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게 만드는 영화를 보고 왔다. <힌드의 목소리>

by Erin Park
<찬란 제공>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머뭇거렸다. 리뷰들이 한결같이 같은 단어들을 쏟아냈다. 처참하다, 긴박하다, 불쌍하다. 소지섭의 내레이션마저 비장하게 깔리면서, 영화는 보기도 전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그 무게가 먼저 도착해서,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오히려 지워버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한 영화는 달랐다. 이 영화는 전쟁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하나의 공간 안에 머문다. 적신월사 사무실. 구조대원들은 현장에 가지 못한 채 통화와 좌표, 불완전한 정보만으로 상황을 따라간다. 화면은 바깥으로 열리지 않고, 오히려 점점 좁아진다. 그 제한된 조건이 이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이 영화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 공간을 찍는 방식에 있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카메라가 고정될 것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관념을 깨고 핸드헬드를 선택한다. 힌드를 달래며 울고, 움직이는 인물을 카메라가 미세하게 따라간다. 달려가는 장면이 아니라, 전화기를 붙들고 무너지는 사람을 찍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인물들의 감정이 요동치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며,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화면 안에 가둔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카메라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전달된다. 과장되지 않은 흔들림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 찬란 제공>


아이의 모습은 곧바로 제시되지 않는다. 영화는 먼저 실제 통화 음성을 따라가게 한다. 그 목소리는 데이터로 변환된다. 파동의 형태로 화면에 펼쳐지는 순간, 살아있는 음성이 기록으로 고정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후에야 사진이 등장한다. 관객은 이미 목소리와 파동을 통해 시간을 지나온 뒤에야, 그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이 순서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늦게 도착하는 확인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사무실 안에서는 저마다 다른 온도로 같은 상황을 견딘다. 크게 반응하는 사람, 조용히 아이를 달래는 사람, 담담하게 조정을 맡은 사람. 표현 방식은 달라도 누구도 이 상황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앞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일정한 거리 안에 머물도록 만든다. 나갈 수 없는 공간, 도달할 수 없는 위치, 계속해서 늦어지는 시간. 베니스도, 아카데미도 이 구조를 알아봤다. 요란하지 않아서 단단한 영화다.



마지막에 이르러, 한 장면이 짧게 남는다. 아이가 바다에서 놀고 있던 생전의 영상이다. 전쟁은 누군가가 돌아가고 싶어 했던 곳을 더 이상 닿을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남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보고 나서도 쉽게 닫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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