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염색을 하지 않는다. 90 넘어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내 기억의 가장 먼 지점에서부터 흰머리였다. 회색 비슷한 머리칼조차 단 한 올도 없이, 곱게 갈아진 쌀뜨물처럼 부드러운 순백의 흰 머리카락이 야무지고 동그랗게 말려 은비녀에 단단히 매여져 있었다. 그보다 4년을 더 사신 친정엄마도 머리숱은 많으셨지만 50대 중반부터 돌아가시는 날까지 염색을 하시지 않았다. DNA보다 무서운 게 없다고 나 역시 40대 초반부터 새치가 나오더니 50에 앞머리의 8할은 흰머리였고 뒤쪽도 반은 흰색이었다. 게다가 무엇 때문인지 내 흰 머리칼은 유난히 반짝이기도 해서 단골 한의원 의사는 갈 때마다 신비롭다, 멋있다, 절대 염색하지 마라 하며 만져보곤 했다.
모두가 내 흰머리에 이렇게 긍정적 찬사를 보내진 않는다. 내가 염색을 버리고 흰머리를 고수한 이래 지금까지도 찬반 논쟁은 끊임이 없다. 심심찮게 토론거리가 돼 주니 모임에 공헌한 바 있으려나, 아니 남의 흰머리 가지고 이리 오래도록 시끄러울 일이야? 물론 나도 한동안 염색을 했다. 유행 따라 다크브라운, 라이트브라운, 브리치도 몇 년 하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손상되는 걸 겪었다. 그나마 천연염색제인 헤나가 낫다기에 그 민망한 자주색에도 불구하고 몇 년간은 그걸 사용하기도 했다. 알레르기는 없었지만 염색하고 돌아서면 한 달도 안 돼 하얗게 뿌리가 올라오면 다시 염색을 해야 했다. 천연이라고 독소가 왜 없겠나, 두피까지 아리고 눈도 나빠진다니 의문이 들었다. 나는 대체 왜, 누구를 위하여 염색을 하나. 가족여론조사 끝에 당신이 원한다면, 엄마가 원한다면이란 ‘떨떠름한 찬성’을 얻은 후 나는 염색약을 버리고 드디어 염색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자유로워졌고 머리카락은 더욱 탄탄해졌지만 이후 모든 모임에서 내 머리는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일곱 살 많은 남편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 흉하다, 80넘은 할머니도 염색한다, 왜 그러고 사느냐, 대한민국에 염색 안 하는 여자가 어디 있냐, 젊은 연예인들이 멋으로 탈색은 해도 중년 여성은 염색 안 하면 더 늙어 보인다, 아니다 잘 어울린다, 멋있다, 개성 있고 자기 주관이 있어 보인다, 등등 일일이 열거하려니 힘들다. 자연머리를 고수한 지 5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간간히 핀잔이 날아온다. 이젠 귀찮아서 간단히 말한다. 알레르기가 심해서요. 없는 병명을 붙여 환자가 된다.
헤어살롱을 바꾸면 디자이너들의 첫인사는 염색을 왜 안 하세요다. 그래 당신이야 업이 그러니까 디자이너로서 두고 볼 수 없는 투철한 직업정신이든 계산 팍팍 돌아가는 영업마인드든 다 이해한다. 단골이 된 지금의 디자이너는 처음부터 달랐다.
“이런 머리를 가지신 분들은 저는 절대 염색 안 권해요. 왜 자기 스타일 고려하지 않고 어머니들은 모두 다 염색을 하시는지 저는 이해가 안 가요.” 심지어 아들 결혼식에 염색하러 갔더니
“아니 어떻게 다시 흰머리로 돌아오시려고, 그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다시 하시려고 염색하세요. 그냥 흰머리로 가시면 어때요? 스타일만 멋있게 하시면 되죠.” 했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염색하시라는 아들의 권유에 나는 새치염색약을 올렸다. 다시 자연머리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주변의 구박이 두 배로 심해졌다. 꾹 참고 버텼다. 거의 1년이 걸렸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흰머리를 가진 사람에 대한 사회전반의 대응태도다. 흰머리는 우리 사회에서 퇴임자, 무능력자, 어리바리 할머니라는 선입견을 씌우며 시작되는 대인관계다. 질문으로 시작하면 무시가 깔린 답변이 나온다. 거기에 어쩌다 옷이라도 허름하게 입어보라지! 대화가 오가고 상대방의 수준에 밀리지 않을 때 혹은 그보다 전문용어를 섞어서 제압하거나 난이도 높은 언어로 질문을 던질 때 눈빛이 변하고 말투가 바뀐다. 이건 내가 은행이나 관공서 병원 등 명함을 먼저 건네지 않는 사무에서 예외 없이 겪는 흰머리의 울분이다.
