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려는 나에게 보낸 어른의 조언
지금은 자존심과 자존감을 헷갈리지 않을 만큼은 자랐지만, 성인이 되는 동안 나를 키운 것은 칠 할 정도는 자존심이었다. 무턱대고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 멋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때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능력치는 부족한데 자존심만 높은 건 훨씬 더 부끄러운 일이었다.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할까. 스무 살이 넘어 성인은 되었지만 아직 사회에 뛰어들지 않았던 불안한 대학생 시절, 자존심과 자존감 그 어디쯤에서 나는 오락가락하며 애쓰고 있었다. 그땐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던 청춘의 시작점이었다. 돌이켜보면 분명 가능성으로 충만한 지점이었으나, 어른들은 당시의 내 나이와 상황에 대해 나보다도 더 조급하게 굴었다. 내가 운이 나빴던 것일지 모르겠지만, 어찌 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즈음, 불필요한 기성세대의 오지랖이 얼마나 젊은 세대의 앞날을 울적하게 만드는지 억지로 배워야 했던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때 아마 나는 졸업반이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심각한 선택인 줄 알았던 스무 살을 지나, 대학은 아무 것도 아니었으며 내 앞에는 시야가 좀 답답한 여러 갈래의 길이 또 놓여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때였다. 멀리 보이지 않아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와중에 어디가 덜 나쁜 길인지 찾아야 했다. 친구들과 술을 먹어도 예전 같지 않아서, ‘무조건 마시고 즐기다 죽자!’가 아니라 ‘누구는 취업했고 누구는 교수님 추천을 받았다더라’, ‘우리는 뭐 먹고 살지?’ 하다가 그 형체 모를 묵직한 짐을 짊어진 채 취하곤 했다.
다만, 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체념하거나 포기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내내 친구들과 최선을 다해 노느라 대외활동이니, 자격증이니 취업 준비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멋진 직장 생활을 해내리라는 소박한 꿈은 있었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정식 직장,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성과와 보람이 있는 일을 하리라는 목표가 있었다. 그 희망이 설사 사회에 들어서면 꺾이고 짓밟힐지라도, 꿈도 꿔보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른들이 만든 학교의 틀에 갇혀 지내다 이제 막 스스로 어른이 되려는 참인데.
4학년 때는 들어야 하는 학점이 많지 않아 학교에 자주 가지 않는 한편, 당시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지나가는 듯 대수롭지 않은 투로 슬쩍 말했다.
“아까 고모한테 전화 왔었는데, 너 간호학원 보내보라고 하더라. 취업 잘 된다고.”
그게 뭔 뜬금없는 소리야? 하고 그냥 넘겼는데, 곱씹어볼수록 기분이 오묘했다.
나는 국문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좋아하는 순수문학으로 밥벌이까지 하겠다는 큰 뜻이야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간호라니? 나는 누굴 보살피는 것에 재능도 관심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간호학원이 뭐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내 관심사의 울타리 안에 단 한 번도 포함된 적 없는 분야였다는 뜻이다. 하긴, 우리 집은 명절 때도 친척들이 모이지 않는 편이라 일 년에 한 번도 얼굴을 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고모가 나에게 그런 조언을 한 것에 내 적성이나 취향이 고려되어 있었을 리 만무했다.
졸업을 앞두고 사회에 나갈 즈음, 아마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쪽에서는 내 길이기에 나름대로 치열하고 절실한데, 게다가 엄마도 내색하진 않아도 아마 엄마대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있었을 텐데, 남의 일이라고 그런 무성의한 조언을 던져도 되는 걸까. 그 세상에서 나는 꿈을 꾸고 원하는 길을 찾아 걷는 한 명의 주체가 아니라, 그냥 '밥벌이'나 할 수 있을까 싶어 걱정인 사회 구성원 중 하나였다. 그래,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그냥 무슨 일이든 밥벌이나 하다가 시집 가면 그만인 삶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시작도 해보지 않고 판단을 당한 것 같아 화가 나기보다는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게다가 이렇다 하게 대꾸할 것이 없어 더 자존심이 상했다. 준비하고 있는 것도, 예정되어 있는 것도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나는 더 오기가 생겨서 귀를 막았다. 조언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았고, 걱정이나 염려도 필요 없었다. 망해도 내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최초로 맞닥뜨린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가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졸업식도 하기 전에 어떻게든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한 마음으로 잡은 직장이라 결과적으로는 대실패였다. 재미도 없고 돈도 적고 이 분야에서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지 않았다. 관심사와 직업적인 접근은 다르다는 걸 배울 수 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불과 6개월 만에 그만둔 당시 직장 경험이 아니었다면 ‘직업적으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도 없었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대학교 졸업반 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또 그 고비만 지나면 결정되는 것인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선택의 갈래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있었고, 내 앞에는 몇 번이나 나를 탐구하고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들이 놓여 있었다. 급한 마음에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여 ‘취업이 잘 되는 아무 직업’이나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직장 동료가 혼전 임신을 하자 여주인공이 ‘잠깐만. 그 얘기는 안 들을게. 미안’ 하고 거리를 두는 장면이 나온다. 사생활을 알아봤자 좋을 것 없으며, 괜한 말을 했다가는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는 것이 이유였다. 남주인공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대해 한숨을 쉬며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나는 응원할게’라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입장에도 공감했다. 어차피 자기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건 자신뿐이고, 게다가 아기를 낳든, 그렇지 않든, 어느 선택을 지지할 수도 없을 뿐더러 어느 쪽에 무게를 실어주었다가는 그 후에 찾아오는 무거운 감정은 또 어떻게 나누어 감당한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남의 인생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지랖을 부리는 건 더더욱 질색이다.
하지만 이 어딘가 쯤에 적절한 오지랖의 경계가 놓여 있는 것 같다. 따뜻한 응원과 오지랖의 차이는 그 한 끗의 선을 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에 대해 그려나가는 흐름에 따르자면 나 역시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결국 인생을 오롯이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며,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외롭다는 것을 나도 시간에게서 배웠다. 남의 삶에 일일이 훈수를 둘 필요는 없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관계의 쉬운 원칙을 이해하되, 무심코 선을 훌쩍 넘어 내 생각으로 그의 생각을 덮어버리지 않는 것이 오지랖의 핵심인 것 같다.
어쨌든 생뚱맞게 나에게 간호학원을 제안했던 당시의 조언 탓에, 나는 결코 ‘나와 상관없는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앞으로 누구의 삶에 끼어들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적어도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를 물어보는 예의를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른의 자격과 조언의 기준은 그 정도의 예의와 관계 있는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