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졸이 아기 오리들이 엄마를 따라 개천을 거슬러 오른다. 요 며칠 전 알을 까고 나온 듯 두 손안에 폭 감싸 쥘 만한 작은 녀석들이지만 솜털이 제법 보숭보숭하고 동작도 꽤 빠르다. 사시사철 변화가 있다지만 늘 다니는 산책길의 천변풍경은 지루함이 깔리기 마련이다. 실례가 되지 않을 만큼의 낮은 목소리들과 일상이 되어버린 걸음에서 오는 무심한 얼굴들이 스쳐간다. 하지만 5월부터 6월은 이런 병아리오리들 덕분에 천변로에 웅성거림이 잦아지고 낯선 이웃과도 웃음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겨우내 웅크리고 다니던 암수오리들이 어디선가 짝짓기를 하고 부화를 해서 따뜻한 5월이면 아기들을 거느리고 봄비에 물이 분 천변으로 산책을 나오는 것이다. 아빠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엄마만 대여섯 마리부터 많게는 열 마리의 새끼들을 거느리고 천변기행을 한다.
오늘도 오후 산책을 나가보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천변에 몰려서 있다. 역시나 그 봉실봉실한 일곱 마리 아기오리들이 수초사이를 들락날락하며 천천히 엄마 따라 천을 오르고 있다. 촐싹거리며 항상 먼저 가는 놈, 물속으로 그 조그만 머리를 박고 연신 쪼아대는 놈, 작은 물벌레를 쫓아 쏜살같이 내쏘더니 끝내 한입 물어 쩝쩝대는 놈, 뭐가 그리 궁금한지 물풀 숲마다 들락날락 뒤지고 다니는 놈, 언니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는 따라쟁이, 버거운지 졸린 지 행렬의 맨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는 막내. 이 천방지축들을 살짝 멀리서 무심한 듯 바라보고 있는 엄마오리.
우리 눈에는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암컷오리는 이 시기가 생애 중 가장 긴장된 시간일 것이다. 천변에 사람은 많고 목줄을 하고는 다니지만 강아지도 많고 천적인 들고양이들과 오소리를 피해 다녀야하니 뭍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새끼들과 하천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일곱 마리를 다 자기 시야에 넣고 있느라 엄마는 정작 햇빛유희도 물놀이도 자신의 먹이활동에도 열중할 수 없다. 시야를 약간 멀리 두는 건 아마 아기오리들은 물론이고 근처 3,4미터까지도 경계를 두고 바라보느라 그런 건 아닐까 싶다. 이 에미가 겨울에 한참 살이 통통하게 올랐던 그 잘생긴 암컷이 맞나 싶게 몸집이 작아졌다. 그럴 테지. 일곱 알을 낳고 품어서 부화시키고 혼자 이렇게 많은 새끼들을 지켜내느라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봐야하니.
스물여덟 겨울에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때는 산후조리원도 마땅치 않았고 낯선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는 것도 불편한 새댁이라 친정엄마가 와서 산간을 해주셨다.
“엄마가 서른 아홉에 내 막내를 낳았는데 그 작은 것이 에미가 된다니 당연히 엄마가 산간을 해주러 가야지.”
그때까지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매일 출근하는 큰아들내외, 손자녀까지 챙기는 큰살림을 하시던 엄마였다. 엄마가 날 챙기러 와준다는 소식에 엄마살림 걱정을 하는 척 했지만 난 그저 좋았다. 안심이 되었다. 아기를 안은 남편과 집으로 와보니 엄마는 내 이부자리며 미역국에 좋아하는 반찬까지 다 준비하고 계셨다.
“와, 엄마 미역국 너무 맛있네. 계란찜도 새우젓 넣어서 너무 개운해.”
4.06키로의 사내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느라 정말 힘들었지만 나는 엄마가 곁에 계셔서 마음 놓고 쉴 수 있었다.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매일 영양가 좋은 세끼 음식에 간식까지 꼼꼼히 챙겨주신 엄마 덕분에 몸도 빨리 회복되었다. 아기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내 옷이나 아기옷, 면기저귀를 삶고 세탁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트림을 시키고 안아서 재우고 또 씻기고... 무한 반복되는 일과를 다 해주셨다. 그뿐인가. 사위가 퇴근해 돌아오면 사위 밥까지 챙겨주시고...자그마치 예순일곱의 나이에!
내 나이 쉰아홉, 몇 달 뒷면 환갑이 된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완경기 이후 허리협착에 목 디스크, 손가락 관절통증, 불면증에 이명 등등 다 헤아리기 힘든 증상들이 하나씩 늘어간다. 엊그제 안과 정기검진 갔더니 오른쪽 눈에 백내장이 살짝 왔단다. 아니 환갑도 되기 전의 나이에도 이렇게 몸이 여기저기 아픈데 엄마는 예순일곱의 나이에 어떻게 그런 일을 다 해주셨던 걸까. 몸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내가 뭐라도 도울라치면 옆에서 잔소리하셨다.
