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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Mar 10. 2021

따뜻한 포옹의 영화 <미나리>


사진 제공 - 판 씨네마 (Pancinema)



정이삭 감독 (미국명: 리 아이삭 정)은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본능적이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들을 꺼내고 가족의 추억을 더해서 영화 <미나리>를 만들었다. 감독의 아버지는 이민자로 19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일을 했고 한국에서 가져온 할머니의 미나리 씨앗, 가족이 겪는 재난, 트레일러 집 등 대다수의 것들이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엄마인 모니카(한예리),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 자녀인 데이빗(앨런 김)과 앤(노엘 케이트 조)은 무(無)에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고자 한다. 마치 기회의 땅을 찾아서 메리 플라워 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처럼 척박한 꿈과 희망을 갖고 삶을 개척하려 아칸소에 정착한다. 자연이 주는 시련, 가족이 아닌 일(꿈)을 택하는 아버지, 미국인과 섞여 살아야 하지만 한국인으로의 정체성도 버릴 수 없는 이민자 가족의 삶을 그리고 있다.


할머니 순자(윤여정)의 등장은 반가움인 동시에 가족의 삶을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을만한 비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데이빗이 상상하던 할머니는 아니지만 지식이 아닌 삶의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를 가르쳐 주고 딸 모니카에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미나리 같은 강건한 사랑의 초석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손자인 데이빗과 멋진 앙상블을 이루며 얽히고섥혀 극을 이끌고 단단하게 조여 가는 분위기를 만든다.


제이콥이 성공을 위해 야망을 키워 갈수록 모니카의 가족을 지키려는 소망은 더욱 위태로워진다. 모니카는 가족의 해체를 원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  "헤어지자" 말을 꺼낸다. 그 상황을 감정을 삭혀가면서 단호하면서도 담백하게 표현했지만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킨 엄마의 삶이었을까? 제이콥이 진짜 꿈은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내 가족, 아내인 모니카의 울음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이해 혹은 용서받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스스로 슈퍼 히어로가 되어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빠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그 병을 이겨 달릴 수 있고 그 누군가의 손을 이끌어 줄 수 있게 성장한다. 아빠 제이콥(스티브 연)은 부(富)도 가족도 모두 잃지 않았다.


사진 제공 - 판 씨네마 (Pancinema)



아칸소의 햇빛과 땅의 기운을 받고 자란 한국 채소들이 한인 이민자들의 꿈과 자부심이라면 미나리는 열악한 토양 조건에서 뿌리를 내려 땅을 재생시키고 물을 정화하는 식물로 이방인으로 그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온 수많은 이민자들과 닮아 있다. 그렇게 따스한 햇빛을 받고 꿈을 키우는 삶도 있고 미나리처럼 다른 어떤 것들은 자랄 수도 없는 환경에서도 강건하게 일구는 삶도 있다. 계절을 이기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삶을 지속한다. 할머니 순자가 심은 미나리는 시적인 공명을 갖고 이야기를 그려간다.


희망과 결의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그린 여정은 그 어떤 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한다. 지금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 어렸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다른 모습으로 엄마와 할머니가 그 자리에 서있고 미나리란 식물과 땅으로 연결되는 기록들이 가족의 숭고한 삶이었다 이야기한다. 영화 <미나리>는 사랑이란 실로 묶는 실 제본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그 안에 꿈과 희망, 웃음, 울음들이 섬세하고 진실되게 삶으로 기록된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국 거창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꿈꾸지 않아도 될 평범한 삶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지극히 평범한 나사 하나가 빠져 위기의 순간이 찾아와도 서로를 위기 속에서 크게 불러 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들은 그렇게 부둥켜안고 고요하게 아침의 햇살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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