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취미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
남편이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은 연애할 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게임을 전혀 하지 않지만 남편의 취미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결혼 전에 우리는 다른 연인들처럼 주로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데이트를 했고, 각자 집에 돌아간 뒤 아마 그는 게임을 했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에 서로에게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에 그의 취미는 우리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하나의 ‘문제’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변한 것이 없었으나 내겐 스트레스 지점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면 어디쯤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할까? 내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게임 좀 그만 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
나는 게임 사운드에 예민했다. 액션 영화도 기가 빠져나가는 듯해 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우리의 공간에 게임에서 흘러나오는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가득해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었다. 남편은 헤드셋을 사서 그걸 쓰고 게임을 했고, 나는 그 뒤에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책을 읽으면 되었다.
그걸로 우리가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을 맞추었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싫어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그가 취미생활을 그만두길 바라는 마음은 없었다. 요즘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은 적절한 시간이나 공간 배분을 통해 서로의 취미생활을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비싼 취미라고 해도 무조건 사치라 생각하기보다, 우리의 능력 내에서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세대다.
그런데 문제는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혹은 얼마나 많은 돈을 쓸 수 있느냐 같은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취미생활에 몰입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터졌다.
몇 달 전,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의논해 왔다. 바로 이직하지 않고 몇 달 동안은 쉬면서 재충전 기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의 휴식에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는 맞벌이로 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지만, 그의 퇴직금과 나의 수입만으로도 몇 달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섰다.
매일 아침 출퇴근하느라 고생했으니 푹 쉬라고 선뜻 말했고, 그는 얼마 후 퇴사를 했다. 그리고 한이라도 맺힌 듯 눈 떴을 때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리를 비운 채 하고 싶은 것만 온종일 하며 쉬고 싶은 기분을 왜 모르겠는가. 물론 그 ‘아무것도’에 나와 밥을 먹거나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운했고,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 그를 존중해보려 노력했다.
그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는 것은 그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게임 그만 좀 해’라고 말하는 아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우리는 각자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한 성인이기에, 나는 그에게 무슨 이유로든 잔소리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내가 우리 집안의 책임자가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정의 컨트롤타워가 되어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체크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구성원을 등 떠미는 것이 바로 ‘잔소리하는 사람’의 역할이다.
잔소리를 듣는 사람이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지만, 사실 듣는 사람 쪽은 여태껏 20년가량 해오던 일을 여전히 지속하면 될 뿐이다. 즉, 결혼 후에도 여전히 엄마 밑에서 크던 자식 역할을 하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누가 시키는 일만 할 수 없이 수행하면서 입으로 불평하는 것은 쉽고 간단하다. 내 자식도 아닌, 다 큰 배우자를 훈계하고 달래고 채찍질해서 가정의 균형이 잡히도록 만드는 역할이 훨씬 골치 아픈 일이다.
그리고 그 골치 아픈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어른이었다. 배우자가 여전히 어린 자식으로 남아 있고 싶어 할 때, 상대방은 반 강제로 어른이 되어 주로 그의 '엄마'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야 한다. 적성에 맞는 사람이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지만, 누군들 결혼을 통해 배우자의 부모가 되고 싶을 리가 있을까? 내가 왜 굳이 나의 에너지를 들여 다 큰 남편을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길로 이끌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런다고 누가 고마워하는 것도 아닌데. 알아서 하겠지, 그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기다리려고 노력했다.
게임하는 남편에게 화를 낸 이유
내가 차라리 출근이라도 하면 나을 텐데, 나는 프리랜서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 남편이 게임하는 모습을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카페에 가서 일을 하고 돌아와도 여전히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 그를 발견하는 일이 지속되자 슬슬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결국 그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같이 카페에서 마주앉아 ‘네가 일을 쉬는 기간 동안, 나와 함께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적어도 예전처럼 저녁 시간을 함께하고 평소와 비슷한 가정 내 역할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동의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카페에서 나와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은 뒤, 남편은 또 잠들기 전까지 3시간 넘게 게임을 이어 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바로 2차 회동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대화가 아니라 선언이었다.
저놈의 게임기, 갖다버려!
내가 결혼하고 남편의 취미생활을 못 하게 막거나 화를 내는 아내가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애초에 그럴 필요가 있을지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화를 내는 한편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함께 밀려왔다. 그의 자유를 속박하는 아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는 자조적인 마음과, 이렇게 혼자 게임하며 살고 싶었으면 왜 결혼했느냐는 허탈한 마음이 함께 밀려들었다.
게임에 대해 한참 옥신각신했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그가 “그래서, 정말 버려?”라고 시무룩하게 물었으나 게임기를 버린다고 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게임 그 자체가 아니었다. 자꾸 요점에서 멀어지는 말다툼을 하면서 나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점차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내 바람을 가뿐히 무시하고, 나와의 공동생활 역시 내팽개쳐둔 채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상태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가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자신의 자리를 무책임하게 비워놓을 때, 그래서 우리의 관계의 균형이 위태로워질 때, 그리고 결혼을 통해 만든 우리의 공동생활이 그만큼 그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거나 소홀해질 때, 즉 나와의 결혼을 통한 수많은 약속이 그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때 나는 게임하는 남편을 미워하게 되었다. 적어도 그가 게임에 몰입해 나와의 관계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지는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공동생활을 위한 양보와 배려
나는 남편에게 '우리의 생활을 위한 시간과 게임을 하는 시간을 명확하게 분리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고, 어쨌거나 그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해줬다. 차라리 따로 PC방에서 몇 시간이든 충분히 게임을 하고 돌아와 집에서는 그 외의 일상을 보내는 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또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니 나름대로의 생활 패턴을 찾아 게임하는 시간도 이전 수준 정도로 안정화(?)됐다.
결혼과 취미 생활 그 자체가 병행 불가능한 요소일 리 없다. 다만 결혼 후에는 개인의 분리된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이 공간적 경계로 또렷이 나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한 사람의 취미 생활이 가계의 금전적인 무리를 요구한다면, 혹은 집안일에서 역할의 불균형이 발생하거나 감정적인 고립을 불러온다면 우리의 가정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부부싸움 과정에서 우리가 정확히 어떤 지점에 불만이 생긴 것인지 깨닫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단지 게임을 그만두는 것이 우리의 다툼을 깨끗하게 해결하는 열쇠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막기 위해 금기를 두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것보다는, 그 마음이 왜 발생했는지 들여다보면 해결책은 의외로 다른 곳에서 나올 수도 있다.
상대에게 나와 다른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두 사람 모두 불편하지 않은 곳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에 필요한 노력'의 핵심은 사실 각자의 부모님에게 어떤 며느리와 사위가 되느냐가 아니라, 이처럼 두 사람의 다름을 한 가정 내에서 얼마나 세심하게 조율해 가느냐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