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없이, 아직도 -영화 <내 이름은>

by Erin Park
<사진 제공- 아우라 픽처스>

영화 < 내 이름은>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내 이름은>은 시종일관 정순(염혜란 분)의 조각난 기억을 복원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관객은 9살을 전후로 뚝 끊겨버린 그녀의 삶을 함께 이어 붙이며, 바람 소리만 들려도 몸을 움츠리는 그녀의 트라우마에 깊이 매몰된다. 정순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설치한 가장 정교하고도 교묘한 장치다.


관객이 정순에 매몰되어 아버지의 정체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4.3을 보지 못하며 살아왔다.

이 영화는 사실 한 여자의 몸 안에 한국 근현대사의 폭력을 모두 새겨 넣었다. 4.3, 베트남전, 5.18, 그리고 1998년 제주. 국가가 개인을 소모하고 지워온 역사의 결절들이 정순이라는 한 사람의 가족사 안에 층층이 쌓여 있다. 영화는 그것을 선언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배치해 놓는다.

<사진 제공 - 아우라 픽처스>


우리가 아버지라 믿었던 이는 사실 마을을 총으로 쓸어버린 학살의 주범 군인이었다. 그가 정순을 거두어 키운 것은 구원이 아니라, 피해자의 기억을 소유하고 조작한 2차 가해였다. 살아서 가해자를 아버지라 불러야 했던 것처럼, 4.3의 생존자들은 수십 년간 진실을 말하면 빨갱이가 되는 세상에서 입을 닫고 살아야 했다. 정순의 봉인된 기억은 그 역사의 축소판이다. 이 기만적인 부성애는 1998년의 현재로 이어진다.


<사진 제공- 아우라 픽처스>



정순의 기억을 되찾아주겠다며 그녀를 다독이며 속삭이던 의사(김규리 분)의 손길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따뜻한 구원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이 정순의 아들 영옥에게 가한 폭력은 계급의 힘으로 은폐하려 한다. 아들 경태가 영옥에게 신겨준 에어 조던 13의 매끈한 질감은, 과거 군인이 정순에게 베풀었던 ‘약탈적 호의’의 현대적 변주일 뿐이다. 육지에서 온 건설 자본, 제도적 권위 역시, 4.3 때 외부에서 들어온 권력이 제주를 쓸어버렸듯, 1998년에도 그 구조는 형태만 바꿔 작동 중이다.


정순의 고통에 동화된 관객은 어느새 제주도민이 그랬듯, '국가’와 ‘지성’이라는 이름의 손길에 속아 넘어간다. 도움의 손길인 줄 알았으나 결국은 폭력의 구조를 공고히 하는 가해자들의 연대였다는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이 가졌던 믿음의 프레임은 산산조각 난다. 기억 찾기라는 명목 아래 우리가 목도한 것은 사실 폭력의 틀 그 자체였다.

<사진 제공- 아우라 픽처스>



화면이 암전 되고 염혜란의 목소리로 흐르는 김민기의〈친구>.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직시하게 된다. 진짜 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누군가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가해는 늘 멀리 있지 않으며, 가장 친절하고 믿음직한 얼굴을 하고 때로는 아버지의 얼굴로, 의사의 얼굴로,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4.3은 끝나지 않았다.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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