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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생사는 오타쿠 Jul 10. 2023

완벽의 거짓말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그것

내가 고등학생 부터 대학시절 내내 불행했던 것은,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이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이 너무 분명했다.


먼저 최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고(나이 27살 먹고 아직도 글에 대학 이야기가 많은 걸 용서해주세요... 워낙 트라우마인가 봅니다), 당연히 예쁘고 인기가 많아야하며, 이성에게도 인기가 많지만 동성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야 하고, 늘 괜찮은 남자애와 연애를 하고 있어야 하고, 루즈한 관계여서도 안되고, 항상 그 관계에서 내가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하며, 친구들과 클럽에서 밤새 놀지만 다음날 다 게워내더라도 아침 수업은 완벽하게 참가해서 학점도 잘받는 여자애가 되고 싶었다. 대외활동도 동아리도 잘 챙겨서 23살의 정확한 나이에 칼졸업을 통해 그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는 직장에 취업해서 인스타에 잘 나가는 회사의 동기들과 사진을 찍어 올릴 때 내 인생이 완성된다고 믿었다.


이 중 놀랍게도 단 하나도 이룬 것이 없다. 사실 당연한거다. 클럽에서 밤새 노는 일이 잦아지면 학점을 잘 챙길 수 없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어느 정도의 인기가 있기 위해서는 투자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자원은 한정적이라 투자하는 만큼 어디서는 빵꾸가 되기 마련이다. 연애를 하게 되면 놓치는 것들이 있다. 반대로 너무 대학생활의 아웃풋에 치중한다면 연애를 할 마음의 여유는 없을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몰랐다. 항상 저렇게 해내는 여자애들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고, 그 여자애들처럼 되지 못하는 나는 패배자라 생각했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타인의 말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치듯 사람들이 하는 말. 대학생 때는 놀줄 알아야해, 대학생 때는 연애를 해봐야해, 대학생 때는 열심히 살아야해 ... 듣고 흘리지 않고 하나하나 내 마음에 쌓아두어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주변에 그것과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대체로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찾아낸 존재들) 내 이상향으로 설정하고 끝없이 비교하고, 내 자아를 쥐어짜내곤 했었던 것이다. 이걸 깨부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내 자신한테 "00할 필요 없어"라고 말해주고, 실제로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하나씩 내가 만들어낸 괴물을 해체해나갔다.

꼭 예쁠 필요 없어.

꼭 '잘 놀' 필요 없어.

꼭 연애를 할 필요 없어.

꼭 좋은 회사에 들어갈 필요 없어.

꼭 친구가 많아서 매주 술 약속을 잡을 필요 없어.


그렇게 완벽이라는 괴물을 하나씩 걷어내니까 진짜 내가 보였다. 사실 나는 삐딱한 사람이라 한동안 사회적으로, 또 브런치에서도 유행했던 '진짜 내 모습'이라는게 실체가 없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내 모습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진짜 내 모습은 일단 욕심에 비해 타인에 비해 현저히 체력이 약한 존재였다. 그리고 가장 큰 욕심은 커리어를 향해있었다. 따라서 커리어를 위한 부수적인 노력을 하고나면 더 이상 체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 체력을 늘리기 위해 운동 시간을 끼워넣는다면, "직장+운동+약간의 공부"를 하고나면 좀 쉬어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체력이 덜 드는 독서, 경제 신문 읽기, 블로그 정도의 취미를 끼워넣을 수 있고, 때로는 전혀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하는 존재.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친구 관계, 예쁜 것, 연애, 외향적인 취미 ...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필수적인 조건처럼 여겨지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해내는 것들까지 나는 챙길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내 자신을 알게되니 쉽게 많은 걸 포기할 수 있었다. 나는 그냥 커리어를 위해 일개미처럼 성실하게 살아가고 어느 정도 내 몸 챙기는 평범한 내향적인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쉽게 해내고, 열망하는 것이라고 해서 나까지 꼭 그걸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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