“이때 잘해야지, 여자는 아기 낳고 산간 잘 못하면 평생 바람 든다. 12월의 출산이니 특히 조심해야해. 아기도 이쁘다고 오래 안고 있으면 팔꿈치랑 무릎관절이 늘어난다. 에미가 되면 지 몸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새끼 챙기는데 한 세월 간단다. 엄마가 아직은 할 만하니까 도와주는 거야. 어여 들어가서 쉬어라”
한나절 일이 끝나면 아기 침대 옆에서 쿳션ㅍ하나 베고 한잠 주무신다. 분명 코를 골만큼 곤하게 주무시는데...엄마도 힘들어 보이시는데...잠든 엄마의 머리를 살살 넘겨본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아직은 건강하시구나. 천연스레 웃으며 나도 까무룩 다시 낮잠에 든다. 어느 틈에 엄마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고구마에 우유까지 따뜻하게 덥힌 간식상을 앞에 두고 어여 먹으라고 깨운다. 거실거실한 손으로 내 이마를 쓸어주시며 한 손엔 아기를 안고서.
아이고, 철 없어라. 엄마도 평생 무릎신경통으로 고생하셨는데, 소화불량이라 평생 창출을 끓여 드셨는데, 누워 자면 더 힘들다며 몇 년간은 앉아서 주무시기도 했었는데. 완경기엔 그치지 않는 출혈로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왜 이런 기억들은 그때는 소환되지 않았던 걸까. 엄마는 그때 이미 예순에서 칠년의 세월을 더 지나고 있는 중이었는데. 어떻게 아프지 않았겠어. 어떻게 힘들지 않았겠냐고. 새끼인 막내 딸 챙기느라 당신 몸 망가지면서도 그 세월을 견디고 계셨겠지. ‘할 만해서’가 아니고 에미니까.
둘째 딸을 낳고는 언니 집에서 편히 지내면서 산간을 받았다. 서른이 다 돼가는 그 애가 가장 무더웠던 작년 여름에 아킬레스를 다쳤다. 깁스를 하고 집 안에서도 휠체어를 탔다. 씻기고 입히고 세끼에 간식 먹을 것을 챙기고 병원을 다니고 산책을 해주러 쇼핑몰에 데리고 나갔다. 25키로의 휠체어를 매번 높은 차 트렁크에 실었다 내렸다 하는 일이 내게도 쉽지는 않았다. 나 역시 재작년 겨울 우측 쇄골 골절로 가느다란 쇄골 뼈에 핀이 7개나 박혀있는 상황이었다. 수술한지 1년은 지나서 안정기에 들어섰지만 이빨 뾰족한 철집게로 어깨를 꽉 집어 놓은 것처럼 항상 얼얼하고 아프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아이의 재활까지 몇 개월을 힘센 들소처럼 씩씩하게 뒷바라지 했다. 완경기를 지나서도 계속되는 불면증과 심리적 불안과 우울, 매일 오락가락하는 몸의 통증들, 쑤시는 어깨뼈 이런 것들은 내 자식의 안녕 앞에서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할 만해서’가 아니고 나도 에미니까.
7월쯤 되면 중병아리 단계도 지나 이제 제법 중오리 정도는 되는 새끼들이 뭍으로 슬슬 올라온다. 아마 수상생활수업이 다 끝나고 육지생활수업 과정이 시작되는 듯하다. 몸집의 크기로 봐선 누가 엄마인지 꼼꼼히 살펴야 알 수 있을 정도다. 에미는 더 마르고 새끼들은 토실하니 살이 올랐다. 천변 둔덕까지 올라와 노란 들꽃들과 키 큰 갈대수풀 사이를 연신 들락거리며 육지생활을 익힌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까지 나오는 녀석들도 있어서 발걸음 앞까지 다가오기도 한다. 엄마 오리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젠 아예 사람들 산책로 쪽으로 시선을 마주하고 섰다. 우리 아기들 옆으로 올 생각은 아예 접어 두는 게 좋을게요, 꽉꽉! 에미인 내가 여기 있는 한 어림도 없수, 꽉꽉! 눈에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아니 대체 누가 새끼고 누가 에미야?”
“이렇게 클 때까지 엄마가 곁에서 돌봐주는구나!”
“아이고, 지 새끼 어떻게 할까봐 저렇게까지 서서 보초를 서네요!”
“쯧쯧, 세상 에미란 것들은 오리든 사람이든!”
사람들은 서너 발치 멀찍이 돌아서 천천히 발길을 돌리며 다들 미소 띤 얼굴로 한 마디씩 한다.
딸이 다 나아서 이제 좀 혼자 잘 돌아다니나 싶었는데 5개월 뒤 같은 다리의 아킬레스 건이 재파열 되었다. 다행히 이번엔 보존치료가 가능하다는 의사를 만나 수술 없이 콜라겐 주사와 깁스만 하기로 했다. 재활 여름 버전은 끝냈고 겨울버전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 씻기고 입히고 세끼에 간식 먹을 것을 챙기고 병원을 다니고 산책을 해주러 쇼핑몰에 데리고 나갔다. 이젠 토시를 만들어 깁스한 발에 입히고 롱패딩으로 온 몸을 둘둘 말아 야외용 휠체어에 태우고. 내 버거움은 이번엔 더더욱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두 번째 파열을 당한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벌벌 떨며 무서워하던지. 걱정마라, 걱정마라. 엄마가 네 옆에서 다 지켜줄게. 나도 무너지는 마음에 육체적 한계에 몇 배로 더 힘들었지만 더욱 당당히 딸아이 곁에 지켜 서 있어야했다. 스물 아홉이래도, 중오리가 되어서도, 넘어져 다친 자식은 아직도 어리고 돌봄이 필요한 내 아기오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