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23세, 3명의 남자들 (1)

사회에 나와서 마주한 오피스 와이프 & 허즈번드

by 동동이

지옥같았던 내 마음만 다스린다면 안온하기 짝이없던 고등학교, 대학시절을 거쳐

처음 발을 내딛은 사회는 썩 순수하다거나 따뜻하지 못했다.

아마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오늘의 주인공은 나와 연애를 했던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정서적으로 흔적을 남겼기 때문에 조금 씁쓸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1)

2019년,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등장하기 1년 전 나는 한국 나이로 스물세살이 되었고

인턴으로 첫 회사를 들어가게 되었다.

그 회사는 이름을 들으면 모두가 오오하고 질문이 이어지는 외국계 회사였다.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사옥은 깨끗하고 으리으리해서 입시에 실패했던 나는 무려 2년만에 쪼그라들었던 어깨를 펼 수 있었다.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다른 동기들과 다르게 팀원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를 배정받았다.

대체로 동기들 옆에는 같은팀 저연차 사원이나 대리님이 있었는데 내 옆에는 나와 전혀 관련없는 팀의 팀원들이 앉아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팀의 팀원은 나를 제외하면 3명밖에 없었다. 그들은 세명만으로도 이미 꽉 차는 작은 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앉을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팀원들로 가득차고 넓직한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 영업, 마케팅, 회계 같은 핵심 부서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평생 이렇게 가장자리에 앉아 제일 좋은 것을 못가지는 인생을 살게되겠지.


잠시나마 활짝 펴진 어깨가 다시 수그러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생각도 순간,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커리어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커리어보다도 남녀관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2)

할 일이 없던 나는 주로 옆팀을 구경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거기에는 예쁜 붉은색 트위드 자켓을 자주 입고 다니던(아마도 아이유가 입었던 발망의 카피품이었을) 지금의 내 나이 정도, 혹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던 여자 직원이 있었다.

약간 날카로운 첫인상과 달리 내 인사를 잘 받아주었고, 가끔 웃을 때는 날카로움이 없어져 친절하게 보이기도 했다. 누가봐도 예쁘고 세련된 얼굴이었다.


그녀는 매일 같은 팀의 남자 직원과 붙어다녔다.

남자직원은 하루종일 여자직원과 농담 따먹기를 했고, 그녀는 사춘기 소녀들이 좋아하는 남자애가 장난을 치면 으레 하는 것처럼 그를 살짝 치는 시늉을 하곤 했다.


남자 직원은 넉살이 좋은 편이라서 내게도 말을 잘 걸어주었다.

딱히 할말은 없었겠지만서도, 과거에 우리팀이었다가 최근 다른 팀으로 옮긴 것이라서 제법 같이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내가 나온 대학을 묻더니 본인의 와이프와 똑같은 대학을 나왔다고 반가워했다.

당당하고 똑부러진 내 성격이 와이프의 성격과 비슷하다면서 그 학교는 학생들을 당당하게 키우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상당히 놀랐는데, 그가 결혼했을 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젊어보였고 날씬했고 늘 멋진 옷을 입고 다녔으며 피부가 좋았고 좋은 향수 냄새가 났다.

내가 아는 회사원이라고는 아빠 뿐이었던 내게는 큰 충격이 될 법했다.

아빠는 전형적인 아저씨 체형에 옷도, 스킨도, 피부도 전형적인 아저씨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랐던 것은 결혼을 한 남자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9시부터 6시까지 농담 따먹기를 하고

밥도, 커피도 같이 먹고 약간 신난 듯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런건 왠지 모르게 불법 같았던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3)

그때 내가 회사에서 제일 친했던 사람은 같은 팀에 있는 37세 아저씨였기 때문에 차마 그의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물론 27세 청년이었더라도 이야기 하지는 못했겠지만.

37세 아저씨는 나를 포함해 네명으로 구성된 팀의 막내였다. 그는 늘 졸립고 매사가 지겨운 표정으로 출근했다.


컨설팅 회사 출신이었던 그는 지금 하는 일이 재미없다면서 나에게 불평불만을 했고,

커피나 디저트 혹은 점심을 얻어먹는 대신 그의 불평을 들어주는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더 나는 늘 똑같은 그의 불평불만에 귀를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 리액션을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개박수를 치고 굳이 웃지 않아도 될 웃음을 날리고 언제나 반옥타브씩 목소리를 높여 그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내 역할인 것만 같았다.


