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나아가 오줌권

by 세라정

한 무리의 장애인들이 악을 쓴다. 드러눕는다. 그들을 끌어내야 하는 경찰들은 강경하게 진압도 못하고 주춤거리며 에워싸기만 한다. 출근시간대라 타고 내리는 시민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혜화역이다. 그 사이에서 질서유지와 안전을 위해 역무원들은 진땀을 흘리며 안내를 한다.

“아니, 저분들은 왜 하필 출근길에 저 붐비는 역에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개선사항이 있으면 나라에 건의하면 되지 아니 왜 위험하게 지하철에서 저렇게 눕기까지 하는 거야?”

무심한 눈으로 뉴스를 보고 있는 남편과 딸애에게 나도 답을 바라지 않고 던진 질문이었다.


왜 저러는 걸까.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이동권, 오줌권을 보장하라는 거라는데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도 있고 장애인 화장실도 다 따로 마련돼 있는데 왜 저러는 걸까. 장애인들이 출근시간대 가장 붐비는 역사에서 데모하는 뉴스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장애인들의 복지가 많이 개선된 나라 아닌가. TV 앞의 남편이나 딸애는 내 질문에 답할 의지가 없어 보였고 아니, 아마도 그들이 왜 그러고 있는지 진짜 이유를 몰라서 답을 하지 않았을 거다. 나도 그들의 요구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던 건, 이해가 안 되네 정도의 무심함으로 내 마음을 접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우리 곁을 지나가는 타인의 일상이 그러하듯이.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누군가의 암보다 더 다급하기에.


딸애가 운동하다 아킬레스 힘줄이 끊어져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듯 끊어진 양쪽 끝을 잡아당겨 겹쳐 박고 깁스를 했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병원을 다니고 환기라도 시켜줄 겸 동네 산책이나 대형쇼핑센터 등으로 데리고 다녔다. 딸은 휠체어에 앉아 한시적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됐고 나 역시 장애인보호자의 현실을 맛보게 되었다.


휠체어는 잘 접히고 무게도 25kg 정도로 몸무게 47kg인 중년의 키 작은 여인도 들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잘 만들어진 이동수단이지만 도로가 문제였다. 조금만 턱이 있어도 휠체어는 건널 수 없었고 무리하게 밀었다간 앉아있는 환자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기 딱 좋았다. 어찌어찌 경사턱이 있는 곳을 찾아 오른 인도는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하고 경사진 곳이 많아서 동네 한 바퀴 돌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괜찮은 인도를 잘 찾았다 싶어 조금 밀고 가다 보면 그 어디에도 경사턱이 없어서 가던 길을 도로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경사턱도 보도를 만들 때부터 같이 설계해 완만하게 만들었어야 할 텐데 휠체어 넓이보다 좁은 경사판만 대놓고 만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식은 곤란하지. 이렇게 해놓고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물이 몇 프로에 달한다는 둥 장애설비를 완비했다는 둥 그렇게 넘어가겠지. 심지어 지하철이동이라니. 그건 절대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머나먼 꿈이었다. 이동권이 이래서 문제였구나.


오줌권? 그건 정말이지 장애인 화장실을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파악할 수 없는 또 다른 난관이었다. 어딜 가나 장애인 화장실 칸이 따로 있었기에 우리나라도 참 선진국이다 싶었기에 그들의 데모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막상 사용하려 찾아보니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건물이 아직도 많았다. 큰 건물이나 비교적 현대 건물들은 법적인 요건 상 대부분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접한 장애인 화장실은 참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난감의 종류도 참 다양해서 우린 서로 시선을 마주 보며 어이없게 웃어야 했다.

휠체어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중접이문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 고장 나 있기 일쑤. 어찌어찌 닫으면 도어록이 고장. 어떤 곳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게 너무 내부가 좁네. 크기는 좋은데 열어보니 청소도구가 한가득. 앗, 휴지걸이는 왜 저렇게 멀리 있는 걸까. 대체 청소는 언제 한 걸까. 왜 여기만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거지? 장애인들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나, 대체 거울은 왜 안 달아 준 걸까. 자동문인데 안에서 잠기는 버튼은 고장이네. 그래놓고 물 내리는 버튼은 왜 이렇게 뒤쪽에 달린 거야, 어떻게 일어나서 누르라고요...

대한민국은 공공화장실이 깨끗하고 따뜻하고 게다가 무료라고 세계에서 알아주는 으뜸 국가다. 그런데 날 때부터 녹색여권을 부여받은 국민의 한 사람인 장애인들은 이렇게까지 힘들게 화장실을 다니는 거였구나. 오줌권이라고 그렇게까지 원초적인 이름을 달아서 듣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까지 하는 데는 이렇게 그들의 이런 절실함이 있었구나.


우린 비로소 그 뉴스를 이해했다. 몸에 어딘가 장애가 있다 해서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기 어렵고 마땅한 생리적 요구를 해소할 수 없다면 그게 어찌 생존권의 위협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동권이나 오줌권은 내가 여기서 운운할 수 있는 장애인들의 고충 중 극히 일부분의 예시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다. 그게 예기치 않은 사고이든 노환이든 한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우린 언제든 장애를 안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인지 각자의 자리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살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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