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를 틀고 붕어빵도 팔고 싶은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도 소망을 품을 수 있나요?

by 고양이시인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찬바람이 순식간에 방 안으로 몰려들었다.

[설이야, 아빠 오기 전에 보일러랑 전기장판 좀 미리 틀어놓으라니까]

[냐옹]

버튼식으로라도 바꿔주든가. 고양이에게 레버를 돌리라고 말하는 집사는 세상에 저 남자밖에 없을 거다. 가뜩이나 나도 추위를 피해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근래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다 읽었다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던 그였다. 그렇지만 늘라는 지식은 안 쌓고 뻔뻔하게 이기심만 잔뜩 쌓았나 보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으면 쓰다듬어줄 한데, 곧장 침대로 가더니 노트북을 꺼내 연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타닥타닥 자판 소리, 차분한 숨소리,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만이 가득했다.

[설이야, 날이 이렇게 추운데 벌써 겨울도 갔나 봐. 봄맞이 옷 할인이 이렇게나 많네.]

한 달 전 헥헥거리며 양손 가득 옷을 들고 오던 그가 떠올랐다.

[가게 이전 세일이라 절반 가격에 샀어!]

충동구매라는 신이 있다면 오늘 필히 소고기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아침이 오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하잖아? 계절도 그래. 봄이 오기 전 겨울이 가장 추운 것 같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가장 추운 날에 가장 따뜻한 날을 준비한단다.]

무슨 말인지 어려워 코를 씰룩이며 잠자코 앉아 있었다.


[어제는 집에 가는 길에 붕어빵이 너무 먹고 싶더라. 바삭한 빵을 쪼개면 진하고 고소한 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각이 든 거지.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이 혀를 감싸는 기분도 그야말로 최고야. 마침 짚 앞에 붕어빵을 파는 곳이 있어서 이동하는 내내 붕어빵 생각만 했어 그럼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일에 치여 받았던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잊게 돼.]

집사의 말이 여전히 어려웠다.


[설이 너도 뭔가를 바라고 기다리는 순간이 있니? 힘든 순간을 버티게 해주는 무언가 말이야.]


나는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오는 집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집사가 주는 츄르,

그 단맛은 긴 시간을 견딘 보람찬 단맛이랄까? 생각해 보면, 하루의 절반이 집사가 말한 그 순간이었다.


[냐옹]


[그걸 우리는 소망이라고 부른단다.]

[소망의 조건은 기다림이야. 단, 소망은 그 기다림을 결코 무료하게 만들지 않아. 감정이란 생명들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해서, 기다림의 끝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이거든. 다르게 말하면, 소망은 우리가 살아갈 이유를 끊임없이 제공해 주는 무한동력 장치야. 봄을 소망하는 사람에게는 추위를 견딜 이유를 만들어주고, 휴식을 소망하는 사람에게는 일의 고됨을 버티게 해 주지.]


살아갈 수 있는 힘...


[해야 할 일만 하고 살기에는 사람이란 동물은 너무 약해.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은 없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야. 그러니 소망 하나 만드는 노력 정도는 해봐야겠지. 여러 사람의 감정 맞춰주고 달래면서 남의 집을 정성껏 차려줬으면, 나 역시 나를 돌봐줘야 돼.]

집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소망은 거창한 게 아니어도 돼. 네가 살아가는 일상의 그 무엇이라도 소망이 될 수 있어.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 하잖아. 다르게 보면, 소망으로 가득 찬 존재가 사람이란 말이기도 해.]

그가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배고픈 우리에게 맛있는 걸 선물해 주렴. 시들어 가는 너의 꽃에 물을 주고, 삐걱거리는 문에 기름도 발라주고, 보살펴야 할 나의 여린 부분이 너무나 많아. 너 스스로에게 힘이 되어줄 작은 소망부터 하나씩 만들어 봐. 나는 나에게서 배우는 모든 아이가 작은 소망들이 모인 꿈나무였으면 좋겠어. 계절이 변해 마른 가지만 앙상하더라도 다시 올봄을 기다리며 보드라운 새싹을 피울 수 있는 소망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집사를 위해 붕어빵 장사를 시작해야 하나?

간판은 '봄까지 따뜻한 붕어'로 하면 좋겠다.

입춘이 지났다. 곧 따듯한 날이 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타는 건 어쩌면 내 속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