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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Feb 07. 2018

환자와 건강인은 다른 세계에 산다

연명의료법 시범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5/2018012500170.html

약 석달간의 연명의료법 시범사업기간동안  사전의향서는 9336건, 연명의료계획서는 107건이 보고되었습니다. 이들 중 54명은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임종하였다고 합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인 이윤성 교수님은 90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연명의료중단을 원했다며 이 법에 의미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589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그것과는 거리가 다소 있다고 여겨집니다. 


연명의료법 시범사업기관 

사전의향서 시행기관은 5곳, 연명의료계획서 시행기관은 10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전의향서 작성건이 연명의료계획서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물론 사전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고,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또는 임종기 환자만 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거꾸로 되짚어보면, 과연 '사전의향서를 쓴 사람들은 환자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같은 종양내과 의사들은 수일, 또는 수개월 후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 앞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은 멀리 있어야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 있으면 잘 안보이고, 차마 보고싶지 않아지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자 마음입니다. 


아마 사전의향서는 대부분 의료기관이 아닌 비영리단체에서 작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 사전의향서를 쓴 사람들 중 대부분은 환자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위 시행기관 중 한 곳인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에서는 법 시행 이전에도 약 20만명의 사전의료지시서를 확보해두고 있었습니다.그들 중 일부가 법정양식으로 새로 썼다고 해도 석달동안 9000명은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의미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이것을 "환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실제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문제는 훨씬 복잡합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1424731



시범사업기간동안 연명의료계획서를 쓴 환자들 

다시 시범사업결과 발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대로 많은 언론은 107명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고 54명이 실제 그대로 이행하였다,는 것을 부각하여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목받지 못했던 숫자에 관심이 더 갑니다. 연명의료계획서 관련 상담건수가 273명인데, 실제 작성건수는 107명, 약 40%만이 작성하였다는 것은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연명의료계획서 상담을 하였다는 것은,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질환 또는 임종상태로 진단받은 환자라는 얘기입니다. (그 진단이 내려져야 쓸 수 있는 서류입니다) 이들 중 60%가 상담을 받았으나 계획서 작성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연명의료를 실제로 다 하겠다고 결정한 것일까요? 환자가 진정으로 목숨만 부지하는 연명의료를 원하였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왜 그들은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일까요? 환자-의사간 의사소통, 아니면 환자와 가족간, 가족들 사이에서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을까요? 의사소통이 될 만한 충분한 시간적, 정서적 여건이 안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9,000명 이상의 '환자'가 원한것이다, 라고 연명의료법의 의미를 강조하기 전에 상당수의 말기, 임종기 환자들이 상담을 받고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분석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 죽음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가늠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상대적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죽음을 떠올리고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하며, 그 때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애서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건강할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당장 닥쳐오는 몸과 마음의 고통때문에 차분히 생각하기가 힘들고,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리고만 싶어집니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더군다나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선뜻 연명의료중단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를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에 걸쳐 상담하고 환자와 가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의학적인 최선의 치료에 대한 조언이 필요함은 물론입니다. 


얼마전 <아픈 몸을 살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한 의료사회학자가 실제 암환자가 되었던 경험을 그려낸 책이었는데, 환자로서 세상을 살아내는 것은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하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이야기 중 사회가 환자에게 낙인을 찍음으로써 질병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성격이 안좋아서, 생활습관이 안좋아서 암에 걸렸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암으로 아픈 사람들은 암을 부르는 성격을 가지길 선택함으로써 분명 병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 것이다.' 오로지 이런 식으로 사고할 때만 사람들은 질병을 눈앞에 두고서도 삶이 얼마나 위험으로 차 있는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다. 


건강한 이들은 이렇듯 아픈 이에게 낙인을 찍음으로서 자신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싶어하고, 아픈 몸을 가지고 사는 경험들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지은이는 환자로서의 경험, 환자를 돌보는 이로서의 경험을 더 많은 이들이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환자가 된다는 것은, 특히 불치병을 앓는 환자가 된다는 것은 건강할 때와 전혀 차원이 다른 경험이라는 것, 건강한 이들은 그것을 구경하듯 바라볼 뿐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건강한 사람과 환자의 세계는 다릅니다. 연명의료법을 바라보는 접근방식도 환자와 건강인을 분리해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곧 개정안이 논의된다고 하는데, 건강인들이 책상에서 만든 연명의료법 때문에 과연 누가 고통받을지 생각하면서 법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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