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쓸모>, 최태성, 다산초당
‘큰별쌤’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작가의 주장은 제목에서부터 뚜렷하다. “역사는 쓸모 있다.” 역사가 어떻게 쓸모 있는가? 오늘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역사 속 인물들이 삶에 대한 풍부한 케이스 스터디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가는 이 케이스 스터디를 크게 네 구간으로 구분해 서술한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에서는 삼국유사, 동학농민운동 등 예시와 함께 역사를 어째서 배워야 하고 역사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주장이 제시된다. 지금부터 읽을 이야기들은 왜 중요하고, 무엇을 얻어가야 하는지 소개하는 들어가는 글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에서는 이 주제를 발전시켜,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을 키워드 하나당 역사 속 사건 하나와 연결 지어 설명하고 있다. 잉카제국의 멸망을 통해 성찰을 배우고, 서희의 외교 담판을 통해 협상을 배우는 식이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형식이 변주되어, 인물 한 사람의 삶을 개괄적으로 보여주며 그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보여준다. 정도전의 삶을 통해 불합리한 것을 바꾸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장보고의 삶에서 바다 너머를 상상하는 용기를 배우는 식이다. 마지막 4장인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교훈을 현대에 적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바라보고, 시민의식에 대해 성찰하며 ‘역사 속의 나’라는 감각을 고취하는 장이자, 작가의 문제의식이 한 번 더 강조되는 부분이다. 이 장을 통해 작가는 초장부터 반복한 질문에 다시 한번 울림을 더한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은 한 번인데 도무지 어떻게 살지 감이 안 잡히는 시대다. 치열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다니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한 후에도 무언가 놓쳐버린 상실감을 지울 바 없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 공허한가? 이런 시대의 물음이 ‘멘토’ 열풍을 불러왔다. 어려운 시기마다 새로운 종교와 선구자를 추앙하듯이, 우리 시대는 멘토를 원하고, 그래서 멘토는 시대에 의해 생산된다. 그러나 멘토들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세상 풍파에 의해, 때로는 스스로 가져온 부정으로 인해 사라지고 만다. 더욱이 좋은 멘토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의 행적을 그대로 좇는 것이 항상 나에게 정답일 수는 없다. 누군가 길잡이 삼아 따른다는 것은, 그만큼 내 삶에 대한 고민을 덜어내고 저 방향이 맞으려니-하는 다소간 효율성을 고려한 선택이다. 그러나 내가 저 사람은 아닌데, 어떻게 저 사람이 항상 맞겠는가! 나를 위한, 온전히 나만이 할 수 있는 고민을 멘토라는 얄팍한 문화상품을 소비함으로써 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역사 속 인물들은 비교적 안전하다. 일단 그들은 더 사고 칠 육신이 없는 데다, 시대적 거리로 인해 한층 객관적인 눈으로 좋은 점만 꼽아 교훈 삼을 수도 있다. 역사 속 인물에게서 배우려면 그들을 해석해야 하고, 시대의 차이에 따른 보정을 거치고 내 삶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한 번 더 숙고를 거치게 되니까. 그런 점에서 작가가 제시한 역사 속 인물들은 멘토로서 조금 더 건실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
독서모임을 위한 질문
1. 저는 장보고(‘장보고: 바다 너머를 상상하는 힘’)와 나혜석(‘역사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바라본다면’)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특별히 마음에 남은 인물이나 일화가 있었나요?
2. "좋은 멘토는 죽은 멘토”라고 농담 삼아 썼지만, 요즘 존경받던 인물이 불미스러운 일을 행하고 지탄을 받는 사례도 많은 것 같아요. 한 인물의 공적 업적과 사적인 부정함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