처음에 회사로 시작했던 그의 불만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회사 업무부터 회사 사람을 넘어 지겨운 와이프와의 관게, 지겨운 육아도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 그렇게 육아에 많이 참여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불만이 많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출근을 해서 주로 그의 와이프와 육아와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을 듣곤 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지겨운 근무시간에 나를 데리고 농땡이를 많이쳐줬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주변에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함께 남산에도 가고, 유명한 커피집에 웨이팅을 하기도 하고, 혹은 숨겨진 백반집에 가기도 하고.

그렇게 몇개월을 같이 지내니 그가 편해졌던 나도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 이야기부터 헤어진 이야기까지 그에게 할말 못할말을 가리지 않고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4)

어느 점심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내게 예쁘고 젊고 발랄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왠지 모르게 그와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잠오기 시작하는 두세시에 몰래 나가 백화점 지하 카페에서 사먹는 아이스크림이 이전처럼 마음 편하고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내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정말 몰랐는가?

정말 모를 수가 있는가? 한편으로는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혹은 그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이나 께름칙하게 여기던 옆자리의 직원들은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완전하게 결백하다고 할 수 있나?


이유는 모르지만 인턴 계약이 종료되기 1-2주를 앞두고 37세 아저씨는 내게 단단히 화가났다.

어찌나 화가났는지 나를 회의실로 불러서 일대일로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그는 갑자기 나한테 '펜스룰'이라는 단어를 이야기 하다가, 00팀 인턴이 일을 안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말에 아무런 맥락이 없어서 당황했던 나는 미처 머리를 굴릴 새도 없이 회의실에서 눈물을 뚝뚝 떨궜다.

그때 나는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는데, 그토록 친했던 사람이 갑자기 내게 화를 내는데서 오는 배덕감, 이유도 모르고 이런 엉터리 소리를 회의실에 끌려와서 들어야 한다는 억울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울음을 터뜨린 내게 그 사람 위의 차장 정도 되는 분이 나를 달래주고 스타벅스 커피를 사주면서 상황은 일단락이 되었다.

눈이 퉁퉁 부은 채 커피를 쪽쪽 빨면서도 여전히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었고, 차장 직급 정도 되는 그 분도 내게 별 말씀이 없으셨다. 그냥 회사를 다니다보면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달래줄 뿐이었다.

그도 무언가 말하기 매우 곤란한 눈치였다.


(5)

그게 끝이었다.

그는 인턴십이 종료된 내게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고개만 까닥이고 모니터를 보며 내 쪽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키보드를 치던, 그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가 내게 왜 화를 냈는지 모르지만 아주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펜스룰이라는 단어를 꺼냈다는 건, 그리고 나한테 왜 화를 내는지 본인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은 인턴십 기간 내내 함께 다니며 낄낄댔던 순간들을 누군가 지적했기 때문이겠지. 뭐 이정도의 짐작.


그 후로도 나는 많은 회사를 거쳤고, 많은 남녀관계를 보았다.

내가 본 것만 해도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다양한 양상의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는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결혼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이고, 지루함이란 또 무엇이고 새로움이란 또 무엇일지. 책임감은 무엇이고 본능은 무엇이고 즐거움은 또 무엇일지. 무엇이 인생에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것일지.


나는 그 아저씨가 지금은 30대 후반에 찾아오는 아주 작은 위기를 극복하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사람마다 바이브라는게 있는데 그는 그럴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내게 어떤 선 넘는 행동도 하지 않았으므로, 마지막에 성숙하지 못했던 행동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악감정도 없다.


다만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마주한, 일터에서 늘 함께하는 남녀들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무언가는

안그래도 불안으로 가득찬 '관계'에 대한 내 신념을 좋지 못한 방향으로 더 강화했다.

그냥 그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사랑하고 지지고 볶다가 화해하고 울고불고 결혼에 골인하고 애를 낳아도 그냥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아마 잘못한 여자들도 많았을 것이고 지금도 많겠지만, 그때부터 내 머리 속에는 그냥 '남자는 언젠가 바람을 핀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 무게가 가볍든 무겁든'이라는 강력한 신념이 단단히 자리 잡았다.


그리고 꽤 오래, 사실은 지금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서도 잘 지워지지 않고 있다.

마침 그 때는 고모부의 외도로 고모네 가정이 풍비박산 난 상태인데다가, 동기 모임 술자리에서 결혼할 여자가 있다면서도 상습적으로 내 손을 잡고 허벅지를 쓸던 남자가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