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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Apr 17. 2018

그 농담이 나는 웃기지 않다

혹시 아내 때문에 불행한가요?

남편이 회식을 하고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왔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술을 자주 먹는 편이라 서로의 음주 생활에 대해 별다른 코멘트를 달지 않는다. 굳이 한마디 한다면 ‘토하지만 마라’ 정도다.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남편은 회식 자리가 제법 즐거웠는지 기억에 남는 웃긴 일들을 조잘조잘 들려주었다. 나도 보통은 그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듣는 것이 좋다.


송년회였던가, 신년회였던가 하는 자리라서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한 모양이었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중 한 명이 “OO부서 OOO입니다. 결혼한 지 O년차인데…… 집에 늦게 들어가고 싶습니다”라고 ‘재치 있게’ 인사를 한 모양이었다. 그건 야근 OK라는 메시지보다는 ‘유부남이라 집에 늦게 갈수록 좋다’는 의미였다. 여자보다 남자 수가 월등히 많은 그 회식 자리의 직원들이 모두 빵 터지며 웃었단다. 그게 재밌어? 나는 남편의 웃음 코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남편에게 몇 번인가 주의를 주었다. 결혼한 남자에게 “결혼 생활 어때? 좋아?”라고 물었을 때 “하하하 네 아주 좋죠 매우 행복합니다”라고 기계처럼 대답하는 상황 같은 게 나는 싫다고 말이다. 그것이 유부남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와이프가 보고 있다’ 카테고리의 농담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유부남들이 모두 ‘나도 저 마음 잘 안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는 꼴이 보기 싫었다. 그게 정말 웃겨?


이 웃기지 않는 농담은 특정 소수의 집단이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고 있다. 마치 10대 청소년들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쓰는 언어를 만들고 생각하는 방식을 공유하듯이 ‘대한민국 유부남’이라는 타이틀을 갖춘 이들은 갑자기 ‘창살 없는 감옥’에라도 들어간 것 같은 스스로의 처지를 희화화하기 시작한다.


TV에서 유부남들이 흔히 공유하는 그 웃음 코드가 나는 언제나 불편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에게 “지금이라도 자-알 생각해봐”라고 조언하거나 유부남에게 “에이, 행복하다고요? 수척해지신 것 같은데?” 하고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거나. 그 농담이 웃기다는 사회적인 합의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홀로 곱씹으며, 나는 채널을 돌렸다.


내가 느끼는 결혼생활의 형태는 제법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결혼생활은 옛 드라마 속 쥐꼬리만 한 월급을 집에 가져다 바치는 가장과 그 쥐꼬리에 늘 바가지를 긁는 억척스러운 아내와 아무것도 모르고 징징거리는 철없는 어린 아이들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그 그림의 피해자는 외로운 가장이다. 아내는 가뜩이나 힘든 남편을 더 괴롭히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각자의 결혼생활은 결국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결혼 후 서로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가정 내에서 해결해나가야 할 일이다. 온 세상에 대고 ‘내 결혼생활은 별로야’라고 징징거릴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결혼생활을 전형화함으로써 어쩌면 그들이 밟고 싶지 않았던 외로운 가장의 전철을 밟게 되지는 않을까. 그런 두려움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삶을 이미 받아들인 것일까. 게다가 그들은 모르고 있다. 진짜 피해자는 자신의 고충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가 없다는 걸.


외국 남자들은 와이프에 대하여 ‘내가 사랑하는 여자’라는 논지의 발언을 잘도 하던데, 한국 사회에서 어느 유부남이 그런 말을 하고 다니면 아마 ‘저 인간은 뭐야?’ 하는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아내에게 자상한 남자의 대명사 샨에 대해 ‘저렇게 살아야지’가 아니라 ‘너 때문에 대한민국 남편들이 힘들어’로 대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결혼 생활이 얼마나 별로인지를 웃음거리로 삼는 데 일조하는 것보다는 ‘그래, 너희 잘났다. 잘 먹고 잘 살아라’를 당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유부남들의 고충을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물론 이 정도면 양반인지도 모른다. 더 저급한 농담도 있다. '가족끼리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라든가 '와이프가 샤워하면 무섭다'라든가 하는. 저기요, 그런 말 하고 다니는 거 와이프도 알아요?




