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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Feb 03. 2017

고양이를 길들여간다는 것

임보일기(5) 천천히 그리고 다정히 

우리 집으로 임보를 왔던 남매 고양이 중 봄이가 먼저 입양을 갔고, 이후 한 달이 넘게 나리는 우리 집에 남아 있었다. 그새 콧등와 뒷다리에 있던 피부병 자리는 깨끗하게 나아 털이 자랐고, 비로소 온몸이 고르게 예쁜 황금빛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환경 변화가 잦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타고 난 성격이 그런지, 나리는 내가 만나본 고양이 중에서 제일 소심했다. 처음 한동안은 소파나 침대 밑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 안 보여야 나와서 놀았고, 쓰다듬으려고 손을 내밀면 도망가려는 태세를 하다가도 막상 손이 닿으면 도망도 못 가고 꼬리를 말았다. 


하지만 집고양이라면 언젠가는 경계가 풀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해 가능한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애썼다. 위협이 없는 환경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안심시켜주면 팽팽하게 당겨진 마음도 느슨하게 풀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봄이가 먼저 입양을 가고 나서 ‘냐아앙 냐아앙-’ 울며 봄이를 찾는 듯하던 나리는 정말로 조금씩 나를 의지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자다가 문득 깨보면 내 팔을 베고 자고 있는 게 제이가 아니라 나리인 날도 있었고, 바닥에 누워 있다가 내가 왔다갔다 넘어 다녀도 예전처럼 휙 도망가지 않고 눈만 깜박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 작은 동물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분, 그건 정말 묘하고 반짝반짝한 경험이었다. 처음부터 사람을 따르고 겁내지 않는 고양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리처럼 일단 경계하고 도망치고 보는 고양이들도 있는데,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나리는 나를 익숙하게 느끼고 받아들여 주었다. 그러고 나니 나리는 세상에서 가장 소심한 고양이에서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순한 고양이가 됐다. 품에 안으면 가만히 안겨 있고, 배를 만져주면 손을 핥았고, 가끔 귀찮으면 무는 척은 해도 절대 진짜로 무는 법은 없었다.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나는 나리를 길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나리가 나를 길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길들인다는 것은 수많은 여우 중 특별한 한 마리가 되는 것이고,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일이다. 



세상에 이렇게 순한 고양이가 다 있나, 하고 난 내심 감탄했다. 그러다 하루는 친한 동생이 집에 놀러오겠다고 하여, 나는 나리를 자랑하고 이참에 입양까지 권해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집에 초인종이 눌리는 순간 나리는 후다닥 뛰어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더니, 딱 한 번 빼꼼 얼굴만 내밀어 쳐다보고는 두 번 다시 거실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안방에 들어가 살포시 안아 나오자 그때까진 가만히 있다가, 낯선 손님 얼굴을 보고는 다시 발버둥을 쳐 안방으로 숨어버렸다. 


완전한 집고양이가 다 돼서 어딜 가든 잘 지내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에서 익숙해졌을 뿐이지 낯을 가리는 건 여전했다. 이때부터 다시 입양에 대한 걱정이 시작됐다. 새로운 집에 가더라도 결국 적응은 하겠지만… 차곡차곡 쌓아온 우리의 시간이 아쉽고 애틋했다. 이미 나랑 이렇게 가까워졌는데, 그 신뢰에 보답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지는 것이었다. 


사실은 겁도 덜컥 났다. 입양처를 찾을 때까지 잠시 데리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마음을 다 주고받으면 나리가 막상 입양되었을 때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까? 기껏 안심하고 마음 편히 지내고 있었는데 또 뜬금없이 환경이 바뀌게 될 나리에게 너무 미안한 일 아닐까? 입양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 내심 입양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우리가 키우면 좋겠다… 그치?' 하면서 신랑 눈치를 슬쩍 봤다. 나도 키우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돈독해진 사이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마음이 쓰인다고 모든 고양이를 다 거둘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결국 나리를 입양하고 싶다는 가족이 나타났다. 우리 집처럼 잠시 머물러가는 곳이 아니라 정말 가족을 만나는 일이라 고맙고 기뻤지만, 처음 한동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어 있을 나리의 모습이 그려져 걱정스럽기도 했다. 나리가 가게 된 집은 고양이를 처음 키운다고 해서 A4 한 장 반에 빼곡하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소심한 고양이라서 더 기뻤던 친해지는 단계의 희열을 나리의 새 가족도 차근차근 느낄 수 있기를. 


정해진 헤어짐이 아쉽지만 그래도 나와 보낸 시간이 나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되었기를 바랐다. 길들임의 과정을 우리는 한 번 겪어보았으니, 그 다음은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마지막 밤에, 나리의 황금빛 털을 쓰다듬으며 응원의 마음을 듬뿍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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