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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Apr 19. 2017

누구, 이 봄병아리의 여름에 관심 있으세요?

병아리를 팝니다 

요 며칠 내 비가 오고 우중충하더니 모처럼 반짝 해가 났다. 반가운 마음에 살랑살랑 집 밖을 나서는데 매일 지나다니는 꽃집 앞에 웬 몽글몽글한 털 뭉치들이 보인다. 자그마한 철장 안에 들어 있는 노란 병아리들, 그리고 토끼 몇 마리였다. 


지금도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때는 봄만 되면 병아리를 쉽게 살 수 있었다. 개나리처럼 노란 병아리들이 상자 안에서 삐약거리고, 그걸 보면 나는 매번 엄마에게 용돈을 받아 병아리를 사왔다. 처음에는 분명 건강해 보였는데 며칠만 지나면 시들시들 힘이 없어지는 병아리가 가엾어서 나는 어미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면 병아리가 잠깐 눈을 반짝 뜨는 것도 같았다. 개중에는 닭까지 자란 병아리도 있었지만 며칠 되지 않아 금방 죽어버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때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고 또 금방 죽어버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자랐을까? 그 짧은 이별이 매번 속상했다는 것밖에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라면서 점점 ‘병아리 팔아요’가 얼마나 쉽고 무책임한 말인지 알게 됐다. 병아리를 잘 키우는 방법을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는데도 어른들은 나에게 병아리를 팔았다.



지금도 가끔 아이들이 마트에서 ‘강아지 사 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본다. 실제로 돈을 주고 동물을 살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먹을 것이나 물건을 사는 일과는 다르다는 걸 아이들은 충분히 알고 있을까? 물론 '산다'는 말 자체는 그게 익숙한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산' 것을 다른 것들처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곤란한 것이다. 언어에는 힘이 있는 법이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노파심에 그렇게 팔리는 동물들의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지곤 했다. 


오늘도 꽃집 옆에서 ‘병아리 있을 때 구입하세요’라는 종이 푯말과 짹짹이는 병아리들을 보고 있자니, 아무도 이 병아리들의 생명 유지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하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부모님들은 이미 병아리들이 얼마나 빨리 죽는지 알기 때문에 얼마나 살지 큰 기대가 없을 테고, 아이들은 병아리를 죽지 않게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를 테니……. 더구나 이 병아리들은 애초에 오래 살 수 없는 건강 상태일 수도 있고, 또 이 아파트 단지에서 누군가 병아리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리라는 기대를 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나조차 잠시 병아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냥 그러고 말았다. 병아리들을 지나쳐 걸어가면서, 나 역시 이 병아리들의 생명을 체념했다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묵직해졌다.


지금은 병아리 노점상이 아마도 불법이 되어 길에서 병아리를 파는 곳이 내가 어릴 때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 같긴 하지만, 동물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원칙과 규제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동물을 키우기 위한 교육을 이수하는 것도 최소한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생명들이 아무런 보호 없이 가볍게 취급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꽃집에서 팔리던 그 봄병아리들은 과연 봄을 넘기고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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