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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Aug 30. 2017

효리네 민박이 아니라서 미안한 집사라면

게으른 고양이가 행복한 건 아니다

요즘 신랑과 나는 우리에게도 일종의 '안식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7년에 한 번씩 1년 동안 일하지 않고 바다 소리 들리는 조용한 집에서 차 마시며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날들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참 좋겠다. 한 달만 일하지 않아도 당장 월세 내기도 곤란한 지금으로서는 말 그대로 꿈 같은 얘기다. 요즘, 제주도의 마당 있는 집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예능 '효리네 민박'을 보면 그 정경이 참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마당 있는 집에서의 삶은 나를 위한 것보다는 내 동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는 원래 하루에 16시간씩은 잔다고 하지만, 가뜩이나 더웠던 올 여름 축축 늘어져 자는 모습을 보면 역시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들곤 했다. 나도 꽤 집순이라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늘 똑같은 공간에 똑같은 일상이 단조롭게 반복되면 역시 지루해진다. 가끔 어디든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기분 전환이 되는데, 고양이들은 외출을 시킬 수도 없으니 정말 심심하지 않을까?


시골에서는 집을 슬쩍 빠져나와 동네 마실을 돌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고양이들이 제법 있지만, 도심에서는 집 밖으로 나가면 온통 위험요소뿐이다. 아파트단지 앞이 바로 찻길인 데다가, 여기나 저기나 아스팔트 바닥뿐이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언제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 사실상 외출냥이로 사는 것이 불가능한 도시 생활이다 보니, 내 고양이들에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10평 남짓한 작은 집이 허용된 세상의 전부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고양이의 먹거리만큼이나 장난감과 놀이 시간에 대해 최대한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강아지처럼 산책도 나가지 않는 고양이들이 매일 정적인 집안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독립적일지 모르지만, 강아지만큼 사람의 애정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다. 집사가 무관심하면 아프거나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정말이다). 내 고양이의 삶의 질, 집사로서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효리네 민박 인스타그램

   

동물들도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때 더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항상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반려동물의 삶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동물원처럼 제한된 공간에 있는 동물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행동풍부화’라는 것이 있다. 항상 잠만 자고, 밤이 되어야 돌아오는 집사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동과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조금의 성의만 들일 수 있다면 의외로 간단하다. 한마디로 지루하지 않도록 놀 거리를 늘려주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마냥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여러 가지 소품이나 소소한 환경 변화를 통해 자극을 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고양이에게 활동적인 요인으로 제일 좋은 건 역시 '사냥 놀이'다. 하루에 단 10분, 20분이라도 집사와 놀이 시간을 갖는 것이 고양이들에게는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고 한다. 새로운 자극을 줄 만한 장난감을 구비하자면 물론 쇼핑만 한 게 없지만(?), 고양이 장난감은 아무리 사도 어차피 일정 기간이 지나면 흥미가 떨어지게 된다. 대신 고양이들은 같은 물건이라도 장소를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활용도가 달라진다. 잘 쓰지 않는 스크래처가 있다면 자리를 옮겨 보거나, 싫증 난 장난감을 서랍에 넣어뒀다가 2주쯤 후에 다시 꺼내 흔들어보면 또 새로운 마음으로 격렬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숨겨 두고 몇 개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것이 포인트다.


우리 집에서는 창문에 다는 해먹이나 캣터널을 이용해 환경을 소소하게 바꿔주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곳인 냉장고 위도 잘 닦아준다. 캣타워처럼 부피도 크고 값도 비싼 것을 늘 바꿔줄 수는 없지만, 고양이들이 오르내리거나 구멍을 통해 몸을 통과할 수 있는 환경은 작은 소품만으로도 새롭게 조성해줄 수가 있다. 캣터널은 비닐 재질이 많아 인테리어를 해친다는 큰 단점이 있는데, 요즘 고양이 시장이 커진 만큼 잘 찾아보면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디자인도 보이는 것 같다.     


캣터널 속 제이


더불어 식물 키우는 데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 나는 집안에 화분을 아예 안 들여 놓는데, 야생에서의 고양이들은 소화를 위해 풀을 뜯어 먹기도 했다기에 혹 취향 저격이 될까 싶어 캣글라스도 들여 보았다. 캣글라스는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식물인데, 씨앗으로 사서 키울 수도 있지만 그건 자신이 없어서 이미 자란 것으로 골랐다. 하지만 두 마리 모두 관심이 없어 시들어 죽고 말았다…… 고양이 용품이란 복불복이니 어쩔 수 없다.     


그 외에도 벽에 달 수 있는 구름다리나 유리 해먹, 자동으로 움직이는 장난감 등 고양이의 흥미를 끌 수 있을 만한 아이템은 점점 더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아예 집을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과 공유하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꾸미는 인테리어도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다.


다행히 고양이들은 공간을 수평적으로 인식하기보다 수직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오르내릴 수 있는 환경이라면 평수는 조금 좁아도 괜찮다고 한다. 물론 효리네 민박처럼 오르내릴 수 있는 나무가 몇십 그루 심어져 있는 마당과는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택배 상자나 머리 묶는 끈, 20원짜리 비닐 봉투만 있어도 즐거워해주는 고양이들이니, 그들의 생활이 더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사인 내가 더 부지런해지는 게 중요할 것은 분명하다. 내 집, 나와의 생활이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내 고양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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