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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Apr 05. 2018

마쓰야마에 별다른 게 있을까?

일본 마쓰야마 여행 ①

나에게 있어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여행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일단 항공권을 결제하고 일정을 확정하면 이제 ‘다 했다’는 기분으로 남은 모든 것을 미루고 또 미룬다. 볼 거리나 먹을 거리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 숙소를 고르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에야 컴퓨터 앞에 앉아 좋은 조건의 숙소를 모조리 놓쳐버릴 때도 많다.


인터넷에 정보가 너무 자세하다 보니 미리 충분히 알아보고 가면 감흥이 떨어진다는 것도 내 나름의 소소한 이유지만, 그보다 무엇을 검색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정이 알차게 짜인 패키지여행을 따라다니는 것이 딱이겠으나, 또 나름대로 여행에 대한 취향은 확고하여 대낮부터 맥주 마실 여유가 없는 여행은 싫다. 우리나라는 ‘낮술’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술은 저녁에 마시는 거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어디서든 캐주얼하게 맥주를 시킬 수 있는 나라에 가면(혹은 여행자라는 신분으로 알콜 프리패스권을 획득하면) 그 점이 가장 흥겹다. 그래서 내가 주로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여행의 키워드는 '지역 술'과 '고양이'다.


마쓰야마 여행을 사흘 앞두고서야 마음이 급해진 이유도, 마쓰야마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진 거대한 온천이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마쓰야마에 가는 건 그곳에 대한 매력보다는, 마쓰야마에서 고양이 섬으로 알려진 아오시마를 짧은 루트로 갈 수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마침 작년 가을쯤 공정여행 기획을 하는 ‘배낭맨 고양이’에서 마쓰야마에 가는 항공권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숙소도 '배낭맨 고양이'에서 추천해준 곳으로 휙휙 예약해 이번에는 한결 여행 준비가 쾌적했다.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서는 지도부터 들여다봐야 하는데, 지도를 잘 볼 줄 모르는 나로서는 사진만 보고 결정하는 것이 단연 편했다. 추천받은 대로 '네, 거기로 할게요!' 하고 예약했는데 결과적으로 두 군데의 숙소 위치가 정말 좋았다. 공정여행이라는 단어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기존의 많은 여행 상품에 들어 있는 쇼핑 옵션 같은 것을 없애고 지역 사회를 위한 착하고 윤리적인 여행을 기획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관광객이 소비하는 이득은 현지인에게 돌려주고, 여행자는 좀 더 지역 사회와 가깝게 머물 수 있는 여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겨우 마쓰야마에 가게 되었으니 알찬 경험담을 안고 돌아오고 싶은데…… 그제야 마쓰야마에 뭐가 있는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리어 그곳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떨어져갔다. 일단 검색해도 별로 나오는 게 많지 않고, 주요 키워드 자체가 무척 적었다. 마쓰야마 성, 도고 온천, 봇짱, 그리고 귤 정도? 마쓰야마는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의 배경이 된 도시인 모양이었다. 덕분에 봇짱 시계탑, 봇짱 전차, 봇짱 세트메뉴 등이 곳곳에 있는 것 같았다. 대학생 때 일본 문학을 배운 적이 있어서 그나마 들어본 적 있다는 게 반가웠다.


첫째날 오후 도착 : 료칸에서 휴식

둘째날 : 아오시마

셋째날 : 마쓰야마 성에서 벚꽃 구경 후 도고 온천

넷째날 : 오카이도 쇼핑 거리를 둘러보고 귀가


이렇게 대략의 일정을 정했다. 남편에게 ‘거기 그냥 시골 마을인 것 같아’라고 기대감을 떨어뜨리며 ‘그래도 마쓰야마 성에 벚꽃이 예쁘대’ 했더니 그는 어이없어했다. “내가 지지지지난 번에 이미 알려줬잖아, 성에 올라가서 벚꽃 보자고!”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고양이 섬 아오시마에 드디어 간다는 생각에 마쓰야마에 대해서는 귀에 들어온 정보도 한 귀로 다시 흘려보낸 모양이었다. 어쨌든 우리가 여행을 가는 날짜는 3월 말에서 4월 초. 완벽한 벚꽃 개화 시기였다. 원래는 3월 중순으로 예정되어 있던 일정이 어쩌다 보니 뒤로 미뤄졌는데, 그 덕분에 벚꽃 시즌에 꼭 맞춰서 일본 여행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은 네다섯 번쯤 다녀왔는데 이 계절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벚꽃이 필 때마다 중간고사를 치러야 했던 대학 시절과…… 주말에 꽃구경을 갈라치면 금요일에 비가 내려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했던 지난봄들을 떠올리며 새삼 감개무량해졌다. 벚꽃 시즌에 일본을 간다! 고양이도 보러 간다!




마쓰야마에 도착했을 때 벌써 햇살이 작은 공항 내부까지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일기예보에 따르면 내내 날씨가 좋을 예정이었다. 리무진을 타고 시내로 갈 참이라 표지판을 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안내데스크를 발견해 '리무진은…' 하고 묻자 직원 분이 아주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어디로 가세요? 아, 그럼 이 한국인 전용 셔틀 버스를 타고 가시면 무료예요. 돌아오실 때도 해당 위치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오실 수 있어요."



뜻밖의 정보를 (그것도 한국어로) 득템하자 한층 더 신이 났다! 이 셔틀 버스를 타면 '마쓰야마시역, 이치반쵸, 도고온천, 도고프린스, 오쿠도고' 등으로 갈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리무진을 타고 출발하자 창밖의 풍경이 눈에 또렷히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거리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 휑한 시골일 줄 알았는데 단정하고 예쁜 집이 늘어서 있는 이 거리 풍경이라니. 아무래도 일본은 비교적 익숙하다 보니…… 내가 너무 마쓰야마를 시시하게 생각했나 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첫 인상을 보자마자 단번에 마쓰야마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첫날 숙소는 도고 온천 근처에 있는 료칸이었다. 료칸을 이용하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항공권 이벤트에 당첨된 덕분에 아낀 비용으로 비싼 료칸을 큰맘 먹고 예약했던 것이다. 1박에 3만 7천 엔. 물론 나머지 2박은 저렴한 비지니스 호텔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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