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by 세라정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동네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한 동안 소식이 뜸했던 고향의 남자사람친구 K에게서 카톡이 왔다. ‘가슴 아픈 소식 전한다.’ 열어보니 임희철의 부고 소식이었다. 누구라고? 임희철? 보낸 사람 K도 망자인 희철이도 사춘기를 거쳐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친하게 어울렸던 친구였다. 이제 59세, 올해 생일을 맞으면 환갑인 나이들이다. 황망하게 너무 이른 부고장.

그 시절만 해도 남녀공학 없이 남중, 여중, 남고, 여고로 다 성별을 달리해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라 우린 동창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쯤 우리 집이 희철이네와 담 하나를 경계로 바로 옆집으로 이사했고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 자연스레 동갑인 희철이랑은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대단하게도 희철이네는 아들만 6명인 집이었고 어쩌다 그 집을 가게 되면 12개의 눈이 나에게 박히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에게 그 관심은 무척이나 불편한 것이어서 희철이와 나는 주로 양쪽 집의 대문 앞에서 과제를 묻거나 책을 빌리거나 일상의 수다를 나누곤 했다. 특히 형들은 모두 키가 크고 눈썹선이 짙은 보기 드문 미남형이어서 많은 여학생들이 가슴앓이를 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다만 미안하게도 나의 친구 희철이만은 아주 평범한 시골소년 얼굴이었다. 혼자라면 그럭저럭일 것을 이 잘난 미남형들 사이에 서면 어디서 주워온 아이인가, 정말 핏줄이라면 돌연변인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 나는 오히려 잘생기지 않은 희철이가 가장 편안했고 성격도 원만하고 솔직한 편이라 희철이와 K, J, 이렇게 넷이서 자주 어울렸다. 단언컨대 나는 그 이성친구들에게서 여자 친구들과는 또 다른 우정을 선물 받았다고 지금도 감사히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가족들과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대학교로 외국으로 다 각자의 꿈을 따라 흩어졌고 가끔 소식을 주고받고 만나기도 했지만 자연스레 점차 소식은 뜸해졌다.


희철이가 결혼을 했다, 아들 하나 낳고 이혼을 했다, 사업을 하다 어려워졌다 등등 K를 통해 가끔 소식은 들었다. 나도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희철이도 나도 사는 소식은 K에게서 띄엄띄엄 들었지만 왜 그랬을까 서로가 한 번도 통화는 하지 못했다. 40대 초반의 어느 날 희철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다가 내가 주말에 제주 갔다 오는 데 공항에서 가까이 사니까 거기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20여 년 만의 만남이었다. 고향의 옛 친구처럼 설레면서도 막역하고 편한 사이가 있을까. 갑자기 기억이 10대로 소환되었다. 그 풋풋하고 싱그럽던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나른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래, 사는 얘기도 편안하게 나누고 오래 묵었던 기억을 꺼내서 우리 어린 날에 대한 추억을 마음껏 나누고 와야지.


공항 카페에 앉아 기다리는데 한눈에 봐도 희철이가 분명한 ‘아저씨’가 멀리서 걸어왔다.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고서. 나도 일어나 깔깔 소리 내어 웃으며 희철이를 맞으며 말했다.

“야, 진짜 우리 오랜만이다. K한테서 가끔 소식은 들었는데 어떻게 우린 전화 한 번을 안 했지?”

“뭐 사는데 바빠서... 그리고 내가 좀 정신없이 살았어. 후배 찬희랑 결혼한 건 알지? 걔랑 결혼했다가 아들하나 낳고 이혼하고 혼자 살다가 2년 전에 재혼해서 김포에서 산다. 넌 어떻게 사니?”

“응, 나도 아들 딸 낳고 바쁘게 살고 있지. 애들 키우랴 양가 어른들 이제 연로하시잖니, 어른들 챙기랴 남편이랑 같이 운영하는 회사일도 하느라 나도 좀 정신없이 산다.”

“그래, 근데 너 왜 그렇게 피부가 안 좋냐, 얼굴이 정말 나이 들어 보인다.”