얼마 전 이사한 임대주택의 입주민들 모임이 있었다. 신혼부부 아파트라 대부분 부부가 함께 참여했지만 남편이나 아내 혼자 온 이들도 몇몇 있었다. 어느 모임이나 그렇듯 분위기를 살리는 성격 좋은 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중 한 남편이 자신의 용돈과 모임의 회비를 운운하며 “와이프한테 용돈 받아 왔는데, 회비가 더 적게 나오면 몰래 가질 수 있겠다”는 종류의 농담을 했다. 아무튼 그건 농담이었는데, 남편이 “아, 저도 혼자 올 걸 그랬네요?” 하고 맞장구쳤다.


나는 그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집은 결혼하면서 각자의 수입을 합쳐서 용도별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돈의 쓰임을 정해서 고정비, 생활비, 적금, 비상금 등으로 분류하는 작업은 주로 내가 했지만 용돈은 동일한 금액을 정하여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용돈을 ‘타서 쓰지’ 않으며 그저 합의했을 뿐이다. 심지어 우리는 저금을 열심히 하지도 않아서, 필요할 때 돈이 있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사용한다.


그러니까 남편은 진실 혹은 진심을 말한 게 아니다. 그냥 맞장구를 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약간 상처를 입었다. 그 1, 2초 정도의 짧은 순간에 나는 그에게 필요없거나, 걸림돌이거나, 그의 자유를 박탈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나는 술자리가 끝나고 난 뒤 그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남편은 뭐가 문제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알면서도 몰랐을 것이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인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야.”


그 대꾸에 더 화가 치밀었다. 왜 실제로 있지도 않은 구속을 우스갯소리삼아야 하는 걸까. 그런 농담을 던지는 남자들은 아내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긴 한 걸까? 내 남편이 연예인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나는 연예인들이 TV에 나와서 그런 농담을 할 때면 ‘저걸 TV로 지켜보는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할 것인지’가 항상 궁금했기 때문에.


문득 차라리 경제권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적어도 ‘와이프한테 용돈을 받아쓰는 생활을 하고 있어서 몰래 비상금을 만드는 게 참 신난다’는 종류의 농담은 할 수 없어지겠지. ‘집에 가면 와이프가 있다’에서 파생하는 농담은 여전히 할 수 있겠지만. 빈말로라도 '아내와 함께하는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말하는 것이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쿨’해 보이는 걸까?


남편은 그 농담을 분위기를 살리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아주 쉽고 간편한 수단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 방법 외에 그 자리에 있는 남자들을 웃길 만한 ‘확실한’ 코드가 없기 때문이고, 이미 많은 유부남들이 그런 농담을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이미 동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들 각자의 집에서는 좋은 남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집단 내에 있을 때 그중 누구도 ‘아내는 나의 자유 의지를 구속하는 존재가 아니며 우리는 서로에게 동등한 영향력을 부여하고 있다’거나 ‘아내를 우스갯소리로 삼지 말고 존중하자’고 발언하여 분위기를 깨지 않는다. 그래, 방금 한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 나의 농담 같은 것이다. 그런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투사가 아니라서, 내가 원하는 건 그 농담을 차라리 ‘방관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언의 동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끼어들지’ 않는 정도다.


남편은 이후 ‘그런 종류의 농담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아마 사회생활을 하면서 앞으로도 수없이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고, 때로는 서로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누군가의 말에 동조해야 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회에 속해 있는 남편을 보지 않는 것, 가정에서의 남편이 진짜 ‘그’라고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럼으로써 현실을 외면하는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혼이 어떠한 종류의 체념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될 것이다. 때로 우리는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니까. 남들 웃기려고 가장 가까이 있는 반려자를 우습게 만드는 그 농담, 언제까지 웃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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