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것들

by 정민

올랜도의 유니버셜 스튜디오, 호그와트 성 앞.

수많은 사람들이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

2024년 9월 27일 '맥고나걸'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기억될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다. 팬들은 그녀의 안식을 기원하며 성 앞에 모여 작은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각계의 애도가 이어졌다. 시리즈의 원작 작가인 조앤 K 롤링은 '어쩐 일인지 나는 그분이 영원히 사실 거라 생각했다'며 추모의 글을 남겼다. 해리 포터 역의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SNS에 '매기 스미스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9살이었다. 그는 강렬한 지성을 지닌 사람이자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운 혀를 가졌으며, 위협적인 동시에 매혹적이고, 매우 재밌는 사람이었다'며 추억을 회상했다.


“교수님도 아시겠지만, ‘그’를 영원히 막을 수는 없어요.”

“지체시킬 수는 있죠. 그리고 그 자의 이름은 볼드모트에요. 그냥 이름을 불러도 돼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 어둠의 마법을 휘두르는 ‘죽음을 먹는 자들’과의 전투 중 맥고나걸은 두려움 없는 리더십으로 호그와트를 지킨다. 그녀는 모두가 부르기를 두려워하는 마법사의 이름을 부르며 악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녀의 외침에 따라 호그와트 성의 모든 조각상들이 깨어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뒤이어 교수들은 하늘에 보호 마법을 띄워 호그와트를 둘러싸는 거대한 빛의 장벽을 형성한다. 같은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주문을 쏘아올리는 교수들의 몸짓은 학생들과 학교를 지키겠다는 그들의 결의 그 자체였다. 이는 호그와트의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냈다. 용감한 스승들은 학교와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그 중 일부는 기꺼이 목숨을 잃었다. 작년에 사람들이 이를 패러디해 하늘에 주문을 쏘아 올렸던 것 역시, 위대한 스승들을 향한 존경의 표현으로 보였다.


先生(선생). 먼저 태어나 더 먼저 살아간 사람. 앞서서 걸으며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고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본 시리즈에 나오는 모든 교수들은 해리라는 한 아이를 지키고, 그가 용감한 어른으로 자라게 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그리핀도르의 새로운 퀴디치 수색꾼으로서 해리의 재능을 발굴했다. 덤블도어는 ‘사랑 없이 사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귀한 가르침을 전했다. 해리의 어머니 릴리 포터를 죽는 날까지 사랑했던 스네이프는 뒤에서 해리를 필사적으로 지켰다. 교수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이 그랬다. 사실 너는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려준 해그리드. 가족이 없는 해리에게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짜서 선물한 위즐리 부인. 해리의 또 다른 아버지가 되어준 시리우스 블랙. 그들의 사랑은 단순히 가족이나 연인 간의 사랑을 넘어서는,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형태의 헌신이었다.


모든 전투가 마무리된 후, 아이가 받은 사랑이 흘러 두 번째 삶으로 이어진다. 해리는 가장 존경한 두 스승, 알버스와 세베루스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준다. 시리즈의 마지막 책과 영화를 보며 한참 동안 여운에 휩싸여있던 건 이들과 함께 자란 나 역시 그 시점에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리즈는 편을 거듭할수록 어두워졌고 함께 자라온 캐릭터들은 처절하게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I open at the close)’는 걸 믿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그 중 어떤 면을 바라볼지는 사람들에게서 배운 따뜻함의 모습에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서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작은 친절이 우리가 중요한 사람임을 일깨우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심지어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든다. 내게도 누군가를 돌아보고 헤아릴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온기가 세상에 흐르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해리를 지켜준 호그와트의 스승들처럼, 내 곁에도 늘 한 사람이 있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교단에서 내려오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 바로 나의 엄마다.


엄마는 대학에서 수십 년 간 교양 영어와 영문학 강의를 해왔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유롭게 자라기도 했지만, 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혼자 있었던 기억 또한 많다.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엄마와 아빠는 항상 무언가를 바쁘게 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에게 맞벌이 부모님이 있는 경우는 꽤 드물었다. 그래서 외로웠다. 해리를 둘러싼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돌봤다. 바로 아래층에 살며 거의 매일 함께 놀았던 친구의 어머니. 아무도 없는 동안 우리 집에 와서 책을 읽어주셨던 가사도우미 여사님. 언니와 이모, 외삼촌, 사촌들, 그리고 수많은 친구들.


한편 멋지게 차려 입고 일하러 가는 엄마의 모습은 내 자랑이기도 했다. 일하는 여성에 대한 동경이 생긴 건 그 때부터였다. 가끔 유치원이나 학교에 엄마가 왔을 때 어머니가 참 예쁘시다는 말을 들으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실제로 봐 온 그 어떤 선생님보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듯이 보였다.

“학생들은 눈빛이 달라. 정말 많이 배우게 돼.”

“내 딸들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학생들을 보면 꼭 내 아들딸 같았어.”

“여러분이 다니는 이 캠퍼스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그 말들은 세상을 향한 사랑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세상이 바뀌면서 그녀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엄마는 일생 동안 정교수가 되지 못했고 최근 몇 년 간은 다른 지역에 있는 캠퍼스로 힘들게 강의를 나갔다. 환갑을 넘기고도 고속도로 위를 달려 일을 하러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서 속이 상했다. 가끔 엄마는 익숙하지 않은 PPT와 엑셀을 붙잡고 씨름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는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다루지 못해 쩔쩔 매는 모습에 몰래 운 적도 있는데 이제 그녀가 세상의 주역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한편 재택 근무를 하던 중 방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온라인 수업을 몰래 청강했던 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육아를 하며 택했던 방목형 교육 방식을 수업에서도 드러내고 계셨다. 아이들이 텍스트를 읽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가끔 학생들이 길 잃은 어린 양처럼 헤매고 있을 때에만 개입해 울타리 안으로 다시 데려왔다. 엄마는 가끔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고 자신의 강의 평가가 한 번도 나빴던 적이 없다며 자랑하곤 했다. 왠지 제자들은 호호아줌마 같이 포근하고 눈빛이 반짝이는 그녀를 꽤나 오랫동안 기억할 것만 같다.


엄마는 누군가의 선생이기도 했지만, 일생 동안 배움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피아노, 외국어, 그림 등 세상 아름다운 것들과의 접점을 계속 늘려나갔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나 역시 관심 분야가 다양한 호기심 천국으로 성장했다. 그 중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지식 공부가 아닌 세상 공부였다.

“어떠한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라.”

“네가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으면 좋겠다.”

독심술을 쓰시는 건지, 내가 타인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순간마다 이런 말들을 해주셨다.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 서운하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기꺼이 그 사람이 되어봐야 한다는 가르침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말하자면 엄마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노년의 과제는 꺼져가는 빛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임을 믿는 것이라 한다. 이처럼 그녀는 젊은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꺼이 가이드를 자처했고, 그들이 목장 안에서 행복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본 이후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엄마를 떠올리면 고마운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가 행복한 것이 그녀 역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알기에 나는 매 순간 진하게 살게 된다. 나에게 자존감이, 용기가, 따뜻함이, 유연함이 있다면 그건 모두 당신의 것. 그런 나로부터 앞으로 또 다른 시작이 이어질 것이다. 호그와트 앞에서 사람들이 지팡이를 들었던 것처럼, 나도 올해 연말에는 꽃다발을 들어 엄마에게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