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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Oct 28. 2017

당신의 세상은 혐오에서 안전한가요?

반려인을 향한 혐오의 시선, 왠지 익숙하다

최근 일 때문에 만난 한 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은 제 강아지가 프렌치 불독이거든요. 산책하러 나가기도 눈치가 보이고……. 제가 만약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여성이자 맘충, 거기에 강아지 키우는 것까지 온갖 눈총은 다 받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녀의 고민에 고개가 끄덕여진 것은 현재 최시원의 '개물림 사건'에 대한 논란이 '반려인 혹은 반려견 자체에 대한 펫 포비아'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강아지 목줄을 착용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반려인의 잘못이며, 자신의 강아지에 대한 관리의 책임이 있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아지에게 물렸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춰 강아지에 대한 혐오 감정을 과잉되게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내 개에 대해서 완벽하게 안다고 장담하면 안 된다. 아무리 순한 개라도 뜻밖의 상황에 닥치면 누구를 물 수 있고, 아무리 겁쟁이 고양이도 현관문을 열어 놓으면 집을 나갈 수 있다. 내 강아지는 조그만 요크셔테리어였지만 누군가 다가와서 만지려고 하면 항상 목줄부터 짧게 잡았다. 강아지가 귀엽다고 다가오는 사람들은 긴장하지 않는다. 긴장해야 하는 건 혹시나 사고가 났을 경우 무조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나였다. 그 사람이 개를 만질 줄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딱 보면 안다. 하지만 상대방이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되도록 웃으며 답했다. 예뻐해 주면 고맙지만, 모든 사람이 내 개를 예뻐해야 한다는 마음? 그런 거 없다. 그냥 조용히 가던 길 가면 그만이다. 


개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기를 못 죽이는데, 모기의 시체를 보는 것조차 싫을 정도로 벌레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모기 입장에서는 네가 더 무서워’라는 핀잔이다. 그걸 몰라서 무서워하는 게 아닌데, 그냥 뱃속 저 깊은 곳에서 공포와 혐오가 올라오는 걸 어쩌란 말인가. 개에 대한 공포심을 가진 사람에게 ‘우리 개는 안 무니까 괜찮아요’ 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 다른 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그들의 공포를 방조하는 태도는 심각한 문제다. 


이번 ‘개물림 사건’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개의 목줄을 하지 않고 외출했고, 그 개에 물린 사람이 이후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줄 착용은 법으로 규정되어 있고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이 부여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줄 착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개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건 명백한 견주의 잘못이며, 개를 키우는 자격을 강화하든 교육을 시키든 처벌 수위를 높이든 논의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지금 흘러가는 이 분위기, 왠지 익숙하다. 최근 대형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시비가 붙었다는 경험담이 각종 커뮤니티를 달구고 있다. 아기와 강아지가 다정하게 앉아 있는 사진을 보고 이전에는 '귀엽다, 사랑스럽다'고 했으나 이제는 '아찔하다'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이제 반려견을 잘 훈련하고 관리하는 이들도 혹시나 내 강아지가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지 눈치를 봐야 한다. 누구한테 예뻐해 달라한 적도 없는데 자꾸 ‘당신 개는 당신한테나 예쁘다’고 면박을 준다. 이쯤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만으로도 안절부절못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 '맘충'에 대한 시선이 그랬던 것 같다. 




개 물림 사고가 있었다고 하여 모든 개를 잠재적인 맹견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개를 키운다는 사실 자체에 다소 과격한 프레임이 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는 게 맞다. 중요한 건 그 개를 어떻게 키우느냐 하는 점이다. 


잘 훈련된 안내견의 경우 다른 사람의 유혹이나 위협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의 평소와 다른 불안한 행동이 주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반대로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싸웠을 때 칭찬을 받는 강아지는 공격성이 강화된다. 누군가에게 짖었을 때 반려인이 자신을 안아주거나 토닥이면 강아지는 자신이 옳은 행동을 했다고 인식한다. 사람들은 집안에서 말썽을 피우거나 통제가 잘 안 되는 개들을 '악마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표적인 악마견으로 꼽히는 비글은 운동량이 많아 충분한 산책이 필요한 강아지다. 운동을 시키지 않고 집안에만 갇혀 있으면 스트레스로 사고를 칠 수밖에 없다. 개들은 본능에 의해, 그리고 보호자에 의해 주어진 환경대로, 또 배운 대로 행동한다는 말이다. 결국 동물을 키우려면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도 옳게 가르칠 책임이 있다. 


