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자기혐오, 인정욕구

그 세가지가 끝낸 귀중한 연애

by 동동이

(1)

나를 공주님으로 만들어줬던 친구와의 연애가 끝났을 무렵, 한 남자애가 전학을 왔다.

그 애는 아버지가 주재원에서 한국으로 귀임하며 우리학교로 편입을 했다고 했다.

공부를 잘했다. 영어도, 중국어도, 수학도 잘했고 문과 학교였던 우리 학교에서 의대 입시를 준비할 정도였다.


꽤나 무뚝뚝하게 생겼는데 말을 나눠보면 또 웃기는 구석이 있는 애였다.

그 애는 다른 애들보다 압도적으로 똑똑한데다가 내가 질문하는 것을 비웃지 않고 찬찬히 잘 알려주었다.

수학 문제 질문을 하다가 다른 이야기들도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쩌다가 스쳤던 그 애의 손은 참 부드러웠다. 아, 그리고 그 애에게서는 서양남자 향수 냄새가 나곤 했다.

보통 기숙학교에 다녀서 빨래에 서투른 남자애들에게서는 여름철 빨래 덜 마른 냄새가 난다.

그게 다른 남자애들과 그 친구의 차이점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사귀자는 말 없이 그냥 함께했다.

같이 있다가 선생님께 걸려 부모님들 학교에 모셔오기도 했고,

구석진 계단이나 공원에서 손도 잡았고

음악실에서 뽀뽀도 했다.

그 애는 결국 연세대학교에 진학했고, 나는 그 옆에 있는 이화여대에 진학을 했다.

그리고는 스무살이 되며 공식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2)

배신과 상처로 얼룩졌던 스무살이었다.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한데다가 여대에 진학하게 된 나는

새파란 옷을 입고 그 애 옆에서 깔깔대는 같은 과 여자애들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여자애들을 볼 때면 고등학교 시절 너무 부러웠기에 증오했던 여자애들이 떠올랐다.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을 때 그 여자애들은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에 모조리 합격한 상태였다.

혹은 그러지 못하더라도 부모들이 미국에 있는 그럴듯한 대학으로 도피 유학을 시켜준 상태였다.

이미 나는 그런 여자애들에게 패배했는데, 남자친구마저 빼앗겨서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울게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경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떨쳐내려고 해도 열패감은 내게 진득하게 붙어있었다.

그 애가 아무리 열심히 연락을 하고, 같은 과 여자애들과 1대 1로 어울리지 않고, 동기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카톡 프사를 나로 하고 송도로 가던 (당시 연세대학교 1학년들은 송도 캠퍼스에서 머물렀다) 버스에서 뛰쳐내려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더라도 나는 끝끝내 믿지 않았다.


대학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몰래 미팅에 나갔다.

다른 남자애에게 선택을 받고 스킨십을 하면서 내가 여전히 남자친구가 아니더라도 수요가 있는 여자애라는 데서 오는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다. 나를 안정시킬 수 있는 건 겨우 그런 것 뿐이었다.


합석도 많이했다.

어쩌다가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는 남자들이 합석을 한 적이 있는데

세상 험한 줄 모를 때라, 아니 험한 걸 알더라도 그보다도 선택받는게 더 중요할 때라

주량도 모르며 그들이 건네는 술을 덥썩덥썩 받아 먹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거의 질질 끌려가는 상태로 신촌의 어느 모텔 앞에 있었다.

함께하던 친구는 어쩔줄 몰라하다가 다급하게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를 찾으러 새벽에 신촌으로 달려온 그 애는 술에 취해 정신없는 내게 소리를 지르다가 욕을 하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그 애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고,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심지어 나는 그 상황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그것이 뿌듯할 정도로 어딘가 심하게 비뚤어지고 왜곡되어 있는 상태였다.


(3)

몇 번의 고비가 지나고 그는 더 이상 나와 함께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냈다.

너무나 합리적인 결론이라서 몇 번 매달리다가 그를 보내주었다.

그때는 스물한살이 시작되던 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이별은 얼음장 같이 추워서 이빨을 달달 부딪쳤는데, 두 번째 이별은 따스했으나 따스한 봄기운과 함께 절망이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어대고 있었다.


주로 나는 누워있었다. 동아리방에, 학교 어딘가에, 집 침대 위에서.

그러면서 내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사고의 흐름이 어찌 저리 흘러갈 수 있을지 기겁하겠지만, 그 때는 내가 그 애와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똑같이 나도 파란 옷을 입고 주변 남자애들에게 수요를 받으며

그 애와의 관계에서 긴장감을 유지하고, 적막하지 않은 대학생활을 했더라면 이별로 향할 만큼 충동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내 머릿속에는 대학과 예쁨 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고등학교 시절 부터 내 다이어리에는 이런 글귀가 써있었는데, "여자는 예뻐야 하고,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 나는 여학생이므로 예뻐야 하고 공부도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미 조건화된 자아존중감, 완전히 타인과 사회에 위임해버린 내 가치에 대한 증명은 너무나도 뿌리깊게 내면화 되어있어서 그것이 문제인줄도 몰랐다.


그래서 두번째 이별을 맞이하고 나는 이 모든 것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스카이 대학을 가지 못하고,

여대에 다니더라도 예쁘지 못해서 학교 밖 남자들에게 수요 당하지 못하는 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사람을 그렇게까지 싫어해본 적이 있나 싶은데, 나 자신만큼은 죽도록 싫어하고 괴롭히고 조롱하는데 도가 터있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한없이 나를 싫어하면서 가라앉아 2학년 초반부를 보내고 있었다.


