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기

talk in whispers No 1.

by Erin Park


새해에 소모적인 일을 한 게 줄서기다.

새해 첫날 때맞춰 큰 세일을 해 주는 마트 덕분에 오픈 시간 전에 일찍 가서 앞쪽으로 줄을 섰다. 오픈 시간이 다가오자 기력 짱짱하신 어르신들께서 내가 1등으로 왔다면서 줄을 흩트리기 시작하면서 난리가 났다. 1등이 너무 많아서 귀가 떨어질 정도이다. 줄 서라고 젊은 남자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용없었다. 제지해 달라고 보안요원, 마트 직원에게 이야기해봤자다. 마트 측은 시작 시간을 알리면서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처럼 사진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다들 카트를 밀고 바구니를 들고뛰는 데 그냥 쳐다본다. 번호표를 받으러 줄을 서는데 앞에서 할머니가 또 새치기를 한다. 뒤로 가라 하는 소리에 가만있으란다. 내가 새치기를 해서 댁한테 뭔 일이 있냐고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 이건 꿈일거야 .얼른 이 아비규환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시사회 현장>


둘째 날은 대망의 스타워즈 아이맥스 시사회의 줄을 섰다.

국내 개봉이 늦어져서 스포일러 피하느라 댓글도 안 보고 아예 SNS을 멀리했던 긴긴 시간이 봉인 해제되는 날이다. 아이맥스 시사회는 관이 큰 만큼 늘 줄이 길고 자리는 고를 수 있을 때도 있지만 복불복이다. 이번 시사회는 추첨을 통해서 다크 사이드와 라이트 사이드로 나뉘어서 표를 배부하며 야광봉을 주었다. 스타워즈 캐릭터와의 사진 촬영과 SNS 인증으로 아이맥스 포스터도 증정했다. 스타워즈 다양한 캐릭터를 코스프레를 한 분들이 시사회의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킨다. 스타워즈 시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팬덤이 강하다. 영화관 안에서는 여느 영화보다 더 화끈한 시작을 맞이한다. 개봉이 늦은 만큼 디즈니 여타 시사처럼 보안은 철저하지 않았으나 엔딩 크레디트를 찍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보안 요원이 제지하고 영상과 사진을 삭제시켰다. 진행도 이벤트도 모처럼 너무 맘에 드는 시사회였다. 스타워즈가 오랜 시리즈이라 장벽이 높지만 그 매력도 엄청나기에 설렘 가득했던 만큼 줄 서기도 덜 고되었다.



연말에 영자원 티켓팅에서 화끈하게 물을 먹었다. 어쩌겠냐는 심정으로 주말 아침 머리도 덜 말린 채로 상암동으로 향해 달려 현장 표 줄을 섰다. 다행히도 일찍 도착해서 영화도 볼 수 있었고 영화도 좋았다.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백종원 3대 천왕 맛집에 줄을 또 서게 되었다. 원래 가려던 곳은 아니었는데 가려던 곳이 새해 휴무이다. 올해도 또 먹을 복 없이 갈 때마다 문 닫는 저주는 시작되었다. 줄을 세우는 방식과 주문 방식이 맘에 안 들었지만 전에 살던 동네에서 워낙 좋아했던 곳이라 재료도 변하고 서비스 상태도 엉망이지만 가끔 그리운 맛이다. 그런데 이젠 두 번은 안 갈 듯하다. 새해부터 줄 서기에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작년엔 본 영화의 best 이런 건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은 최고는 살면서 늘 바뀌는데 굳이 줄을 세우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생각해서일까 게을러서일까. 남들 흔히 쓰는 인생 맛집, 인생 영화, 인생 파데 난 이런 것도 없다. 최애 최고 이런 것이 점점 희미해졌다. 좋으면 좋은 거라고 점점 둥그렇게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