가리에 선생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스승을 가졋다는 것만으로도 무카이 가즈미 센세는 부러운 사람이야.
당시 나는 아가리에 선생과 이야기할 때면 긴장했다. 선생은 평소 무뚝뚝해서 조금 다가서기 힘들었다. 제자를 잘 챙기고 항상 성실했지만 번역에 관해서는 매우 엄격했다.
제자를 칭찬하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는 칭찬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칭찬을 들으면 서로 알려주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흙탕물에서 사금을 한 알, 한 알 모으듯 칭찬을 소중히 간직해두었다가 자신감을 잃어버렸을 때 꺼내서 바라본다.
무카이 가즈미 씨의 독서팁. 학회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며 따라하고 있다. 느낀 점을 바로 써두기. 정리해서 브런치에 올리니 뿌듯하다. 나중에 생각했을 때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헷갈리는 일은 없도록. 읽었을 때의 내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르도록.
책을 읽다 보면 내용을 둘러싸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다. 인생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애나 가족, 종교, 죽음 등 작품을 자신에게 대입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손에 책을 든 채로 가만히 생각에 잠겨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조차 있다. 그런 경우엔 생각을 종이에 옮기면 좋다. 글로 쓰다 보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독서회에서 발언할 힌트가 되기도 한다. 책을 읽고 느낀 점도 그 자리에서 바로 써두지 않으면 금제 잊어버린다.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은 87년부터 이어왔다니 어마어마하다. 독서회를 잘 운영하는 힘에 대해 여러가지 팁을 나열했지만 중요한 건 사람들일 것이다. 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오래 가는 독서회를 만들고 싶다.
##### 독서회의 규칙
- 가능한 한 결석하지 않는다
- 과제 도서는 반드시 다 읽는다
- 다른 사람 의견을 부정하지 않는다
- 과제 도서를 존중한다
- 혼자 많이 말하지 않는다
- 잡담을 많이 하지 않는다
독서회의 인원은 5-10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 독서회의 장점
-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
- 일상적이지 않은 주제를 이야기한다 "특히 삶과 죽음, 마음의 문제를 누군가와 말하고 싶지만 주변에서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내게 독서회는 영혼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 말할 수 있게 된다
- 내가 생각지 못한 관점을 얻게 된다
- 참가자들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