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마쓰야마 여행 ②
버스에서 내려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료칸으로 가다 보니 벚꽃이 한껏 피어 있는 공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공원 바로 맞은편이 바로 숙소였다. 입구로 들어갔더니 예약 번호도 필요 없이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체크인 완료. 료칸 같은 본격적인 서비스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입구부터 느낄 수 있는 전 직원들의 친절함에 어쩐지 몸둘 바 모를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그 친절한 직원 분이 우리를 가운데 테이블 쪽으로 안내해 주더니 뭔가 길게 설명하고는 어딘가로 사라지셨다. 방까지 데려다주시는 거 아니었나? 우린 머리에 물음표를 그리며 멀뚱멀뚱 서 있었다. 내 전공 중 하나인 일본어는 대학교 졸업 이후로 급속히 퇴화하고 있어서 '저희 료칸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오며 곧 웰컴 차와 주전부리를 가져다드린 뒤 예약하신 방과 이용하실 수 있는 시설에 대해 설명해드릴 테니 여기에 앉아서 잠시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계세요' 따위의 정중하고 긴 문장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이것은 추측). 동화책 수준으로 말해주세요……. 눈치껏 다가가 '기다리라고요?' 묻자 맞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잠시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더니 따뜻한 녹차와 티푸드를 가져다 주셨다. 클렌징과 로션 등이 '공주님 세트'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왔다. 안내해주시는 분이 '우리 료칸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아무도 없는데 일본어를 조금은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다행이다, 저도 영어 할 줄 몰라요. '천천히 말해주면 조금은 알아듣는다'고 하니 이번에는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짧은 문장으로 식사와 목욕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배낭맨 고양이'를 통해 숙소를 예약할 때, 료칸은 식사를 함께 예약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하셔서 석식과 조식을 함께 예약해둔 참이었다. 저녁 시간을 선택하고 방에 짐을 풀어놓은 뒤, 한두 시간쯤 여유가 있어서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느라 점심 때를 놓쳐서 몹시 배가 고픈 상태였다. 가까운 곳에 상점가가 있어서 저녁 전에 간단한 간식거리라도 사먹을 요량으로 그 길을 쭉 걸어갔더니 라멘 가게 앞에 고양이가 우뚝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야옹거리고 있었다.
줄 게 없어서 초조한 마음으로 그 앞을 서성이다가 겨우 발걸음을 떼고 걸어갔더니 상점가 끝에 도고 온천이 있었다. 3일째에 올 예정이었던 도고 온천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온천이 있는 이곳은 물이 좋아서 맥주가 맛있다고 한다. 마침 온천 바로 옆에 있는 가게에 커다랗게 맥주 사진이 그려져 있어서, 저녁 전에 맥주부터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어차피 온천을 하러 여기는 다시 올 거니까, 하고 옆에 있는 도고 온천을 흘깃 바라봤을 뿐 마쓰야마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를 앞에 두고도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 그때는 물론 몰랐다. 이게 도고 온천과의 첫 만남이자 마지막이 될 줄은…….
가게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맥주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500ml에 860엔이니까 우리나라에서 웬만한 수제맥주를 먹는 것보다 더 비싼 셈이었다. 그래도…… 도고 맥주를 안 먹을 수는 없지. 오늘의 첫 끼나 마찬가지인 맥주를 꼴깍꼴깍 넘기자 배고픔이 조금 해결됐다. 사실 이때는 여기가 관광지라서 맥주 값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냥 일본 물가가 다 비쌌던 것 같다. 유럽에서는 '커피가 너무 싸! 맥주가 엄청 싸! 와인도!' 하고 어디서나 카페인과 알콜을 팡팡 마셨었는데 일본 술집에서 취할 만큼 먹으려다가는 파산하게 생겼다.
그렇게 다시 올 줄 알았던 도고 온천을 미련 없이 뒤로하고 공원을 거쳐 료칸으로 돌아가니 딱 저녁 시간이었다. 식당에 가니 이미 두 사람 자리가 세팅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료칸에서 먹는 가이세키가 내 입맛에 맞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식 자체가 나에게는 어려운 것이, 원래 해물을 거의 안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때문에 바닷가에 가도 회를 못 먹는 남편이라도 즐거운 식사가 되길 바라며 무려 7가지 코스의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역시나 무엇을 먹어도 생선이거나 생선 맛이 나서, 방으로 돌아가면 편의점에서 사온 귤 맥주와 과자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고급스럽고 예쁜 음식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다행히 남편은 회가 맛있다고 했다.
료칸에서 가이세키보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온천이었다. 나는 대중목욕탕처럼 여러 명이 함께 쓰는 탕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커다란 탕이 세 개 있고 그걸 한 사람씩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한 칸마다 샤워 시설과 함께 큼직한 온천탕이 들어 있었고 그 디테일이 셋 다 달랐다. 우와, 이게 웬 호사야. 나는 실내 탕 외에 노천탕이 따로 있는 칸에 들어가 졸졸 물소리를 들으며 온천을 했다. 여기는 벌레가 없네?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다가 결국에는 잡다한 생각조차 한 올도 남지 않고 머릿속이 텅 비었다. 몸이 따끈따끈하게 익은 채 방으로 돌아와 맥주 한 잔을 더 마시고 침대에 누웠더니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그 여운을 만끽하고 싶었으나, 남편 말로는 내가 30초 만에 기절하듯 잠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