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곤 Jun 25. 2019

부모님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이유

검증되지 않은 길이라 해도 선택은 우리의 몫 

지금의 20대가 주변의 ‘꼰대’를 피하고 싶은 세대라면, 이제 직장에서 어느 정도 신입 티를 벗고 연차가 쌓인 30대는 ‘커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약간은 노력이 필요한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혼자 일하다 보니 부대끼는 직장 선후배가 없지만, 30대 또래 친구들은 최근 스스로의 ‘꼰대 발언’을 경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얼마 전에도 친구 한 명이 직장 후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신입 후배에게 할 뻔한 말을 겨우 참았다고 고백했다.   


“나도 모르게 ‘회사가 학교인 줄 알아?’라고 할 뻔했잖아. 깜짝 놀랐어. 이렇게 꼰대가 되는 건가?”      


불과 서너 해 차이가 나는 신입을 봐도 ‘나 때는 이랬다’ 싶고, 내가 걸었던 좋은 길로 인도해 주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하다. 그러니 최소 20년은 앞서 걷고 계신 부모님 세대가 보는 청년 세대는 얼마나 어리고, 중요한 것을 잘 모르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일까. 세대 갈등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왜 순리를 따르지 않느냐는 물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열심히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에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단계라고 배웠다. 실제로 우리 부모님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아오셨고, 나 역시 어느 시기까지는 남들이 다 사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정답’에 대하 압박감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청년들이 각자의 행복을 추구한다. 좋든 싫든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행복해지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하는 세대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꼭 결혼을 하거나 아기를 낳지 않아도, 꼭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며 자신이 선택한 길을 스스로 더듬어 나아간다.      


이미 겪어본 어른들이 보기에는 불안정하고, 실패 확률이 높은 삶일지도 모른다. 나는 재작년쯤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책을 펴내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독자 분들이 또 내게 의견을 나누어 주셨는데, 그중 의문을 제기하셨던 메일이 하나 기억에 남는다.    

  

“과연 꽃만 피우고 씨앗은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 옳은 생각일까요? 씨앗을 남기는 동안 비바람과 병충해를 견디는 것이 무서워서, 단지 꽃만 당당하게 피울 뿐 내가 꽃 피우는 데 일조하신 선배님들의 노력은 내 행복과 맞바꾸지 않겠다는 건가요? 어여쁜 손주를 보고 손주 자랑을 하고 싶은 부모님의 행복은 내 행복 앞에서 다 무시되어야만 하는 것인가요?”     


우리 부모님과 연배가 비슷하셨던 이 독자 분은 내가 ‘순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지 물으셨다. 나도 다시 한 번 이 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태어났으면 다시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나무가 열매를 맺듯 세상을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순리일까?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이기적인 일일까.      


실제로 엄마도 내게 아기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한다. 엄마가 경험해 보니,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진 일이기 때문이란다. 인생의 큰 행복을 놓칠까봐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아기를 낳는 것이 가족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살아온 방식과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미래를 바탕으로 부모님과는 또 다른, 새로운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순리를 따라 살면 안 되느냐 묻는 어른들에게 나는 매번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내 앞에는 결혼해서 아기를 키우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선택지들이 있어. 아기를 낳는 것과 낳지 않는 것 중에서 딱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데, 무엇이 더 좋은 삶인지는 내가 살아봐야 후회를 안 할 것 같아.”      



강요보다는 소통이 필요하다      


‘결혼’은 특히 오래된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며 전통적 의무를 부여하는 요소가 많은 단계다. 서로와의 관계에 집중했던 평범한 연인들은 결혼의 관문을 거치며 갑자기 아내, 남편, 며느리, 사위, 부모 등의 새로운 역할을 배우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 후 갑자기 며느리의 역할을 부여받은 내가 당황했던 것만큼이나 며느리에 대한 당연한 기대치를 지니고 있던 시부모님도 당황하셨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당연히 제사 지내는 것도 배우고, 싹싹하게 애교도 부리리라 생각했던 며느리가 제사도 지내지 않겠다고 하고, 아기도 낳지 않겠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물론 아기 문제는 결혼 전부터 남편과 합의하여 말씀드렸지만, 설마 하셨던 것 같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결혼 후의 삶과 내가 생각하는 결혼 생활은 너무 달랐다. 어른들은 결혼했으면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힘든 게 많겠지만 참고 맞추어야 한다고 내게 조언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서로의 가족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으며,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한 역할을 결혼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의 의무는 물론 가족의 테두리에 대한 개념마저 다른 부모님들과 우리 부부가 어느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옳을까? 


기존의 가부장적 방식대로는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평등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설명하면, 시아버지는 어쨌든 전통은 소중한 것이며 지켜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서로가 옳다고 믿는 지점이 달라 결국 ‘누가 뭐라 하든 각자 제 길을 가자’고 이야기를 마무리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또 비슷한 문제로 가벼운 실랑이를 하다가 시아버지의 말을 듣고 우리가 서로 가야 할 방향을 조금은 가늠하게 된 것 같다. 


“너희에게 어른들이 겪고 깨달은 것들을 말해주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나는 기성세대의 입장을 계속 말해주는 것이고, 그걸 받아들일지 그러지 않을지는 너희들의 몫이다.”      


단순한 강요나 잔소리가 아니라, 먼저 경험한 길이기에 뒤에 따라오는 세대에게 내가 옳다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전하고픈 마음이라 생각하니 아버님의 말씀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눈에 불평등한 전통일지라도 부모님이 느끼기에 긍정적인 기능도 있었을 것이다. 그 경험과 지혜는 틀림없이 값진 것이리라.      


다만 모든 사람의 인생 전반을 꿰뚫는 완벽한 정답이 없는 이상, 모든 전통은 새로운 세대가 그저 '참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경험을 감사히 전해 듣되 받아들여 뒤를 따를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갈지는 아버님의 말씀처럼 결국 각자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부모님이 이미 걷거나 경험한 길은 검증되어 안전할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에 가까워지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내 마음이 원하는 길을 가고 싶고, 그 길에서 그간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조차 어디까지나 내가 살아가기에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니까. 


나 역시도 어느 순간 다음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이 낯선 기성세대가 돼 있을 것이다. 그때 나도 다음 세대가 필요로 하는 경험담을 전해 주되 강요하지 않는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다음 세대에는 조금 더 자유로운 선택과 다양한 정답들이 자연스레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