(4)

하지만 스무살 초반의 연애가 그러하듯이 그 애에게도 다시 연락이 왔다.

세 달 정도가 지났던 무렵인 것 같다.

그 애는 군대에 간다고 했고,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경찰서의 의병으로 가기 때문에 나를 많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했다.

어차피 그 애 말고 만날 사람도 없었던 나는 좋으면서 고민하는 척 뜸을 들이다 그 애와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때 서로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 과정에서 그 애는 종종 우리 학교에 들러서 신문을 집어가거나

혹은 웹사이트에 접속해 내가 몸담고 있던 학보사의 글을 읽었다고 했다.

당시 정신병으로 병들어가던 와중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던 유일한 창구는 학보사였다.

내게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였지만 보통 대학생들은 학보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그 애는 나와 사귈 때도 우리 학교에 들러 신문을 집어가곤 했난데, 나는 그것이 사귀는 사람에게 으레 보이는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헤어져도 매주 내 기사를 읽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너무 멋있는 사람이고 나는 너를 존경해." 그 애는 내게 말했고, 편지로도 자주 써주곤 했다.


한편, 훈련소에 들어간 그 애는 나에게 매주 편지를 보냈다. 한주에 두 세개를 보낼 때도 있는데,

당시 학보사 운영사무실로 편지를 보내서 담당 행정직원 선생님이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단순히 있었던 일의 나열일 때도 있었으나 그 애의 정갈한 글씨체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속속이 돌이켜보고 써내려간 흔적들로 가득했던 편지도 있었다.

나는 잠시나마 세상과 단절된 그 애에게 내 언어로 풀어내어 세상 돌아가는 걸 알려주었다. 그때 일어나고 있던 일들, 어제 본 다큐멘터리, 동아리에서 있었던 일 등등.

우리는 감정선이 깊었다. 그 감정선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고, 함께 있을 때는 밤새서 떨어져있을 때는 글로 써내려갈 수 있는 흔치 않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였다.


나는 똑똑하고 감정선이 깊은 사람이었고, 그건 가벼운 싸구려 헌팅 횟수보다 나의 가치를 더 잘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에서야 알게된 사실을, 그 애는 그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4)

23살이 되었다.

원치 않은 대학에 들어갔던 것을 만회라도 하듯 어린 나이에 좋은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토록 인정을 갈구하던 내게 최적의 장소였다.

회사 로비를 걷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올라갔고, 동기들도 상사들도 대체로 나를 예뻐했다.

그렇게나 갈구하던 내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도 많아졌고 내가 관심을 보일 남자들의 풀도 많아졌다.


의기양양하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여전히 그 애는 군인이었다.

그는 여전히 헌신적이었고,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하고 있다는 내 말 한마디에 늘 꿈꿔왔던 아이비리그로의 교환학생 대신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신청할 정도로 미래 계획에 진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연애는 지속적인 인정을 줄 수 없었다.

나는 그 애와 함께 하는 안정적인 관계보단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게 더 즐겁고 심지어 행복하다고 느꼈다.


결국 그 애가 군복을 입고 점심시간 데이트를 하러 찾아왔을 때 나는 그 애에게 이별을 고했다.

내게 마구 화를 내던 그 애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고 울던 그 애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재미가 없어."

그 애와의 연애는 그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끝이났다.

나는 계속 회사에 다니며 이상하거나 정상적이라도 나와 맞지 않는 남자들을 만났고,

그는 나 없이 홀로 영국으로 떠났다.


(5)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복귀할 때만 해도 몰랐다.

앞으로 누굴 만나더라도, 시간이 아무리 흐르더라도 나는 그 애를 계속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쓴 글이 담긴 신문을 펼쳐들고는 내게 멋있다고, 존경한다고 말하던 그 애를 잊지 못하게 될 것을 말이다.


정작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존경이나 멋있다는 표현 보다 예쁘다 섹시하다 혹은 귀엽다 라는 표현이 더 좋을 때였다. 그래서 그런 표현도 못하면서 존경이니 뭐니 이야기를 하는 그 애가 여자 마음을 몰라도 참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서야 확실하게 말할 수 있건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남자는 드물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얄팍한 혹은 진심이더라도 언젠가는 바스라져 없어질 내 외모와 몸에 대한 칭찬과 인정 보다는 내가 가진 본질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었다는 것도 알게됐다.


사실 그 애는 내 다이어리에 적힌 "나는 예쁘고 공부를 잘해야 한다"같은 말도 안되는 명제, 그리고 그 기준으로 인정받으려고 애쓰고 인정받지 못하면 죽고 싶었던 내 잘못된 믿음에 균열을 낸 최초의 인간이었다.

예쁘고 공부를 잘하는 여자애도 있겠지만

똑똑하거나, 재미있거나, 혹은 얌전하고 사려깊거나, 글을 쓰거나, 대차거나, 멋있거나.. 다양한 수식어로도 한 여자애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걸 모르는 여자애 그러니까 나의 연애사는 불행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깨달았던 순간 나는 브런치에 내 연애사를 기록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시리즈는 10개를 목표로 잡았지만 사실 결론은 벌써 나온 셈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한국 나이로 스물 아홉이니 이를 깨닫기까지 참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걸린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