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일곱 살 차이의 남편은 이제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한겨울과 장마철을 빼고는 여전히 주말마다 사이클링을 하거나 등산을 한다. 동문회 월례골프라운딩을 비롯해 거래처나 친구 부부와도 정기적으로 필드에 나간다. 답답한 실내 짐을 싫어해서 매일 늦은 오후 천변산책을 하고 공원 운동기구에서 근육운동까지 하고 들어와 저녁식사를 한다. 여러모로 자기 몸 관리는 잘하는 남자다. 그에게 운동은 취미나 관리라기보다는 숨쉬기나 밥 먹기같이 평생 당연한 일과다.
공무원이나 기업임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임을 한 친구들과는 달리 그는 40대 초반에 사업을 시작해서 아직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한창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이젠 규모를 확 줄여서 1인 기업을 하는지라 퇴임자 못지않게 시간 여유는 많아졌다. 퇴임한 친구들이 도서관을 다닌다, 서예를 배운다, 요리를 시작했다 등등 다양한 취미를 말할 때 그는 그냥 조용히 듣는다. 새로 시작한 취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 나이대의 남자들이 남편의 취미이야기에 관심이나 호감을 갖는 사람이 없어서란다. 두 세 마디 소개말 뒤에 돌아오는 질문이 없단다.
중년 이후 남편이 발들인 세계는 독서다. 연애 시절부터 그는 자신은 독서에는 큰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책에 대한 애정은 상당해서 자신이 다 완독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책을 사들고 들어왔다. 물론 대부분 사회학이나 유행하는 자기계발서 위주였지만 그조차도 완독하는 편은 아니었다. 매일 신문도 열심히 읽고 아무튼 시사에는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시나 소설 같은 문학책은 읽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글 쓰고 문학 쪽을 좋아하는 나를 항상 칭찬하고 존중해주었다. 그러던 그가 60이후에 독서광이 되었다. 이젠 침침해진 눈과 협착증으로 쉽게 피로해지는 허리 때문에 나는 오히려 독서량이 확 줄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서너 권씩의 책을 사들고 와서는 새로운 오더를 따낸 사업가의 미소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자랑한다. 이것 봐! 절판된 책인데 반값에 샀어! 그래, 보물이 별거냐 본인이 심봤다라고 생각하면 그게 산삼이지.
취미라고 이름 붙이기도 뭐한 삶의 기본중의 기본으로 되어있는 독서. 누구나 책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누고 읽어보라 권하기도 하느라 대화가 길게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이 읽고 있는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친구들은 심드렁한 태도를 보인단다. 그는 한 분야를 깊이 파들어가는 나름의 테마독서를 몇 년 째 진행 중이다. 그 테마가 중년의 남자들에게 영 매력이 없는 듯하다.
남편이 실행중인 그만의 독서법은 옛 도인이나 무인들의 도장깨기 같은 느낌이다. 그는 한 분야에서 뭔가를 이뤄낸 사람들 특히 예술가들의 열정에 대한 존경과 호기심을 항상 갖고 있었다. 처음 읽기 시작한 분야는 화가들, 그들이 정상에 도달하기까지의 개개인의 삶의 여정과 작품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책들이었다. 시작은 <방구석미술관>이란 입문서였다. 거기서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더니 배낭매고 중고서점을 돌아 미술서적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화가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도판이 같이 소개가 되므로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는 습관도 붙기 시작했다. 한국화가나 서양화가에 대해 소개한 책들을 여러 권 사서 동시에 읽다보면 인물이 겹치기도 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소개되기도 하니 더욱 좋아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미술사나 사회와의 연관성, 미술사조, 시대배경 등을 다룬 책에 관심이 증폭됐다. 한 권에서 시작하면 단계를 올리거나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거나 시리즈를 연결해 사거나 겹치더라도 다른 작가들의 책도 읽었다. 결국에는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 근육이 탄탄히 붙으면서 전문 학예사나 미술비평가들이 쓴 책들도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 계속 확장해 나갔다. 이진숙의 <위대한 미술책>은 1년이 넘도록 그의 손을 탄다. 감수성 풍부한 문학적인 문장으로 미술을 읽어내는 작가들의 글은 깊은 숨을 내쉬며 읽는다. 조상인의 <살아남은 그림들>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다.
내게 있어 무엇보다 경이로웠던 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 혹은 어렵다고 느껴지는 책들은 다섯 번, 일곱 번, 열 번씩 읽고 또 읽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반복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사람이다. 왜냐고 이유를 물으니 웃으며 간단히 답한다. 안 외워지니까. 방금 읽고 나서도 잊어버리니까. 어디 강의 나갈 거야라는 핀잔에는 남에게 얘기해 주는 게 재미있어서란다. 남편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다. 원래 타고난 유머 감각과 여유가 있는 사람이지만 뭔가를 설명하거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나름의 플롯개념이 있다. 같은 내용을 전달해도 어떻게 어떤 순서로 이야기를 해야 결론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의 호기심을 끌고 갈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유명한 기업가들의 삶이나 정치인들의 일화 등을 얘기할 때 듣는 사람은 빠져들 수밖에 없다. 재밌으니까. 그러니 독서의 욕구에 그런 본능이 샘솟고 있었을 것이다. 이 재미난 화가들의 이야기를 잘 꿰어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리라.
한동안 화가관련 책들을 한 30권 맛있게 씹어 잡수시더니 관심은 자연스레 음악가들의 이야기로 번져갔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재미있었겠나! 같이 산책하는 날이면 서양음악의 계보를 설명하고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을 설명하느라 얼굴에 홍조를 띠고 브람스와 아내와 멘델스존의 관계를 설명하느라 걸음이 느려졌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딸이랑 재미나게 다양한 음악사의 뒷얘기들을 주고받으니 딸애가 아빠에게 음악도 같이 들어보라 강권했다. 하지만 클래식이 어디 하루아침에 귀가 트이는 음악이겠나. 게다가 남편은 그들의 삶의 이야기에 천착하느라 정작 음악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책이 많아지면서 음반도 구매하기 시작했고 차안에는 항상 클래식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딸이 음악회 가자고 꼬시면 선선히 넘어가 준다. 가서 하품 끝에 눈 비비다 나와도, 클라이막스 한 부분만 귀에 남는다해도 남편은 이제 기꺼이 간다. 그는 듣는 음악을 넘어 귀먹은 베토벤이 어떻게 이렇게 위대한 명곡을 남겼을까 그에게 존경과 감사를 담아 추모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남편의 독서법은 위대하다. 예전만큼 기억력이 반짝이지 못해도,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감각이 예전만 못해도 그는 많이 읽는다. 여러 번 읽는다. 이제는 헐거워진 두뇌탓을 하지 않는다. 조밀해질 때까지 여러 방향에서 여러 층으로 망을 짠다. 돌아가신 엄마는 오빠나 언니들의 옷을 잡아 스웨터의 올을 조심히 풀어 다시 쓸 수 있는 실들을 모아 내 옷을 짜곤 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스웨터는 입을 수 없다. 천천히 단단하고 둥글게 실타래를 감아내야 다시 새로운 스웨터를 짤 수 있다. 노년에는 노년의 독서법을 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