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라기보단 첫선택

그저 선택받아서 행복했던 첫사랑의 기억

by 동동이

그 애는 연영과에 진학했고,

인스타 너머로 지켜본 그는 고등학교 시절보다 훨씬 세련되고 잘생겨져 있었다.
열일곱이었다는 걸 감안해도, 나 같은 여자애가 그 애와 사귀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 애는 전교생도 많지 않은 특목고에서 늘 눈에 띄었다.
하얗고 마르고, 얼굴 작고 성격 밝은 여자애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괜찮은 그런 무리들과 어울렸다.
그들 곁엔 늘 장난기 많은 남자애들이 있었고, 그 애도 그 무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여자애는 아니었다.
어딘가 우악스럽고, 평범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상위권에 속하지는 못하고, 집안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장난끼는 많아서 같은 반 남자애들과 투닥거리며 지냈고, 그 애와도 자주 그랬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애가 나를 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우리, 사귈래?”


중학교 시절까지 인기가 없었던 나는,
잘생긴 남자애가 다정하게 구는 게 낯간지러우면서도 뻔뻔하게 좋았다.
뭐라도 된 것 같았다.

그 애가 나에게 고백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우쭐해져 있던 찰나,
공주님처럼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불행하다고만 여겼던 내 학창시절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상해주는 듯했다.

남자애들에게 인기는커녕 “나댄다”는 소리만 들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뚱뚱하다는 말을 들었던 몸.
학교에서의 일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공부만 하라고 윽박지르던 엄마.
무관심하던 아빠.
늘 한 끗이 부족한 것 같은 내 노력들.
외모, 집안, 성격. 그 모든 게 자본이던 특목고 생태계.
그 안에서 나는 단 한 번도 감히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꿈꿔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그 생태계 최상위에 있는 남자애가
신발끈이 풀리면 무릎을 꿇어 묶어주고,
콧물이 나면 손수건을 내밀고,
외출 후엔 꼭 음료수 하나라도 손에 쥐여주고,
155cm 밖에 안돠던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등굣길과 복도, 자습실을 함께했다.

그 애의 다정함보다 더 좋았던 건,
그 옆에 있을 때 내가 처음으로 느껴본 안정감이었다.


그 전까지의 나는
무언가를 증명해보이기 위해 바락바락 살아가는 시장통 아줌마였다면
그 애 옆에서는 갑자기 공주님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 많은 부분들이 이미 증명되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저런 애가 나를 좋아한다면, 나도 예쁜 편이겠지.’
‘성격이 괜찮고, 매력도 있겠지.’
그 애가 나를 좋아하고 잘해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 가치가 끝없이 상한가를 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연애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내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내가 예쁠지도 모른다는,
처음으로 내가 똑똑할지도 모른다는,
처음으로 내가 성격 좋고 매력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모든 생각은 ‘그 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단 하나의 사실 위에 세워진 집 같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게 내가 그 애에게 느낀 감정의 전부였다.


나는 그 애를 좋아했지만,
사실은 그 애가 나를 좋아하는 사실이 너무 좋아서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느꼈던 거다.
사랑이었다기보단,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열광한 거였다.


그 애가 이별을 말한 건 봄이 오기 전,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남아 있던 2층 화장실 안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온 힘을 다해 울었다.
너무 울어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머리가 저릿저릿 아파올 때까지, 앉은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 울음은 그 애를 잃은 슬픔이라기보다,
그 애의 시선 안에서 겨우 회복되었던 내 가치가
다시 한없이 추락해버렸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그 애를 통해 공짜로 얻었던 모든 증명을
이제 다시 나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절망이기도 했다.


나는 버려졌다고 느꼈다.
그 애가 다시 내가 부러워하던 여자애들과 어울리는 걸 볼 때마다
질투와 수치가, 그리고 자기혐오가 뒤엉켜 속이 다 타들어갔다.
밥도 굶고, 그 애와 함께 있던 동아리도 그만뒀다.
급식실에서 마주칠까봐 점심시간엔 화장실에 숨어 있기도 했다.
배가 납작해지면 잠깐은 만족스러웠다가,
살이빠져 한 컵은 작아진 가슴을 보고는 또 히스테리를 부렸다.


결국 그 애와의 이별과 함께
잠시 채워졌던 자존감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산산조각 났다.

나는 다시
나를 싫어하고,
친구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굴고,
종종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하지만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바락바락 증명해야하는 시장통 아줌마 신분으로 돌아갔다.


그 상태는 내가 곧 다른 남자애를 만나기 전까지 이어졌다.

열일곱에 시작된 첫사랑은 열여덟에 끝났고,
그 이후에도 연애는 이어졌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연애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원해지는 경험’에 중독된 상태에서 이어진 행동들이었다.

사랑을 나눈 게 아니라,
사랑받는 나를 사랑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정말 슬퍼했어야 하는건

지금 보건대, 그 애가 떠나서 느낀 절망감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채 성장해 앞으로도 숱하게 이어질 수많은 문제적 관계들의 출발을 끊었다는 데에 있었다고 본다.


물론 그때는 몰랐고,

다시 돌아간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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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는 AI를 통해 생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