몇 년 전 한 외국인 친구가 오랜만에 한국을 재방문해 이제는 흰머리가 된 나를 다시 만났다. 갑자기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칭찬을 쏟아냈다.
“너 그거 알아? 우리가 보기에는 아시아인들의 검은 머리가 흰색으로 변하는 게 너무나 신비로워. 우리는 금발로 태어나면 그냥 평생 금발이야. 너처럼 검은색과 흰색이 섞여서 회색으로 보이는 것도 너무 아름답고. 그런데 왜 염색을 해서 부자연스럽게 다시 까맣게 하고 다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어. 얼굴은 할머닌데 머리는 너무 검정이야. 대체 왜 그렇게 색깔을 입히는 거야? 특히 너는 빛나는 은발이라 신비롭다!”
어머, 얘들은 또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나조차도 이렇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래 우린 나만의 것,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좀 낮지. 핀잔으로 찌부러진, 내 선택에 대한 내 자존감 나도 다시 올려야겠다 싶었다.
오늘의 어이없는 사건 덕분에 이 글을 쓴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지하철, 종로 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느라 1호선에서 막 내려서는데 옆에서 한 남자가 말을 건넨다. 동시에 흘러가는 사람들의 물결에 휩싸여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느라 왼편으로 몸을 돌리자 그의 말이 등 뒤에서 들린다.
“머리는 하얀 분이 제일 건강하시네요, 발걸음도 씩씩하시고 반팔까지 입으시고!”
뭐라고?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 뒤도 보지 않고 더욱 빨리 발길을 재촉한다. 아, 왕재수! 이런 인간은 대면도 말고 대꾸도 하지 말아야지, 아니 이게 무슨 매너야? 무식한 늙은 영감탱이 같으니! 귀를 씻고 싶네. 열심히 걸어 3호선에 도달하니 이 인간이 내 곁을 스쳐가며 눈길도 주지 않고 끝끝내 한마디 한다.
“머리는 하얀데 진짜 건강하십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중충한 검은색 등산복을 입은 아마도 70대는 된듯한 뒤태다. 주제에 염색은 찐하게 해서 아주 새까만 머리카락이 듬성했다. 이런 오지랖은 뭘까?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주책바가지 대한민국 중년남자들의 이런 상식 없고 예의 없음은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몇 년 전 교보의 외서코너를 뒤지다 재밌는 책을 한 권 사가지고 왔다. 내가 발견한 일본잡지는 중년의 은발여성을 위한 헤어디자인 모음이었다. 거기에 어울리는 옷 디자인과 컬러매치, 가방, 신발 등 액세서리까지. 그래, 일본은 이런 나라였지! 일본을 가서 봐도 한국으로 오는 관광객을 봐도 남 눈치 보지 않고 각자 자기 스타일로 자기 꾸미기가 존중되는 나라.
왜 우리는 아직도 흰머리를 하나의 개성으로 수용하지 못하나. 흰머리는 노랑머리, 생머리, 긴머리, 파마머리, 커트머리, 단발머리처럼 그냥 하나의 스타일이 될 수는 없는 걸까? 왜 흰머리로 사느냐니? 그럼 넌 대체 왜 머리에 물감을 쳐 바르고 사니? 니나 나나 그냥 스타일이야. 자기 선택이라고! 사실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도 천변산책을 나가봐도 모임에서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도 이젠 흰머리인 여성을 만날 일은 거의 없다. 가끔 흰머리끼리 스칠 때 나는 무언의 응원을 보낸다. 염색을 버린 이유가 뭐든 그녀도 내가 겪고 있는 눈 흘기는 핀잔과 유쾌하지 않은 회유를 아직도 당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요, 당신도 한 고집하는군요. 멋져요, 파이팅!
아니 왜 남의 흰머리에 그렇게들 관심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