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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Feb 06. 2018

연명의료계획서를 처음 받다

연명의료 결정법 시행 3일째 

2월 4일부터 드디어 시작된 연명의료결정법. 

이미 전공의들은 혼란스러운 모습입니다. 

오늘도 저희 파트 전공의 선생님은 호스피스 전원을 가는 환자의 연명의료관련 서류를 미리 작성해서 가야 한다면서 (작은 병원에는 윤리위원회가 없어서 법적으로 연명의료 관련 결정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계속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서의 연명의료 중단결정은 사실 많은 요양병원이나 작은 규모의 병원급에서 해오던 것들인데, 이제 그런 환자들이 윤리위원회가 있는 큰 병원으로 몰려들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제작년에 치매에 이은 폐렴과 신부전증으로 고생하시던 저의 외할머니도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만약 올해라면 우리 병원 응급실로 모셔야 했겠죠. 안그래도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오는 환자들로 붐비는 응급실이 죽기 위해 오는 환자들까지 모여들며 아수라장이 된다면, 정말 누구를 위한 법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외래진료를 보면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오늘 마침 환자가 적었고, 마지막 순서의 환자였으며, 시간이 많아서 가능하였습니다. 최근의 증상을 듣고 신체검진을 하고 설명하고 연명의료계획서까지 받는데 약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70대의 여자분으로 4기 대장암으로 항암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최근까지 잘 받고 계시다가 복수가 늘어나며 전신상태가 급격히 악화하였습니다. 식사도 잘 못하시고 없었던 통증도 생겼구요. 항암제가 잘 안듣고 있고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치료를 견뎌내기도 어렵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는데 환자와 자녀분들은 담담하게 듣고 있고 수긍하는 표정입니다. 내친김에 한발 더 나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주부터...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연명의료법이라는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환자분이 만약, 지금은 아니지만 만약에 좀더 힘들어지셔서 호흡이나 심장박동이 유지가 안될 경우, 병원에 계시는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호흡, 심박동을 유지하기 위해 심폐소생술이나 중환자실 치료 등을 하게 되는데요. 그런 것을 연명의료라고 합니다. 그런데 환자분 병 상태로 보았을 때 그런 치료를 하였을 때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이세요. 연명의료법은 말기암환자같이 연명의료가 별로 도움이 안되는 분들에서는 그런 치료를 하지 않기로 미리 상의해놓고, 그것을 환자분이 동의하시면 환자분이 가시는 어떤 의료기관이라도 그에 따라 치료방침을 정하도록 하는 그런 법입니다."

대개 이 정도 말하면 질문이 많아지는데... 환자와 가족들 중 아무도 뭐라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아 왜 이렇게 순조롭지. 다시 말을 이어갑니다. 

"그래서...환자분께도 연명의료에 대한 상의를 드리려고 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동의서를 받아야 합니다. 항암치료 동의서, 각종 시술동의서,  CT 동의서, 수혈 동의서.... 환자들은 어떤 치료나 검사를 받을 때마다 늘 서명을 하게 되지요. 자세히 설명을 들을 경우도 있고, 대충 들을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자세히 들어도 이해가 잘 안가지만, 병원에서 권하는데 좋은 거겠지 하고 막연히 서명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외래진료실에서는 보통 동의서는 의사가 간단히 설명하고 전문간호사에게 보내면 좀더 자세히 설명한 후 서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의서는 대신 누가 받으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진료실 바깥 복도에 가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출력해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한 법정서식 제 1호.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고들 표현하지만, 어떤 의사도 당신은 몇 개월 안남았습니다, 땅땅땅, 하고 선고하듯 말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법정서식이라니, 왠지 가느다란 희망의 줄 하나마저도 단호히 잘라버리는 재판관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니까...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투석, 항암제를 임종이 임박한 상태에서는 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항암제는 방금 내 입으로 못한다고 더 쓸 약이 없다고 했는데...참 이상합니다) 호스피스는 이용하시는 걸로 하구요. 여기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환자의 손에 볼펜을 들려주고, 그가 서명을 하려고 고개를 숙이자, 갑자기 옆에 서 있던 따님이, 눈망울이 촉촉해진 채 나즈막히 내뱉습니다.


"엄마 이거 다 무슨 뜻인지 알아? 정말? 알고 서명하는거야?"


순간 당황한 저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 설명을 더 해드릴까요?  나중에 언제든 결정을 철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 이게 무슨... 한 사람의 삶을 눈앞에 두고 영업사원같은 멘트란 말입니까. 

"알아...그냥 할께."

환자는 서명을 하였고, 가족들이 진료실을 나간 이후 전자차트를 쓰는 제 옆에 한동안 앉아계셨습니다. 차팅을 마치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환자나 가족들이 아무도 말을 못꺼낸 것은 당황스러워였구나. 다 알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구나. 너무나 막막하고 절망스러워서였구나. 

마지막이 올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것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이구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항암치료를 하러 올 때마다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계시면서 좀처럼 증상이나 감정표현을 하지 않던 우아한 노부인은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는데...결과가 좋지 않아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4기 암을 치료하면서 '결과가 좋을' 확률은 5%남짓밖에 되지 않으니 언제나 우리 종양내과의사는 죄인입니다.죄인이 되더라도 삶에 끝이 다가왔음을 너무 늦지 않게 알리고 정리할 시간을 드리는 것이 저같은 사람들이 사명이라 느끼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은 이런 한 장의 종이에  담을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사실 20여분 남짓한, 외래진료 시간 치고는 엄청나게 긴 시간에도 저는 너무 서두르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말했습니다. 그래도 지금 말 안하고 몇 번을 응급실을 다녀간 후 알게 하는 것 보다는 백번 낫겠지, 하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다독입니다. 그러나 환자와 가족에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 어쩔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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