개물림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펫티켓’이다. 펫과 에티켓이 합쳐진 단어다. 개를 데리고 나갈 때 목줄을 착용하는 것은 물론, 직접 배변을 치워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말이지만, 반대로 사람이 개를 위협하는 상황도 조심해야 한다. 어린 아이에게 ‘개 한번 만져봐’ 하지 말고, 개에게 뛰어와 소리를 지르지 말자. 개를 만지고 싶으면 '만져도 되냐'고 주인에게 물어보자. 사람은 귀여워서 하는 행동이라도 개는 위협으로 느끼고, 본능적으로 방어 혹은 공격을 하려고 할 수 있다. 


그것 역시 일종의 펫티켓인데, ‘사람이 위협을 하는 상황에서도 개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으로 ‘입마개’가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입마개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기가 개에게 마구 달려들어 위협을 하니 내 개가 짖었다’는 댓글에 '아니, 입마개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댓글이 달리는 걸 봤다. 강형욱 훈련사가 입마개 훈련이 필요하다는 언급을 한 걸 보고 엉뚱한 상식이 퍼지고 있다. 모든 개에게 입마개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지, 집 밖을 나가려면 무조건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런 법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은 이제 마치 자연스러운 상식인 것처럼 ‘입마개’ 착용을 하지 않으면 '무개념'이라는 손가락질을 서슴지 않는다. 산책할 때마다 입마개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나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 




개 키우지 말아라, 개 키울 거면 밖에 데리고 나오지 말아라, 강아지 배변 치우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다니 뻔뻔하다……. '개 키우는 모든 사람'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고, 개를 데리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 됐다. 정말 모든 사람이 개를 방조하는가? 최근 3년간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목줄 풀린 강아지를 한 번도 못 봤다면 내가 너무 도덕적인 동네에서만 살아온 걸까? '내가 못 봤으니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몇몇 봤다'가 '전부 그렇다'로 와전되는 과정이 너무 간단한 건 아닐까. 


개를 못 나오게 하면 개는 올바른 환경에서 자랄 수 없다. 개 사고는 늘어날 것이고, 사고 치는 개를 이해할 수 없는 견주의 유기도 늘어나겠지. 애초에 개를 키울 수 없는 사람은 개를 키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책임감 있게 개를 키우는 사람은 눈치 보지 않고 안전하게 산책과 훈련을 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반려동물 백만 시대지만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아직 반려동물에 대한 문화는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다. 반려인들은 자신의 행동이 반려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고, 비반려인들은 다른 사람의 개에게 어떻게 접근하거나 대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어수선한 와중에 많은 개가 스스로는 뭘 잘못했는지 이유도 모른 채 버려진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강아지 키우세요?’ 묻는다면 ‘왜요?’, ‘강아지 싫어하세요?’라고 경계심을 잔뜩 세울 것 같다. 누구든 나에게(어쩌면 약자에게) 혐오의 꼬리표를 붙일 수 있다는 걸 여러 차례에 걸쳐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고 싶지 않다. 서로를 좀 더 배려하고, 좀 더 호의적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멀리 있을까. 


아기와 반려견의 공통점이 있다면 보호자가 그들의 행동을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보호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그 뜻밖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통제하지 못하면 ‘맘충’이 되고, ‘개빠’가 된다. 애를  제대로 케어하지 않으니까 맘충이라고 하는 거라고? 아니다. 그들은 이미 모든 엄마를 '예비 맘충'으로 보고 있다. 손가락질하는 건 간단하다. 세상을 향해서 묻고 싶다. 당신이 속한 그룹은 정말 안전하다고 생각하는가? 



* 이 글은 '제가 쓴' 기사를 인용하여 재구성했습니다.

* 인스타그램 @sogon_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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