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의무가 되는 세상
아이유가 신곡 '팔레트'를 들고 나왔을 때,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아이유의 가사도 좋았지만 랩 피처링을 맡은 GD의 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GD가 나랑 동갑인 줄 이때 처음 알았다.
지은아 오빠는 말이야 지금 막 서른인데,
나는 절대로 아니야 근데 막 어른이 돼
아직도 한참 멀었는데
너보다 다섯 살밖에 안 먹었는데
가사 중에서 가장 신선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너보다 다섯 살밖에 안 먹었는데'였다. 이상하게 '나 너보다 다섯 살밖에 안 많아'라는 말은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다섯 살이나 많아'는 접해 봤어도.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며 나이의 무게가 어릴 때와는 조금 달라졌다. 한 살만 늘어나도 사회가 안겨주는 부담감은 두세 배가 무거워졌다.
어른이 되는 시점은 각자에겐 모두 다르겠지만 사회에 나오는 순간 우리는 다들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나는 아직 어리다는 말은 많은 경우 자신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되거나, 현실의 어려움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치기가 된다.
그 뒤 아이유가 스스로 개사해 부른 랩 가사는 더 인상적이었다.
지은아 뛰어야 해 시간은 안 기다려 준대
치열하게 일하되 틈틈이 행복도 해야 돼
스물 다섯 아이유와 서른 살 GD의 나지막한 고민이 겹쳐지는 듯했다. 우리는 무엇에 쫓기는 걸까. 서른 살에 어른으로 등 떠밀리고, 스물 다섯에 치열하게 뛰어야 하는 삶에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틈틈이 행복도 해야' 한다.
당시 아이유의 센스 있는 랩 가사에 대해 칭찬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에서는 이 가사에 대해 '열심히 일하며 행복도 놓치지 않는 청춘'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실소를 했다. 내가 아이유는 아니지만 그 가사는 그런 뜻이 아닐 것이다. 말 그대로, 치열하게 일하는 와중에 '틈틈이 행복까지 놓치지 않아야 하는 삶'이 그만큼 빡세다(?)는 뜻이리라.
말하자면 행복도 의무이자 경쟁이라는 것이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행복까지 챙기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행복은 누구나 한 토막쯤 지녀야 하는 액세서리 같은 요소가 되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때로는 치장을 위한 도구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행복을 의심하지 않는가. SNS에는 삶의 아름다운 부분만 공유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고, 그 한 컷에서 보이는 행복을 우리는 믿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불행을 드러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운하다고 믿는 '중2'가 아니기에.
그래서 종종 헷갈리게 되었다. 나는 꼭 행복해야 할까? 서른살이라는 나이에, 결혼이라는 선택에, 하고 싶었던 직업에 대해 만족해야 할까? 모두가 약간씩은 챙겨 들고 있는 행복의 경험에서 박탈되지 않기 위해 행복해져야 하는 건 아닐까?
권리가 의무로 바뀌는 순간 모든 것이 피곤해진다. 요즘에는 행복조차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