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순서대로 기억되지 않는다.
영화〈위 리브 인 타임> 은 알무트(플로렌스 퓨)와 토비아스(앤드류 가필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연대기순으로 나열하는 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있다. 카메라는 첫 만남과 행복, 그리고 투병의 시간을 무작위로 교차하며 관객에게 단 하나의 시각적 가이드라인만을 건넨다. 바로 알무트의 ‘헤어스타일’이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한 연출적 기교라 부를지 모르나, 이 비선형 구조야말로 삶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 위한, 이 영화만의 가장 정직하고도 유려한 문법이다. 영화가 과거와 현재를 집요하게 뒤섞는 이유는 하나다. 삶이 결코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일직선의 도로가 아님을 말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흔히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 그 이후의 삶을 투병 혹은 소멸의 과정으로만 규정하려 한다. 하지만 감독은 시간을 해체함으로써 고통스러운 현재 옆에 찬란했던 과거를, 절망적인 예후 옆에 뜨거운 열망을 나란히 놓는다. 이 병치를 통해 영화가 표방하는 가치는 명확해진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시간의 총합이나 인과적 순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독립된 순간들이 발산하는 에너지 그 자체에 있다는 것. 시간을 섞어버림으로써 관객은 알무트가 ‘언제 죽는가’라는 비극적 결말에 매몰되지 않고, 그녀가 매 순간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현재성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실제 항암 치료에는 ‘14일의 법칙’이라 불리는 주기가 있다. 항암제 투여 후 약 2주간 극심한 부작용을 견디고, 회복되면 다시 다음 주기를 맞이하는 고통의 반복. 영화는 이 신체적 타임라인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압축한다. 이는 병마에 잠식되는 물리적 과정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지켜내려는 인간의 의지를 부각하기 위한 선택이다.
비선형 구조 덕분에 알무트는 단순히 동정받아야 할 환자로 남지 않는다. 그녀는 뱅 헤어를 한 생기 넘치는 연인이자, 아이의 엄마이며, 경연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덤덤히 증명해 내는 프로페셔널한 셰프로 동시에 존재한다. 비 오는 날 학교 앞에서 아이를 픽업하지 못해 느꼈던 처절한 무력감조차, 그녀는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당당한 퇴장을 통해 삶의 자부심으로 되받아 친다. 아이에게 ‘아픈 엄마’가 아닌 ‘영국 대표 셰프’로서의 뒷모습을 각인시키는 그 장면은 모성애라는 신파를 넘어, 한 인간이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어떻게 책임지고 증명하는지를 보여주는 숭고한 이정표가 된다.
영화의 흩어진 조각들은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의 사소한 행위로 수렴된다.
남겨진 이들이 알무트의 방식대로, 계란을 톡 깨뜨려 그릇에서 그릇으로 옮기는 그 작은 장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반복해서 보여주었던 그녀의 정교한 손놀림이 이제 아이와 남편의 손끝에서 조용히 재현된다. 죽음이 삶의 단절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의 몸에 밴 습관과 기억 속에 스며드는 일임을 보여주는 가장 담백한 긍정이다.
<위 리브 인 타임>은 슬픔을 감동의 도구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던 한 여자의 시간을 파편화하여, 우리 앞에 공평하게 펼쳐놓을 뿐이다. 그 조각들을 함께 맞춰가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을 순서대로 밟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의 어느 지점에 서 있든, 계란 하나를 깨뜨리는 그 손끝에 ‘나다움’을 담아내는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