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는 완벽했다. 집사만 빼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넘어 얼굴을 간질였다. 평소라면 부드러운 햇빛을 받으며 기지개를 켰겠지만, 오늘은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집사가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조용히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 요리할 생각인가 보네...?"
그가 요리를 시도할 때마다 방 안이 전쟁터가 된다. 펼쳐진 수많은 재료를 싱크대 위가 감당을 못하자 밥상 두 개를 놓고 그 위에까지 판을 벌려놓았다. 바닥에 흩어진 양파 껍질, 주변에 묻은 흙, 냄비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악한 연기까지. 나는 천천히 부엌으로 다가갔다. 천진난만한 그의 표정에서 이미 사태가 심각하다는 게 눈에 보였다.
정신없는 상황이 계속될수록 냉장고 문이 열었다 닫히길 반복했다.
‘양파, 당근, 스팸... 대체 무슨 요리를 하려는 거지?’ 재료들은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썰려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집사의 손놀림은 분주했지만,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생각났다.
‘곧 연기로 덮이겠군.’
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집사를 바라보며 부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상황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으로 변해갔다. 냄비에서 나는 희미한 탄내는 담장 너머로 뻗어나가는 넝쿨처럼 얽히고설켜 검은 장미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박쥐들이 뿜어져 나오면서 드라큘라가 등장하는 장면 속에 빠져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대로 놔뒀다간 부엌 전체가 탄내로 가득할 것이다. 적당히 경고를 줘야 했기에 재빨리 집사의 발 앞에 다가가 내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기로 했다.
“냐옭!”
집사가 깜짝 놀라 나를 내려다보았다. 발을 콱 물어버렸다.
“뭐야! 너 왜 그래?”
당황한 얼굴로 집사는 물러섰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더욱 단호한 표정으로 집사를 응시했다.
"걱정 말아. 남자는 블랙이라는 말이 있잖아. 신라면도 블랙이 맛있어."
저 철부지의 말을 들어보니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고약한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 냄비보다 저 남자가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었다. 올해 나이로 계란 한 판이 된 것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이코!”
집사는 급히 냄비 뚜껑을 열고 국자를 휘저었다.
“타기 직전이잖아! 불맛이 들어가서 더 맛있겠는걸?” 불이 냄비를 달구는지 내 속을 달구는지 모르겠다. 말은 그렇게 해도 집사는 한숨을 내쉬며 부엌 정리를 시작했다. 흩어진 재료들을 차곡차곡 다시 냉장고에 넣고, 탄 냄비를 조심스럽게 씻었다. 나도 부엌 한구석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집사의 움직임이 차분해지는 걸 보니 내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졌다. 저도 뻔뻔하기를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음번엔 요리를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연기가 냄비가 아닌 내 머리 위에서 나는 건 아니었을지 의심스러워 슥슥 매만져보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 대신 꼬리를 흔들었다. 부엌은 다시 고요해졌고 집사는 침대 위에 앉아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조용히 집사 곁으로 다가가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손가락을 콱 물어버렸다. 주변을 산만하게 만들지 말라는 소심한 복수이기도 했다. 자기도 물겠다며 난리를 치는 그를 보니 전에는 어떤 힘든 상황도 그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따라오는 피곤함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