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한다만

by 세라정

-서막

마음 따뜻한 언니 한 분이 3년 전 분양해 준 제라늄

봄가을로 탐스런 꽃을 올린다

베란다 햇빛에 뒀다가 꽃대 올리면 거실로 들여놓는데

올봄도 어김없이 풍성한 꽃으로 돌아왔구나


-1막

아유, 저 꽃 좀 봐

어? 언제 샀어?

3년째 집에 있는 거야

어엉, 그래?

서울서북의 최대 꽃농장집 아들이었던 남편은

고개 돌려 남은 호박스프를 뜨러 주방으로 간다

그에게 꽃은 배추였고

등록금이었고 밥이었으니

꽃은 엄마의 새벽잠을 앗아가고

아버지에게 굽은 손가락을 남겼다


-2막

엄마 저 꽃은 뭐야

늦잠 자고 나온 딸이 눈 비비며 묻는다

말없이 앞의 글을 보여준다

아으으으으흑흑흑 큭

괴성을 내면서 웃는다

나 ‘정남이 딸’ 맞네

할머니가 맨날 그러셨지

지애비 빼쐈다 빼쐈어

그래 피는 물보다 진하다


-3막

정남이든 정남이 딸이든

이해는 한다만

후루룩 호박죽 한 그릇씩 삼키고

빨간 날 놓칠세라 부산히 뛰쳐나간

두 사람의 짧은 그림자 뒤로

나만 혼자 가만히 꽃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본다

주에 한 번 우유팩 씻은 물 부어 준 게 전부인데

고요한 일요일 오전이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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