나도 알고 있다고. 그 시절 나는 몇 년째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밤부터 아침까지 한 번의 통잠을 자보는 것이 정말 꿈이었다. 두 아이 다 모유 수유를 해서 키웠는데 우유병이 아닌 엄마 젖을 먹이려면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먹성 좋게 태어난 첫째는 밤에 자주 깨서 자주 젖을 먹었는데 그것은 엄마에게는 편안한 잠은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젖을 떼고도 여전히 밤에 자주 깨서 책을 읽거나 블록놀이를 하다가 간식을 먹고 다시 잤다. 세 살 터울의 둘째는 날 때부터 등에서 떼어놓기만 해도 보채는 통에 아예 업고 엎드려 자야 했다. 세 살이 될 때까지 엄마 껌딱지였다가 오빠 따라 갑자기 유치원을 가겠다며 어린 나이에 독립선언을 하는 바람에 드디어 나도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이미 6년 넘게 잠을 설친 게 원인이었던지 한번 자리 잡은 불면증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신경정신과라도 가서 약을 처방 받든 지 했어야 할 것을 그 시절엔 불면증이 치료해야 할 병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낮에 어디서든 쪽잠을 조금 자면 다시 말끔해져서 일을 보거나 운전하고 이동하거나 아이들 돌보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피부가 들고일어나 뾰루지가 앉고 눈두덩에 그늘이 지고 잔주름이 자리 잡았다. 그저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 애들이 잠이 없어서 하룻밤에 여러 번 깨고 그랬거든. 아이 둘 키우느라 거의 6, 7년간 잠을 잘 못 잤더니 다시 정상으로 회복하는 게 좀 어렵네. 밤부터 아침까지 통잠 한 번 자 보는 게 소원이야. 그러니 피부가 엉망이지.”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처음부터 날릴 인사는 아니지 않니? 속으로 눈을 흘기며 마음속에서만 읊조렸다. 그래 풋풋한 추억 꺼내보자고 맘먹고 나왔는데 참아야지. 지금 내 몰골이 그런가 보다. 어른들은 건강하신지, 서로의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결혼생활과 자녀들에 대한 얘기와 덕담이 오갔다. 그땐 그랬지 어린 시절 얘기 좀 꺼내볼까 하는데 희철이가 말했다.

“난 이혼하고 아들은 전처가 맡아 기르고 있어서 몇 년 전 재혼했어. 나보다 12살이 많아.”

“그랬구나. 결혼하는데 어느 쪽이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그게 무슨 대수야. 너가 진짜 사랑했나 보구나. 잘했다. 난 재혼일수록 그 어떤 조건보다도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결혼생활에 변수가 많을수록 사랑이 없으면 힘들 것 같애.”

“맞아. 집안에서 엄청 반대했는데 둘이 도망가다시피 해서 결혼했어. 우리 와이프 정말 이쁘지. 너보다 12살 많은데 피부도 훨씬 더 좋고 날씬하고 예쁘다. 너 정말 피부가 고왔었는데 얼굴도 갸름하니 상큼했었는데, 많이 힘든가 보다.”

그래, 이 자식아! 난 결혼해서 7년간 남편 뒷바라지하랴 애들 둘 키워내느라 힘들어서 이렇게 폭삭 삭았다. 너는 마누라 버리고 자식 버리고 예쁜 새 여자 만나 새 인생 꾸리느라 재미 좋았니? 자세히 보니 너도 완전 아저씨네. 촌스런 셔츠에 이 헐렁한 배 바지는 무엇? 오랜만에 고향친구 만났으면 서로가 덕담 한 광주리는 퍼 놓고 가야 그리움이 남을 거 아냐, 이 무식한 자식아!

“누구나 그때는 다 풋풋하지. 조만간 원래대로 잠 사이클 찾으면 다 좋아질 거야. 여행 끝이라 좀 피곤하다. 오늘은 이만 가고 다음 기회에 보자.”

정작 말은 이렇게 나갔다. Triple A! 이런 왕싸가지에게도 난 왜 좀 더 세게 받아치질 못하는 걸까!

“그래, 나도 와이프랑 저녁 약속 있어서 가야겠다. 난 김포 사니까 언제든 공항 오면 콜 해. 여기가 파킹도 편하고 만나기도 좋아.”

뭐? 내가 너한테 콜 해?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내가 다시 너를 보나 봐라, 이 자식아! 아니, 인간이 뭐 저렇게 나이를 먹었냐. 집으로 오는 길에 내내 분이 안 풀렸다. 그 뒤로 두어 번 임희철의 전화가 울렸다. 나는 받지 않았다. 내가 걸 일은 더더욱 없었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이제 또다시 20여 년이 흘렀다. 부고를 보낸 K에게 전화를 했다. 왜 무슨 지병이 있었냐는 내 질문에 K는 담담히 말했다. 그동안 신장투석을 했었다고. 언제부터였는지 희철이의 그간 생활은 어땠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K와도 문자안부 주고받은 지가 3년이 넘었으니 아마도 그전부터였겠지만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나는 그때의 나의 분함과 악물었던 자신의 맹세를 떠올렸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뭐가 그리 분했을까. 경솔하고 생각 짧은 언사였지만 눈에 흙을 운운할 만큼 희철이는 내게 큰 잘못을 저지른 걸까. 희철이가 내게 연락했을 때 한 번쯤 만나서 마음속으로 외쳤던 욕 몇 마디 해주고 다시 옛 얘기 나누는 고향친구로 남을 순 없었을까.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다시 못 볼 죄가 세상에 얼마나 있다고.


내일 내 친구, 희철이의 눈에 흙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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